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제라드 버틀러)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패하고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대사를 외쳤다.
"My queen! My wife! My love."
영화에서 레오니다스 왕의 이 대사는 모두 한 여인, 고르고 여왕(레나 헤디)을 가리켰다.
고르고 여왕은 스파르타의 왕비이자, 레오니다스의 부인이며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즉, Queen = Wife = Love.
만약 이 대사를 중종에게 적용한다면 어땠을까? 내가 봤을 때, 그의 경우에는 Queen ≠ Love였다.
중종은 박원종 등에 의해 왕이 된 지 7일 만에 조강지처 신씨를 쫓아내야 했다.
그의 부인 신씨는 반정 세력에 의해 살해된 연산군의 측근, 신수근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유순·김수동·유자광·박원종·유순정·성희안·김감·이손·권균·한사문·송일·박건·신준·정미수 및 육조 참판 등이 같은 말로 아뢰기를,
"거사할 때 먼저 신수근을 제거한 것은 큰 일을 성취하고자 해서였습니다. 지금 수근의 친딸이 대내에 있습니다. 만약 궁곤(宮壼)으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해지고 인심이 불안해지면 종사에 관계됨이 있으니, 은정을 끊어 밖으로 내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뢰는 바가 심히 마땅하지만, 그러나 조강지처인데 어찌하랴?" 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신 등도 이미 요량하였지만, 종사의 대계로 볼 때 어쩌겠습니까? 머뭇거리지 마시고 쾌히 결단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종사가 지극히 중하니 어찌 사사로운 정을 생각하겠는가. 마땅히 여러 사람 의논을 좇아 밖으로 내치겠다." 하였다.』 (《중종실록》 1506년 9월 9일)
반정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이 죽인 신수근의 딸이 왕비가 되면 훗날 중종을 설득해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었으니 처음부터 싹을 잘라버린 것이었다.
후환이 두려워 명의 책봉을 받은 세자 이황 대신 진성대군을 왕위에 앉히고, 결국엔 제거해버린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중종은 한 번은 거절 의사를 표명했으나, 공신들이 뜻을 굽히지 않자 이를 받아들였다.
바로 다음 날, 그들이 새로 중전을 뽑으라고 간했고, 이번에도 역시 허수아비 왕은 그저 '오케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조 판서 송일·참판 정광세가 아뢰기를, "신씨가 이미 나갔으니, 처녀를 간택하여 내직을 갖추고, 또 중궁 책봉할 일도 미리 거행하소서." 하니,
‘모두 아뢴 대로 하라.’ 전교하였다.』 (《중종실록》 1506년 9월 10일)
이로부터 7일 뒤, 자순대비가 후비(后妃) 간택에 대해 전교하였다.
『대비께서 정승들에게 전교하기를, "후비의 덕은 얌전하고 착한 것이 제일인 것이다. 지금 중궁을 간택하는 때에 한갓 용모만을 봐서는 안 된다. 내가 먼저 두세 처녀를 간택하여 후궁에 두었다가 서서히 그 행실을 보다 배필을 삼도록 하니 어떠한가?" 하니,
정승들이 회계하기를, "대비의 분부가 이와 같으시니, 바로 신 등의 뜻에 부합합니다. 이는 실로 종사와 신민의 복입니다." 하였다.』 (《중종실록》 1506년 9월 17일)
자순대비의 말은 왕실의 웃어른이 할 수 있는, 지극히 의례적인 수준의 말이다.
그러나 당시 중종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했을 때, 겉으로 드러난 게 다가 아니다.
이들의 대화를 좀 더 직설적으로 써 보겠다.
(대비) "아들 녀석이 얼굴만 보고 혹해서 함부로 너희 뜻에 반하는 여인을 왕비를 정하지 않도록 내가 처리하겠다."
(정승들) "역시 대비마마는 저희와 말이 통하는군요. 그렇 그렇게 알고 기다려 보겠습니다."
그런데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될 것 같았던 왕비 간택은 이상하게 지지부진해졌다.
이런 일이 있었다.
『좌의정 박원종·우의정 유순정이 빈청(賓廳, 국왕 등의 가례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 관서)에 나아가 문안하고, 이어 아뢰기를, "중궁을 지금까지 정하지 않으시니, 온 나라 신민이 모두 미안히 여기고 있습니다. 청컨대 일찍 정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말은 당연하나 나로서도 스스로 정할 수 없다." 하였다.
대비가 빈청에 전교하기를, "성이 이씨(李氏)라도 종친만 아니면 대궐에 들여도 무방한가?" 하니,
원종 등이 회계(回啓)하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동성에 장가들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또 ‘이씨에게 장가들지 말라.’는 말이 《대전(大典)》에 있으니, 해당 관사로 하여금 고례를 상고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대비가 전교하기를, "국모를 하필 동성에게 취할 게 있겠는가? 고례를 상고할 것 없다." 하였다.』 (《중종실록》 1507년 1월 18일)
기록에서는 자순대비가 정승들에게 종친이 아닌 동성(同姓)의 처자를 국모로 취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본 것으로 되어 있으나, 내 생각에 이건 그녀의 뜻이라기보다는 중종의 의지로 봐야 할 것이다.
즉, 중종이 공신들의 압력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힘없는 국왕 중종의 반항은 허무하게 진압되었다.
이 기록 역시 직설적으로 재구성해 보겠다.
(박원종 등) "왜 중전 빨리 안 뽑아? 빨리 뽑아!"
(중종) "그게 말이지, 울 엄마가 할 말이 있다는데... 엄마?" (자순대비를 쿡 찌른다)
(자순대비) (마지못해) "너희가 미는 사람 말고 다른 처자를 들이면 안 될까?"
(박원종 등) (화를 버럭 내며) "에이씨! 지금 저희랑 장난하십니까?"
(자순대비) (안절부절못하며) "그렇지? 나도 안될 줄 알았어." (중종의 등짝을 때리며) "거봐, 엄마가 안된다고 했지?"
(중종) "에이씨! 내 와이프 뽑는 거잖아! 왜 내 맘대로 못 하는 건데!"
코미디 같겠지만, 나는 이게 실상을 더 정확히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 4명의 여인, 즉 왕비 후보자들이 궁에 들어왔다.
숙의 윤씨, 홍씨, 박씨, 그리고 나씨.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먼저 숙의 윤씨. 명문 파평 윤씨 가문 출신에, 정국공신 3등에 책봉된 윤여필의 딸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바로 중종반정을 주도한 '삼대장', 그중에서도 으뜸인 박원종의 외조카였다는 점이다.
다음 숙의 홍씨. 반정 1등 공신이자 당시 도승지, 즉 비서실장이었던 홍경주의 딸이었다.
이에 반해 숙의 박씨와 나씨의 가문은 한미했다.
『좌의정 박원종·우의정 유순정이 아뢰기를, "숙의 홍씨·윤씨의 부친은 이미 승수(陞授)가 되었는데, 나씨·박씨의 부친만이 은혜를 입지 못하였습니다. 청컨대 박씨의 부친으로 서반의 참상(參上) 을 삼고, 나씨의 부친으로 동반에 승수하여, 봉록을 넉넉히 주게 하소서."』 (《중종실록》 1507년 3월 18일)
조선 조정에서 동반은 문관을, 서반은 무관과 기타 품계직을 의미했다.
즉, 나씨의 부친이 동반의 자리를 받은 반면, 박씨의 부친은 서반에 그쳤다는 것은 박씨 집안이 상대적으로 가장 한미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문제를 내겠다. 저 네 명중에서 누가 중전이 되었을 것 같은가?
그렇다. 박원종의 외조카였던 숙의 윤씨다.
그런데 중종은 중전을 간택하는 과정에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좌의정 박원종·우의정 유순정·좌찬성 박안성·우찬성 송일·좌참찬 이손·우참찬 이즙이 아뢰기를, "왕비 책봉하는 일을 신 등이 전일에 두 번이나 아뢰었으나, 이제까지 국모를 정하지 못하여 대체에 온당치 못하니, 바라건대, 속히 정하시어 나라 사람들의 소망에 맞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속히 국모를 정하는 일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이같이 큰일을 갑작스럽게 빨리 정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선왕들께서도 후사를 중히 여기시므로 결연히 정하지 못하신 것이다. 이제 자전(慈殿, 자순대비)의 뜻도 그러시고 나 역시 그 때문에 어렵게 여긴다."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큰일을 갑자기 정하기가 온당치 못하다는 하교는 매우 당연합니다. 국모의 범절은 마땅히 덕행으로 으뜸을 삼는 것이요, 비록 뒤를 이을 후사가 없더라도 다른 분에게 아들이 있으면 역시 대통(大統)을 잇게 될 것입니다." 하니,
곧 윤숙원 【윤여필의 딸】 으로 왕비를 삼도록 명하였다.』 (《중종실록》 1507년 6월 17일)
이 기록 역시 이해하기 쉽도록 재구성해 보겠다.
(박원종 등) "이게 세 번째다. 더 이상은 못 참아! 빨리 중전 뽑아!"
(중종)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말야. 성급하게 중전을 뽑았다가 왕자를 낳지 못하면 어떡해? 나랑 엄마는 그게 걱정이야."
(박원종 등) (화를 삭이며) "중전이 왕자를 못 낳으면 다른 후궁이 낳은 아들을 왕으로 앉히면 되잖아!"
(중종)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오케이, 콜! 분명히 약속했다? 나중에 두말하기 없기!"
중종이 왕권이 미약하다 보니 재위 기간 내내 공신들에게 휘둘리기만 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봤을 땐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당시 중종은 구도상 윤씨를 중전에 앉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세등등한 공신들의 압박을 무려 10개월을 버텨냈다.
더군다나 이때 중종은 아직 만 20세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지간한 정신력과 참을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진즉 나가떨어져 윤씨를 중전으로 삼는 계약서에 도장 찍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참다못한 공신들이 먼저 나가떨어졌다.
공신들은 중종과 윤씨를 중전에 앉히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특약조건, 즉 중전이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면 다른 후궁이 낳은 아들을 왕위에 앉힌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넣어버렸던 것이다.
이 특약조건을 계약서에 넣은 것은 중종이 공신들에게 거둔 정치적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중종 입장에서 보자면 중전이 왕자를 낳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중전과 부부관계를 갖지 않거나, 피임을 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이 총애하는 여인에게서 큰아들을 얻는다면, 훗날 특약조건에 의해 왕위는 그 아들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중종이 마음에 두고 있던, 즉 중전으로 삼고 싶었던 여인은 윤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중종이었더라도 윤씨를 중전으로 삼기 싫었을 것이다.
물론 박원종이 자신을 왕위에 앉혀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조강지처를 제 맘대로 내쫓아 버리게 하고서는 그의 조카딸을 중전으로 삼으라고 겁박하고 있는데, 반발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
실제로 훗날 중종이 인종에게 한 행동을 보면 이때 박원종의 행동에 대한 미움과 반발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후술토록 하겠다.
아무튼, 윤씨가 공식적인 'Queen'이 되었지만, 중종의 마음속에 'Love'는 따로 있었다는 말이다.
중종으로 하여금 공신들과 줄다리기를 하게 만들고, 특약조건까지 얻어내게 만든 원동력.
그가 정말 사랑했던 여인.
그녀는 바로 숙의 박씨, 훗날의 경빈 박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