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강렬해진다
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강렬해진다.
그것이 희망의 변증법이다...
희망과 낙관주의의 차이... 낙관주의에는 이러한 부정성이 없다.."
(<<불안사회>> 중 p81-82,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다산초당)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현시대를 '불안사회'로 진단합니다.
2012년에 출간된 <<피로사회>>에서 진화했습니다.
먹고사니즘, 생존의 위기에 처한 인간은 능력치를 극단적일 만큼 최대치로 끌어올립니다.
그 결과 번아웃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목격자입니다.
번아웃의 최후가 과로사라는 사실!
그래서 힐링을 찾습니다.
적극적 힐링의 도구를 찾아다니거나 아니면 퇴사를 하거나.
힐링은 순간의 치유로 끝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퇴사는 현재와 미래의 생활을 위협합니다.
그 결과 불안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불안의 치유제는 희망입니다.
다만 낙관주의와 달리 봐야 할 점은 절망을 부정할 수 있는가입니다.
낙관주의는 부정성 자체를 배제하는 개념입니다.
희망은 앞으로 나아감, 도약입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다른 것이며 새로운 것입니다.
미래의 지평선에 존재하며, 예측적이고 전망적이며 행위할 힘을 부여합니다.
물론 희망이 약속이나 열린 미래의 전제는 아닙니다.
행위가 초래할 결과에 무방비 상태이며 행위의 우연성에 귀속되는 일입니다.
자유의지만으로 미래를 보증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꿈꿉니다.
퇴로에 막힌 삶의 절망성을 힘껏 부정하며 열린 결말로 나아갑니다.
희망은 활동적이고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강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입니다.
불안사회에서 희망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