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게 금주선언(팀 미팅 전 잡담시간)과 금주기한(한 달 후 회식)이 설정되어 시작된 금주일기 입니다.
술을 끊어본 적도, 끊으려 한 적도 없는 나약한 사람이지만, 이 글을 쓰며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금주 2주차 변화
행동/신체 변화
-하루 1~2번, 식후에는 바로 화장실에 가야하는 과민성 대장의 소유자 였는데,
지금은 하루 거르기도 한다. 특히, 식후에 바로 오던 응급신호가 많이 줄어들었다.
-얼굴에 홍조가 없어졌다. 흔히 말하는 술톤이 옅어졌다. 웜톤에서 쿨톤으로 변했다.
-취침시간이 빨라졌다. 새벽 1시에 술기운을 빌려 잤었는데 이제는 둘째를 재우면서 밤 9시에 같이 잠든다.
아마 깨어 있어도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일찍 자버리는 듯 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척 개운하다. 오전 업무효율이 좋아졌다. 숙취가 없으니 머리가 쌩쌩 잘 도는 느낌이다.
-술먹방 유튜브를 많이 본다. 또 알콜중독이나 건강 영상도 더 챙겨본다. 내 안에 자아들이 서로 싸우나보다.
음주갈망 변화
-가끔 너무 술이 먹고 싶다. 술 없으면 잠이 안 올 것 같다. 하루에 가장 중요한 루틴이 없어진 느낌이다.
아내와 회사 동료들에게 금주 선언을 안 했다면, 진작에 다시 술을 마셨을 것이다.
-고된 하루를 지낸 날이면 더 생각난다. 냉장고 문을 여러번 여닫는다. (격렬한 육퇴 후, 일요일 저녁 등)
-미리 사둔 술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지난 해외출장에서 사온 고급 양주 2병이 특히나 아깝다.
-삶이 재미 없어졌다. 희로애락 중에 '희'가 빠진 느낌이다. 초식남, 조선시대 선비, 금욕주의자가 된 것 같다.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성시경의 먹을텐데, 수빙수 등등)는 여전히 술을 먹고 있는데, 나만 빠지니 서운하다.
인생이 밋밋해진 느낌이다.
2주차 금주 위기들
1) 2주차 수요일 : 장인어른 생신
장인어른 생신을 맞아 처가네 식구가 우리집에 모였다. 아이들까지 10명이 넘자 명절 분위기가 났다.
족발과 보쌈 한 상이 차려졌다. 평소였으면 다 함께 맥주를 마셨을 것이지만, 난 금주 소식을 알렸다.
술을 좋아하는 아내는 나를 위해서인지 이번엔 술을 안 마셨다. 덕분에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2) 2주차 금요일 : 둘째의 감기
둘째가 회사 어린이집을 다닌지 한 주를 넘기기도 전에 누런 콧물을 보였다.
병원에서 약한 중이염과 코감기 진단을 받았다. 귀가 아파서 컨디션이 떨어지고, 잠도 많이 깰 꺼라고 했다.
역시나 둘째는 떼도 늘고 잠자기 힘들어했다. 내 품에 안긴 상태에서 뒤로 벌렁 넘어진다.
안그래도 아빠 바라기인 딸인데, 컨디션이 안 좋아지니 내 품에서 떠나길 거부했다.
퇴근 하고 집에 온 이래로 몇 시간을 계속 안고 있자니, 팔다리가 아프고 떼쓰는 울음에 귀가 멍했다.
"......."
드디어 10시가 넘어 둘째가 잠에 들었다.
안방에서 불이 꺼진 거실로 나왔다. 내 왼쪽 어깨는 둘째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다.
울음소리로 머리가 깨질 듯 시끄럽다가 갑자기 고요해진 집이 어색했다.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니 캄캄한 어둠이 환하게 밝혀졌다.
엊그제 장인어른 생신 때문에 처형이 사둔 맥주가 냉장고 앞면에 가득했다.
원래였으면 단숨에 캔을 따서 반을 먹었을 것이다. 그 생각이 절실했다.
가슴에 난 불을 맥주로 식히고 싶었다. 서둘러 그 옆에 탄산수를 집었다.
"일단 이거 먹고, 도저히 못 참겠으면, 그때 먹자"라고 생각 했다.
다행히, 탄산수와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갈망이 잦아들었다. 이번 주 금주 최대 고비였던 밤이 지나간다.
이번 주는 사실 거의 매일이 고비였다.
어떻게 이겨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오늘만 먹지 말자" 신공으로 어찌저찌 버텨 낸 것 같다.
한 달 금주 선언에 절반을 돌았다. 나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나도 정말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