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당신들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스웨덴 도피 프로젝트에 실패한 후, 세진모터스에서 작은 것부터 하나씩 버텨보기로 했다.
적성에 안 맞아도 좋다. 잘할 수 없는 일이라도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주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해 보자 라는 생각을 했다. 손님 응대, 간단 견적, 그 외 잡다한 행정, 서류 업무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적당히 균형을 맞춰가며, 내 페이스대로 했다.
세진모터스에서 나는 더욱 단단해지고, 환경으로부터 둔감해질 수 있는 둔감력을 얻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꼭 이 일이어야 하는지.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면 살아내 보자.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삶 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징징거려서는 안 된다.
그 무렵, 엄마가 운영하고 있던 3급 정비소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정비소가 있던 땅 주인이 땅을 아파트 건설사에 팔게 되면서 엄마가 평생 운영했던 그곳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엄마의 운영 노하우를 세진모터스에 들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늘 내가 존경해왔던 엄마가 와 준다면 너무나 든든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엄마는 하시던 사업을 접고 세진모터스의 이사로 영입되어 여러 가지 경영 코치를 해 주었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하는 출퇴근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작은 것 하나부터 세세하게 지적하였다. 그동안 내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동선들, 작업장 배치, 공장 외관, 고객쉼터 등을 하나하나 점검했다. 그리고 엄마는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뛰었다. 직원들에게 시키기 전에 늘 자신이 몸으로 먼저 일을 시작하였다. 직원들은 좌불안석이 되어 엄마가 하는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엄마의 카리스마는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그것이었다.
엄마는 손님들에게 친절하셨고, 정직하셨지만, 이상한 손님들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았다.
무리한 요구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엄마는 전사와도 같았다.
엄마의 가르침대로 하나하나 실전에 적용했다. 하지만, 엄마의 방법을 내가 한다고 모두 통하지는 않았다. 나와 엄마는 너무 성향이 달랐다. 내가 어설프게 엄마 흉내를 내면 역풍을 맞기도 했다.
작정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과 여러 일로 부딪힐 때마다 엄마는 절대로 지지 말라고 코치하셨다. 때로는 지는 게 훨씬 쉬울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의 코치대로 일처리를 못하고 손해를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 부모님이 살아오셨을 인생이 고스란히 마음속에 느껴진다.
그 어느 날도 어느 손님 때문에 너무 진을 뺀 하루가 있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고 싶었지만 그럴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면서 침대에 고꾸라져 씻지도 않고 잠들어 버렸다. 잠에 들면서 어릴 적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내가 강아지를 사달라고 떼쓰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의 엄마도 무척이나 고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런 걸로 떼쓰지 말라고,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화를 내었었다. 티브이를 켜 놓은 채 거실에서 쓰러져 잠이 든 엄마의 모습이 꿈속에 떠올랐다. 아… 엄마의 고된 하루하루의 모습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했던 그 고단함. 그때 나는 서러웠지만, 돌이켜보니 사랑이었다.
내가 세진모터스를 탈출하려고 했었던 것이 나의 교만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잘나서 유학도 다녀오고 공기업에 다녔던 것도 아니었다. 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 뛰어다녔기 때문이었다.
“아, 자식들 잘 키우려고, 한 푼이라도 더 모아서 아이들 가르쳐 주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손님에게 지지 않고 싸우셨구나…”
엄마와 하루하루 세진모터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는 엄마의 고단했던 인생에 대해 공감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애써 버티고 있는 딸에 대해 공감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엄마와 아버지가 저녁에 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뭔가 중대 발표가 있다는 듯, 평상시에 잘 꺼내지 않는 위스키를 꺼냈다.
“너도 뭐 맥주 한잔 해라.”
엄마가 냉장고에서 작은 맥주캔 하나를 꺼냈다. 잔이 다 채워졌을 때, 아버지가 위스키를 입에 한 모금 가져가며 이야기를 꺼내셨다. 항상 말이 없으신 아버지는 취기를 빌려 본인의 속을 이야기하시곤 하셨다.
“우리 딸, 그래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뭘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공부를 다시 하고 싶은가?”
“글쎄요. 이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겠어요. 막연히 내가 예전에 회사 다니면서 했던 일이 예술 기획 관련 일이니까, 예술 교육도 해보고 싶고, 일본어 실력도 아까우니까 번역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스웨덴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었잖아.”
“그냥 애들 교육도 해외에서 시키고, 저도 예전 전공 심화시켜서 해볼 생각이었는데. 뭐. 현실감각 없다면서요. 저도 생각해보니 이제 그럴 나이는 아닌 것 같아요.”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내 엄마가 입을 열었다.
“세진모터스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왔어.”
“……”
나 역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세진모터스에서 힘이 들 때면 입버릇처럼 “그냥 팔아버리고, 엄마, 아빠 노후 편하게 있는 돈 다 쓰고 가세요.”라고 투정 부리곤 했었다. 마치 그것이 부모님을 위하는 것 인양, 사실은 내가 편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인데. 내가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시무룩해져 있던 부모님의 표정이 이제야 다시 떠올랐다. 평생을 걸고 해온 자동차 정비업, 그 자동차 정비업의 꽃으로 여기셨던 자동차 정비공장, 그 평생의 보물을 딸에게 선물로 주고 싶으셨는데, 딸은 그 따위 것 필요 없다고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엄마가 세진모터스에 가 있는 동안 보아하니, 우리 딸이 그래도 애써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데, 경기도 예전 같지 않고, 직원들 구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아. 예전만큼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야. 그래서 엄마 생각에는 차라리 이걸 정리하고, 너도 너 하고 싶은 일 찾아서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했어.”
나의 가슴은 쿵쾅거렸다. 그렇게도 원했던 자유…… 자유 그 자체 보다도 부모님에게 대표자로서가 아닌 딸로서 이해받았다는 위로가 더 컸다. 그것과 동시에, ‘부모님이 이제는 나이를 먹기 시작했구나, 더 이상 사업운영에 개입된 나를 서포트해 주시기가 버거우시구나 ‘라는 걱정과 연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토록 자식같이 생각하셨던 사업체인데. 하나, 둘씩 정리하시기를 마음먹기까지 마음속에 어떤 폭풍우가 지나갔던 것일까……. 왜 나는 나만 바라보았고, 부모님 마음속의 폭풍우는 바라보지를 못했을까…….
“뭐야, 하고 싶은 일 한다고 할 때는 이 나이에 철도 없다고 뭐라고 하고선…”
“그야, 공부만 백날 해서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고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되어서 그랬던 거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업 맡아보면서 세상 좀 배워보라고 한 거야. 이제 너도 어느 정도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뭘 해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아버지는 그동안 딸에게 했던 모진 말들에 대한 미안함을 약간의 취기를 빌려 진심으로 이야기하셨다. 그렇게 무언가 주기만을 바라고, 잘 살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헤아리기 시작한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한 세대가 이렇게 바뀌고 있구나.
무엇이든지 주기만을 바라는 엄마, 아버지… 나는 언제 당신들처럼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세진모터스는 정리의 절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물려주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꿈, 엄마가 그렇게 알려주고 싶어 했던 버티는 삶의 방식, 그 모든 것이 세진모터스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버텼던 시간을 ‘세진모터스쿨’이라 부른다. 그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주셨던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