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떠난 사람처럼 사는 시간
간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 안의 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말이 사라진 뒤에는 웃음도 사라졌고, 웃음이 사라진 뒤에는 불필요한 움직임까지 사라졌다. 우리는 마치 몸에 밴 습관처럼 조용해졌다. 문을 닫을 때는 손잡이를 끝까지 잡고, 마지막엔 손바닥으로 살짝 눌러 소리가 나지 않게 놓았다. 발걸음도 저절로 느려졌다. 양말로 바닥을 끌듯이 걷는 법을,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배웠다.
누가 먼저 “우리 이제 조용히 살자”라고 약속한 적은 없다. 그런데 집 안에서는 다들 속삭이듯 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있는 공간에서는 소리가 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죄라기보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까웠다. 우리가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소리 하나로 또렷해지는 게 버거웠다. 그 선명함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언젠가 무너질 것 같았다.
아버지가 누워 있는 곳은 거실이 아니라 큰방이었다. 큰방은 원래 가족이 잠을 자고, 옷을 개고, 겨울엔 전기장판을 깔고, 여름엔 선풍기를 틀고... 그런 평범한 생활이 흘러가던 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방은 방이 아니라 공간이 됐다. 말하자면 작은 중환자실 같은. 문만 열면 공기가 달라졌다.
큰방 한쪽에 전동침대가 놓였고, 침대 옆에는 산소발생기가 쉬지 않고 웅~~ 하고 낮게 울었다. 그 진동음은 처음엔 귀를 찢는 소리처럼 낯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공기처럼 익숙해졌다. 익숙해지는 게 더 무서웠다. 익숙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심박과 산소포화도를 표시하는 모니터는 숫자를 깜빡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위루관 영양펌프는 정해진 속도로 액체를 밀어 넣었고, 흡인기는 늘 전원을 꽂은 채 대기 상태로 놓여 있었다. 약통은 요일과 시간별로 정리되어 있었고, 주사기와 거즈, 소독솜은 서랍을 열면 바로 꺼낼 수 있게 줄 맞춰 놓였다. 큰방 서랍에는 원래 양말이나 속옷이 들어 있어야 하는데, 어느새 멸균장갑과 소독솜이 차지했다. 방 안에서 사람의 흔적은 뒤로 밀리고, 기계가 앞으로 나왔다.
큰방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반쯤 열려 있었다. 닫아두면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못 볼까 봐, 열어두면 바람이나 소음이 아버지를 자극할까 봐... 결국 우리는 반쯤이라는 애매한 상태에 익숙해졌다. 문틈으로 기계음이 새어 나왔고, 그 소리는 집 안 어디로든 따라왔다. 부엌에서 물을 끓여도, 거실에서 빨래를 개도, 화장실에서 손을 씻어도... 마치 집 전체가 대기 상태에 놓인 것처럼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아버지의 하루는 늘 같았다. 시간표처럼 반복되었고, 예외는 거의 없었다. 같은 시간에 약이 들어가고, 같은 시간에 유동식이 위루관을 통해 흘러 들어갔다. 펌프가 삐비빅- 하고 알릴 때마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관을 확인하고, 클램프를 조절하고, 주사기로 물을 조금 밀어 넣고... 그 동작들이 몸에 붙었다. 처음엔 모든 게 무서웠는데, 나중엔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해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너무 능숙해진 걸 깨달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TV는 거실에서 켜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큰방으로 TV 소리가 흘러 들어갈까 봐 볼륨은 늘 낮았다. 화면 속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음악은 과장되게 밝았다. 그런데 그 웃음이 우리 집 공기와 섞이지 못했다. 벽에 부딪혀 흩어지고, 커튼에 걸리고, 다시 화면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리모컨을 들고 볼륨을 줄일 때마다 꼭 한 번 큰방 쪽을 봤다. 혹시 아버지가 불편해할까 봐도 있었지만, 더 정확히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복잡해질까 봐. 그 복잡함을 만드는 사람이 내가 되는 게 싫었다.
우리는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연결하고, 풀고, 닦고, 기록했다. 기록이라는 말이 참 이상하다. 가족을 돌보는 일이 언제부터 기록이 되었을까. 어느 날부터는 메모지에 숫자를 적고 있었다. 산소포화도 몇, 흡인 몇 번, 체온 몇. 병원에 갈 때는 그 메모를 깔끔하게 옮겨 적었다. 글씨를 또박또박 쓰는 순간이 오히려 잔인했다. 서류에 맞춘 삶. 그 반복 속에서 하루는 흘렀지만, 살아간다는 감각은 점점 옅어졌다.
아픔과 고통은 늘 함께 있었지만, 행복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여행 이야기는 꺼내지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누군가 “나중에...”라고 말하려다가도 말끝을 삼켰다. 나중이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즐긴다는 말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웃는다는 행위는 설명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설명 없이 웃고 떠든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웃고 떠들었다고 쓰기엔 좀 과장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잠깐. 정말 잠깐이었다. 저녁 무렵이었고, 엄마가 부엌에서 국을 데우고 있었고, 우리는 거실 식탁 근처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가 휴대폰에서 예전 사진을 꺼냈다. 아버지가 아직 걸어 다니던 때, 얼굴이 통통하고 목소리가 컸던 때. 사진 속 아버지는 팔을 벌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우리는 다들 우스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때 아빠 표정 봐.”
“와, 진짜... 저때는 왜 저렇게 힘이 넘쳤지?”
“엄마도 젊다.”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먼저 웃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웃음은 늘 그렇다. 갑자기 터지고, 어느새 사람들 얼굴을 바꿔놓는다. 그 순간만큼은 거실이 다시 집 같았다. 밥 냄새가 나고,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사람 목소리가 섞였다.
그런데 우리가 웃고 있던 그때, 큰방 쪽에서 모니터가 짧게 울렸다.
“삐이익-”
정말 짧은 소리였다. 경고가 아니라 확인 같은 소리. 센서가 살짝 흔들렸을 때 나는, 그 정도의 소리. 하지만 그 소리는 우리 웃음을 한 번에 멈추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들 동시에 숨을 죽였다. 거실 공기가 갑자기 얇아졌다.
우리는 서로를 봤다. 웃음을 멈춘 얼굴들이 너무 빨리 굳었다. 마치 웃으면 안 되는 일을 하다 들킨 사람들처럼. 나는 무의식적으로 큰방 문틈을 봤다. 문은 여전히 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희미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그 안에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아버지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 없는 느낌. 정확히는, 옆에 있어도 닿지 않는 느낌. 가족들이 모여 한 번씩 웃고 떠들 때, 예전 같으면 아버지가 끼어들었을 것이다. “뭘 그걸로 웃어” 하면서도, 제일 크게 웃었을 것이다. 사진 속 자기 얼굴을 보고 “야, 내가 저랬냐?” 하면서. 목소리가 컸고, 존재감이 컸고, 집 안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그날의 웃음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큰방에 누워 있는데도, 웃음은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우리가 만든 원 안에서 아버지는 빠져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뭔가가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이게 바로... 부재 연습이었다.
엄마가 작게 말했다.
“조용히 해. 아빠 깨겠다.”
그 말은 핑계처럼 들렸다. 물론 아버지가 피곤할 수도 있다. 소리가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다들 알고 있었다. 우리가 방금 한 웃음이, 아버지에게 가면 안 되는 웃음 같아서. 아버지가 듣는 순간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느니 차라리 조용해지는 게 쉬웠다.
우리는 밥을 먹었다. 급히 먹다 남긴 밥그릇이 식탁 위에 남았고, 국은 금방 식었다. 말은 줄었다. 방금 전의 사진은 휴대폰 화면 속에 그대로 있었는데, 아무도 다시 열어보지 않았다.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큰방에서 새어 나오는 기계음이 집의 주된 소리가 되었다.
그날 밤 나는 큰방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 문틈으로 아버지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 방금... 예전 가족 사진 봤어.”
그런 말이라도. 그런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아버지 눈빛이 그 말을 받아낼 것 같아서. 그 눈빛이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그게 부담이 됐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대신 눈이 있었다. 그 눈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하는 말 사이에서 멈췄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말을 걸지 않아도 되는 쪽이 더 편해졌다. 그 편해짐이 무서워서, 나는 문을 더 닫지 못하고, 더 열지도 못한 채... 다시 반쯤으로 남겨두었다.
집 안 분위기는 사람이 사는 공간과는 달랐다. 액자 속 사진들은 먼지가 쌓였고, 커튼은 낮에도 반쯤 닫혀 있었다. 창문을 여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바람이 들어와 큰방 기계 소리를 흔들까 봐, 아버지 눈을 자극할까 봐. 집은 숨 쉬는 공간이 아니라 유지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나는 커피를 타면서도 어떤 향을 피했다. 예전엔 아버지가 좋아하던 달큰한 냄새가 있었는데, 그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너무 쉽게 무너질 것 같아서. 그렇게 사소한 것들을 하나씩 피해 다녔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조금씩 부재를 연습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직 큰방에 누워 있는데도, 이미 떠난 사람처럼 대하는 연습이었다. 말을 걸지 않아도 되는 법, 표정을 관리하는 법,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법을 몸이 먼저 익혔다. 큰방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그 침묵에 익숙해지려 애썼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줄었고, 그 줄어든 불안만큼 죄책감이 쌓였다.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이 있었다. 밤새 기계음 사이에서 얕은 잠을 자고, 새벽에 알람보다 먼저 큰방 쪽을 확인하는 일. 하루가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마음은 계속 대기 상태에 놓여 있는 감각. 몸은 집에 있는데, 정신은 늘 긴급 호출을 기다리는 위치에 서 있었다. 우리는 쉬고 있었지만 쉬지 못했고, 살고 있었지만 살아간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아버지의 하루가 늘 같았던 것처럼, 우리의 하루도 점점 닮아갔다. 말수는 줄고, 표정은 단단해졌고, 웃는 법을 잊어갔다. 아니, 잊었다기보다... 웃을 때마다 뭔가를 잃는 느낌이 들었다. 웃으면 아버지를 밀어내는 것 같고, 웃지 않으면 우리도 함께 죽어가는 것 같고. 그 사이 어디쯤에서 우리는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서히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그 연습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끝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시간이 우리 모두를 조용히 닳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큰방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기계음이 집의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우리는 그 소리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웃음조차 아버지에게 닿지 않게 조절하면서, 어느새... 이미 떠난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