희망을 바라며 달려 나가는 사람들에게
저녁에 과식을 했는지 속이 더부룩했다.
산책 가자는 와이프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나섰다. 오늘은 조금 더 걸어서 아파트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최근 근처 천변에서 야외 조명제를 한다고 하길래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천까지 내려갔다.
우리 동네 천에는 가끔 축제도 하고, 조각전도 하고, 전시회도 한다. 이번에는 야외 조명전을 한다고 하니 천천히 걸을 요양으로 와이프와 함께 내려갔다.
순간 한눈에 보기에도 멋들어진 조명들이 가로로 쫘악 펼쳐져 있었다. 차가운 날씨에 야외 전시를 준비한 작가님들의 노고에 속으로 박수를 보내드렸다. 누군가의 열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흐뭇한 산책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오길 잘했지?"
와이프가 웃으며 묻는다. 그러게. 집에만 있으면 휴대폰이나 티브이를 보며 저녁시간을 허비했겠지만 이렇게 나와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멋진 조명 전시회도 즐기니 얼마나 행복한가.
각 전시물 옆에는 작가 소개와 작품명이 적혀있었다. 자세히 보려다가 겨울 한기가 느껴져 얼른 사진만 찍고 걸었다. 와이프와 함께 걸으며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모가 이야기할 소재가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늘 자녀 이야기 부모이야기 주변 이웃 이야기가 거의 다가 아닐까 한다.
병무청에서 아들에게 병역의무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아들은 아빠에게 신검 수검서 용지를 들이밀었다. 호탕하게 웃음 짓고 있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딱 이 표정이다.
"오우, 축하해, 아들! 건장한 신체를 가졌다는 걸 증명하는 군~!"
아빠도 애써 유쾌하게 받아친다. 아들은 군대 가기 싫다며 동동거렸지만, 이네 친구랑 온라인 게임을 해야 한다며 들어간다. 달리 해줄 말이 없다.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겠지. 군대라는 것이 대학생들 MT 가는 곳도 아니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거의 반 강제적으로 입소하는 곳인지라 차라리 당일에 닥쳐서 짧고 굵게 하소연하고 가는 것이 낫지 싶다.
한 번은 갈 만하지만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 군대! 갈 대학이 없으면 군대를 가라 했지. 나름 국립대이다. 더구나 집도 주고, 월급도 주고, 옷도 주고, 심지어 밥도 준다. 때때로 간식도 잘 챙겨주고 휴가도 챙겨준다. 이 얼마나 좋은 대학인가! 하지만 나더러 또 가라면 절대로 가고 싶진 않지... 철원... 너무 춥다.
철원에서 근무하며 고생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한 겨울에 야외 수돗물로 식기를 닦고 물을 뿌리면 얼음이 되어 떨어지던 곳, 철원. 전역하면 그쪽 방향으로 오줌도 안 눈다고 했었지 아마.
몇 걸음을 더 걸으니 거울 모양의 조형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넌 누구니? 나는 누구인가? 거울인 것 같은데 이 앞에 서는 순간, 저 질문 때문에 쉽사리 지나칠 수 없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Know yourself.'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나와 마주하고 대화를 하게 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할까? 아마도, '수고가 많다.'라고 해 주고 싶다. 늘 열심히 살고자 삶의 경주를 해 왔던 나 자신을 다독거려 주고 위로해 주고 싶다.
'많이 힘들었지?'라며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뛰어갈 너를 응원한다. 파이팅!'이라고 외쳐주고 싶다. 괜찮은 사람, 뒷모습이 작아 보이지 않는 사람, 바로 너! 오늘도 너를 응원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길이 있다. 화려해 보이는 길, 초라해 보이는 길이 있다. 바빠 보이는 길, 위험해 보이는 길도 있다. 게을러 보이는 길, 나태해 보이는 길이 있다. 하지만 막상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길에 동행해 보지 않는 한 그 길이 그러하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게을러 보이는 길이었는데 막상 그 길로 들어서 보니, 게을러 보이는 그 사람은 사실 삶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힘겹게 떼어놓고 있지 않겠는가. 그 사람의 삶의 무게는 우리의 것보다 훨씬 무거운 것이기에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 Put yourself in my shoes.'라는 말이 있다. 남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나에게는 즐거운 산책길 일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실직 후 사념에 잠긴 채 무겁게 내딛는 길일 수 있다.
어떠한 길을 걸어가든지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행복한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본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이 언젠가는 기쁨으로 곡식단을 걷어올 수 있기를 바란다.
희망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달려 나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하루가 우주 어느 별보다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 우리가 지나가는 순간순간, 하루하루가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날들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어제저녁에 장례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우리 교회 한 분께서 소천하셨다고 한다. 그분에게 오늘은 너무도 기다리고 갈망하던 하루였으리라.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아내의 얼굴. 한 번 더 잡고 싶었던 자녀의 손. 한 번 더 걷고 싶었던 야외 공원 길.
한 번 더 부르고 싶었던 이름, 그 이름, 어머니...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하겠다.
오늘 주어진 당신의 하루가 별보다 더 빛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