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끊긴 날, 눈이 대신 말을 했다
아버지가 말을 잃은 건 다른 루게릭 환자처럼 천천히 진행된 근육 이상으로 인한 발음의 붕괴가 아니었다.
말이 사라진 날은 중환자실에서 기도삽관이 들어간 그날이다.
그 전까지 아버지는 적어도 얼굴 쪽은 다른 루게릭 환자들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서 루게릭이란 병을 좀 늦게 확진을 받은 이유도 있다.
눈빛이 분명했고, 표정이 남아 있었다. 호흡이 힘들어 지기 전까지 말도 아주 잘했다. 그래서 더 뒤늦게 깨달았다. 아버지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 끊겨버린 사람이 된 거였다.
호흡이 점점 무너졌고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중환자실은 말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문이 닫히면 소리도 같이 닫혔다. 모니터의 삐 소리, 기계가 밀어 넣는 숨, 간호사 신발 밑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우리는 면회 시간에 맞춰 들어가 아버지 얼굴을 확인하고, 손을 만지고, 아무 말이나 붙잡으려 했다.
그날은 공기가 달랐다.
의료진의 손이 평소보다 빨랐고, 주변이 더 정돈돼 있었다. 지금 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설명은 짧았고, 동의서는 빨리 넘어갔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끄덕이는 동안에도 마음 한쪽은 계속 뒤로 물러섰다.
기도삽관이 들어갔다.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목소리는 길을 잃었다. 아버지가 말을 잊은 게 아니라, 말이 나올 통로가 사라진 것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어도 밖으로 나오는 방법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눈으로 우리를 찾았고, 우리는 그 눈빛이 너무 또렷해서 제대로 오래 붙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위루관도 함께 달 수밖에 없었다.
먹는 일은 더 이상 조심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식사 대신 주입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숟가락이 사라지고, 시간표가 남았다. 밥상에서 나던 소리는 줄어들고, 약통 뚜껑 여는 소리와 유동식 박스 뜯는 소리가 늘었다.
그게 우리 일상에서 가장 조용하게,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무너진 부분이었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도 바뀌어 있었다.
전동 침대가 큰방 한가운데 들어왔고, 그 주변으로 기계와 소모품이 모여들었다. 산소발생기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고, 석션기(가래 흡입기)는 필요할 때마다 위이잉 소리를 냈다. 협탁 위에는 약통, 알코올 솜, 거즈, 여분의 카테터 튜브가 줄을 섰다.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렸고, 전선들은 케이블 타이로 묶여 여기저기 뻗어 있었다.
공기 냄새도 달라졌다.
알코올 솜 냄새, 플라스틱 냄새, 기계가 내는 건조한 열기. 생활의 냄새가 아니라 관리의 냄새였다. 우리가 익숙했던 큰방은 사라지고, 병의 동선이 중심이 된 공간이 남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말이 끊기자, 아버지는 더 또렷해졌다.
정신은 끝까지 또렷했다. 듣고, 보고, 이해하는 속도가 느려지지 않았다. 머릿속은 멀쩡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사람을 날카롭게 만든다. 말이 막히면 마음이 막힌다. 마음이 막히면 예민함이 먼저 튀어나온다. 아버지의 표정은 그때부터 한층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아버지에겐 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말 대신, 짜증 대신, 혹은 공포 대신 눌러야 하는 소리. 발가락으로 누르는 무선 초인종이었다. 침대 끝 쪽에 버튼을 두고, 아버지가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발가락 하나가 닿는 위치를 맞췄다.
딩동~~
그 소리가 울리면 우리는 조건반사처럼 뛰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을 마시다 말고, 양치하다 말고, 잠결에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가래가 막힌 건지, 체위가 불편한 건지, 통증이 온 건지 초인종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지만, 지금 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찍어줬다.
가끔은 버튼을 눌렀는데 소리가 안 날 때가 있었다. 접촉이 나쁘거나, 발가락 힘이 빠져서 끝까지 못 눌렀거나. 그럴 땐 더 무서웠다. 우리는 스스로를 못 믿어서 방문 앞에 멈췄다.
“방금 들렸어?”
대답이 엇갈리면, 그때는 뛰는 게 아니라 달려가서 확인하는 게 된다. 초인종은 아버지의 목소리였고, 동시에 우리 가족의 심장박동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도 아버지는 시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약은 몇 시, 유동식은 몇 시. 분 단위까지 정확해야 했다. 우리가 한 번이라도 늦으면 아버지는 입을 크게 벌렸다가 다급하게 오므리며 소리를 냈다.
“쩝 쩝... 쩝.”
혀를 차는 소리라기보다, 말 대신 튀어나오는 신호였다. 그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하던 일을 멈췄다. 아버지의 눈은 우리 얼굴이 아니라 벽시계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간 지났잖아.’
‘뭐 하고 있어.’
‘나, 기다리잖아.’
말은 없는데 문장이 들렸다. 그렇게 느껴졌다.
강박은 약의 순서에도 있었다.
가루약은 물에 얼마나 개어야 하는지, 어떤 약을 먼저 넣어야 하는지, 주사기를 미는 속도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아버지는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다. 말이 막혔으니, 아버지는 눈과 표정으로 지시했다.
내가 약을 너무 묽게 타면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저었다. (아니야.)
주사기를 조금 빨리 밀면 눈을 부릅뜨고, 목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천천히.)
우리는 스무고개처럼 물어야 했다.
“물이 많아?”
(눈 깜빡임.)
“속도가 빨라?”
(눈 깜빡임.)
한 번이라도 틀리면 아버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다시 쩝쩝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짜증이라기보다... 무력감이 터지는 소리 같았다. 내 몸을 내가 못 움직이는 것도 모자라, 내 생명줄이 남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 아버지는 그걸 매번 또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TV도 예외가 아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가 스스로 고를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들었다. 남은 것에 더 매달리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채널이 바뀌면 아버지의 눈동자가 먼저 움직였고, 원하는 화면이 나오면 눈꺼풀이 단단해졌다. (거기.)
실수로 채널을 지나치면 그때도 “쩝...” 소리가 났다. 우리는 리모컨을 들고 화면이 아니라 아버지의 눈을 봤다.
남들이 보면 까칠하다고 말할 장면이었겠지만, 나는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통제였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것마저 흐트러지면 아버지는 정말로 스스로를 사물로 느낄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그게 우리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금만 늦어도, 조금만 어긋나도 날아오는 눈빛. 어머니는 주사기를 들고 손을 떨기도 했다.
“여보, 알았어. 알았다고...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도 힘들어서 그래.”
어머니가 울먹이며 말해도 아버지는 표정을 쉽게 풀지 못했다. 풀고 싶어도, 그게 안 되는 것처럼.
밤이 되면 더 심했다.
집이 조용해질수록 아버지의 의식은 더 또렷해졌다. 우리가 이불을 뒤척이는 소리가 나도, 복도에서 미세한 발소리가 나도 아버지는 바로 알아챘다. 유동식 시간이 가까워지면 알람보다 먼저 눈을 뜬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정확한 시간에 들려오는 쩝쩝 소리나 초인종 소리.
우리는 자다가도 그 소리에 조건반사처럼 깼다. 더 자고 싶어도 못 들은 척할 수가 없었다. 그 소리는 가래때문에 석션해달라는 소리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자주 “나 여기 있다”는 생존 신고처럼 들렸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석션을 하고 나면 아버지의 눈이 달라진다는 거였다.
방금 전까지 독기가 있던 눈매가 조금 풀리고, 그 자리에 젖은 그늘이 잠깐 고였다.
‘미안하다...’
말로는 못 하지만 눈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아버지를 원망하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죄책감이 들어왔다. 까칠함이 싫다가도, 그 까칠함이 아버지를 버티게 하는 마지막 버팀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 오가지 않으니, 감정도 풀리지 못한 채 계속 제자리에서 돌았다.
집 안에는 기계들이 들어와 있었지만, 아버지의 또렷한 정신을 위로해 줄 장비는 단 하나도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갑자기 끊겨버린 목소리, 그 대신 더 커진 눈빛. 우리는 그 눈빛을 읽고 또 읽으며 하루를 넘겼다. 시간 맞추고, 순서 지키고, 눈치로 해석하고, 틀리면 다시 고치고. 그게 그 시절의 대화였다.
아버지는 말을 잃었지만, 생각과 자존심은 잃지 않았다.
그래서 더 예민했고, 더 까칠했고, 더 힘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까칠함을 견디며, 동시에 그 안에 숨어 있는 살아 있으려는 의지를 견뎠다.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째깍거리는 시계와 쩝쩝과 딩동 소리 사이에서.
말 없는 전쟁 같기도 했고, 말 없는 대화 같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었던 말은 거의 없었다. 대신 우리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했다. 시간 맞추고, 순서 지키고, 눈빛 읽고.
그게 아버지가 남긴 방식이었고, 우리가 배운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