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양다리

삶에 대한 미지근한 태도

by 키리카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래 좋아, 대표이사란 게 책임이 막중하고 힘든 일이라는 것, 이해하지… 그래도 일단 손 안 벌리고 숟가락만 얹으면 자기 꺼 되는 거잖아! 노력도 없이 거저 가졌으면서 왜 이렇게 징징거려.’


맞다. 대표이사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먼저 경제력이다. 육아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의 외벌이로 사는 동안 재 취업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나 같은 경단녀를 받아줄 곳은 없어 보였다. 월 수입 200만 원이 간절했다. 그런 내가 경력이 전무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세진 모터스 대표이사로 취업할 수 있었으니, 월수 200만 원은 이상은 보장이 된 셈이다. 그 외의 사업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크고 작은 혜택들, 이것들은 재정적인 안정을 준 것 만이 아니라 남편과 시댁으로부터의 정신적인 떳떳함 까지도 안겨 주었다.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주는 모종의 우월감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내 명함에 찍힌 ‘대표이사’라는 직함 하나로,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일단은 ‘대표님, 대표님’ 하고 존대해준다.

그리고, 근로자로 있을 때 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에 덜 얽매여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근로자로 있을 때는 계약된 시간만큼 정확하게 나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맞지만, 대표이사로 있을 때는 계약된 시간이 따로 없으므로 내 마음대로 자리를 공석으로 해 두어도 된다. 물론, 공석으로 두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긴 하다.

나는 그렇게 거저 받은 혜택들을 발로 뻥 차고 나올 용기가 없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했었고, 스웨덴 도피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뻥 차고 나오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끊임없이 남들처럼 치열하게 사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착실하게 그것들을 해왔다. 그래서인지 40대에 가져야 할 경제력, 집 한 채가 없다는 것이 내가 가족과 아이들에 대한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 했다.


결국 나는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붙잡고 담대하게 나아가지 못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핑계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둘 때도, 아이를 봐줄 곳이 없어서요 라는 핑계.

아이들을 돌보다 힘이 들 때면 이대로 나의 커리어를 단절시키고 싶지 않다는 핑계.


세진 모터스에 들어갈 때에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핑계.

세진모터스에 일하다 힘이 들 때면, 나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핑계.


아이들 학교생활을 잘 챙겨주지 못할 때면, 일하는 엄마여서라는 핑계.

일을 하다가 빨리 퇴근할 때면,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핑계.


이렇게 늘 핑계만 대고 있는 나 스스로가 초라해 보였다. 속상했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그래도 열심히 스스로 알아서 잘 큰 딸로 부모님의 자랑이 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부모 도움 없이는 아무 능력이 없는 애물단지 같은 딸이라니……


우리 엄마의 과거는 핑계가 없는 삶이었다. 엄마는 엄마로서의 역할도, 사장으로서의 역할도 무엇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엄마가 평생을 걸고 운영했던 3급 자동차 정비소를 엄마는 늘 장군같이 앞에서 진두지휘했다. 손님 응대, 가게 운영, 직원 관리,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뒤에서 조용히 세무, 회계적인 조력을 하는 동안 모든 사업의 실무는 엄마가 앞에서 꾸려나갔다.

집에서의 엄마 역할도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저녁 늦게 퇴근하고 와서도 꼭 우리 남매를 위해 손수 맛있는 저녁밥을 지어줬다. 온갖 나물 반찬에, 때 되면 김치, 깍두기 등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담갔다.


어린 나는 꼭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 입시를 볼 때 면접관이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았었다. 다른 아이들은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들의 이름을 이야기하였지만, 나는 ‘우리 엄마요’라고 대답했다.

면접관들은 눈이 커져 나에게 어머니가 어떤 분이신지 물었다.


“우리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했어요. 매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 남매에게 맛있는 밥을 지어줬어요. 엄마는 일도 잘하고 우리도 잘 돌봤어요. 저도 엄마처럼 아이들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당시만 해도 맞벌이가 흔치 않은 시절, 엄마가 일을 했고, 그것이 자동차 정비소라는 사실은 그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환영에 갇혀 있었다. 엄마처럼 되기 에는 나의 역량이 너무 작았다. 나의 작은 역량 안에서 그것을 해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버거웠다.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해 왔던 것은, 그만큼 내가 그러한 삶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처절하게 자기 몸과 마음을 쳐야 가능한 일인지 너무 무지했다.

나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에게는 핑계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세진모터스의 삶은 어느새 핑계의 핑계만 대고 있는 이런 나 자신에 대해 무기력함을 느낄 틈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꼭 엄마처럼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적당히 사는 삶은 안 되는 것일까?’


오히려 마음속에서 발화된 작은 반발심은 나에게 작은 원동력이 되기까지 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한다고! 내가 핑계 좀 대면 안돼? 나름 이 정도면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아냐? 나를 이렇게 내가 원하지 않는 삶에 욱여넣고 살고 있는데. 까짓 거 핑계 좀 대는 게 대수 냐고’


철저히 수동적인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오히려 핑계였다. 핑계로 인해 어느 한쪽에 매몰되지 않고 적절히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엄마의 환영에 갇혀있으면 안 되었다. 엄마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엄마에게 주어진 삶과 나에게 주어진 삶은 다른 것이니까.

나는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모든 핑계의 가능성을 놓고, 더 적당히, 주어진 틀에서 주어진 것들을 헤쳐나가는 방식으로 세진모터스에서 버티기로 했다. 비록 내가 일도 육아도 엉망진창으로 헤매고 있더라도, 그것이 끝이 보이는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고 버티기로 했다. 나의 모든 역량을 모아 할 수 있는 것, ‘버팀’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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