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그토록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되었어. 매일 오후 2시에 소를 몰고 동네 어귀로 모이라는 소식이 들렸지. 점심을 든든히 먹고 소리를 데리고 동네 어귀로 나갔어. 벌써 많은 소들이 줄지어 대장 소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첫 날은 지난 해 대장이었던 동석오빠의 소가 앞장을 서고, 산에 가서 소싸움을 한 다음 올해의 대장을 뽑는 거였어. 소리는 맨 뒷줄에 서서 가야 했어. 청아는 소리의 고삐를 단단히 잡았지. 소리가 먼 길을 가보지 않아서일까? 호기심에 들뜬 어린 아이처럼 지나는 논이며 밭으로 들어가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소리의 머리를 잡아당기느라 청아는 애를 먹었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어. 바로 참새미골이었어. 차고,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큰 샘이 있는 곳이었지. 참새미골은 말로만 들었지 처음 가 본 곳이었어. 그렇게 먼 곳까지 갈 일이 없었거든. 모두들 조롱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소들을 산으로 몰았어. 덩치가 산만한 소들이 어쩌면 그렇게 비탈진 산을 잘도 오르는지 청아는 그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어. 소리도 소들의 뒤를 이어 올라갔지. 송아지들도 엄마소를 따라 열심히 산을 올랐어. 오르다 미끄러지는 소들도 다시 힘을 내어 오르고 올라서 산꼭대기에 다다랐어.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어. 산꼭대기에 오르니 이 산과 저산으로 이어지는 평평한 초원이 펼쳐져 있는 거야.
'세상에! 산꼭대기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너무 좋다.'
청아는 소리 덕분에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어. 주인들이 이랴 이랴 고삐로 때리면서 비탈진 산으로 소들을 몰 때, 과연 넓은 초장이 산 위에 있는 것을 소들은 알기나 했을까?
힘겹게 산 위로 올라온 소들과 주인들은 잠시 쉬기로 했어. 소들은 평화로이 풀을 뜯고, 묘지와 주변의 잔디밭에 다리를 뻗고 앉았어. 눕는 아이들도 있었어. 청아도 누워 보았어. 눈부신 햇살, 높은 하늘, 뭉게구름, 풀내음, 병품처럼 둘러 선 나무들, 청아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곳이었지. 잠시 후에 소싸움을 하기로 했어. 지난 해 대장 소에게 도전장을 내민 소들만 싸우는 거였어.
큰집 오빠가 나섰어. 지난해부터 벼려왔던 기회를 놓칠 순 없었지. 굽은 뿔을 짤라 내어 양 옆으로 곧게 자라게 만들고, 뿔도 뽀족하게 갈아서 단단히 준비를 했거든. 드디어 소싸움이 시작되었어. 밀고 밀리는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난해 대장이 뒤로 돌아서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큰집 소가 쉽게 우승을 했어. 피 흘리는 싸움인지 알고 긴장했던 청아는 마음이 놓였어. 생각보다 흥미진진했어. 일찍 포기하고 도망가는 소가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어. 지난해 우승소가 1년새 늙어 버렸는지 힘없이 대장 자리를 내 주었어.
큰집 소가 우승한 기쁨도 잠시, 새로운 도전자가 생겼어.
"이겨라, 이겨라."
어느새 양편으로 나뉜 아이들은 저마다 응원할 소들에게 열광했어. 큰집 소는 영식이네 소와 다시 경기를 하게 되었어. 첫 번째 경기가 쉽게 끝나버려서인지 큰집 소는 지친 기색 없이 달려들었어. 두 소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 밀고, 밀리는 긴장감 넘치는 경기가 진행되었지. 서로 떨어졌던 소들은 다시 뿔을 흔들며 달려 들었어. 영식이네 소가 무릎을 꿇었어. 와우! 큰집 소가 이겼어. 대장 소가 된 거였어. 즐거워하는 오빠와 함께 청아도 기뻐해 주었지. 소리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도 없이 멀찍이서 이리저리 다니면서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어. 청아는 소리는 절대 소싸움에 출전시키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어. 땀으로 범벅이 된 건 소가 아니라 주인들이었지.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엉덩이를 털고 내려갈 준비를 했어.
"우리는 멱 감고 올 테니까 청아 니는 여기서 놀고 있으래이. 다 빨개벗고 놀기 땜에 가시나가 같이 가면 안돼는기라. 그래서 그동안 머슴아들만 왔다아이가."
"그래도 혼자 놔 두면 안 되제. 머슴아들은 천지바우에서 놀고, 멀리서 고디랑 물고기랑 잡으면서 놀면 안 되근나?"
옥신각신 하더니 청아에게 함께 내려가자고 했어. 모두 신나서 산을 타고 내리달려갔지. 머슴아들은 천지바우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어 던지고 물놀이를 시작했어. 멀리 큰 바위 위에서 빨개벗고 뛰어 내리는 것이 보이고, 첨벙첨벙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지. 청아는 혼자서 고디를 잡고, 물고기를 잡기도 했어. 메기와 붕어, 빠가사리도 잡았지. 혼자서 민물고기를 잡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어. 제법 잡은 고디와 물고기는 돌맹이로 모아 만든 작은 웅덩이에 모셔 두었어.
여름 햇볕에 잘 익은 바위에 앉아 발만 담그고 있어도 기분이 좋았어. 소리는 잘 있는 것일까? 그동안 다른 소들과 어울린 적이 없는 녀석이라 걱정이 되긴 했지만 집에 돌아갈 때 소는 찾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었건 거였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옷을 주섬주섬 입은 머슴아들은 뚝뚝 물 떨어지는 머리를 하고 나타났어.
"청아야, 고기 좀 잡았나?"
큰집오빠가 물었지.
"함 봐라. 많이 잡았제?"
"청아가 물고기를 제법 잡아놨네. 이거 구워먹으면 되것다."
나이 한 두 살 많은 머슴아들은 돌맹이들을 모아 화로를 만들고, 여기저기에서 불 지필 나무가지나 깔비들을 모아왔어. 나무가지를 깔비에 대고 열심히 막대기를 돌렸어. 막대기에서 연기가 피워오르더니 불길이 일었어.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어. 나뭇가지들을 얹어 불을 지피기 시작했지. 다른 아이들은 개구리와 물고기를 잡아왔어. 청아가 잡은 물고기도 다 가지고 왔지. 나이든 아이가 만능 칼을 가지고 개구리며, 메기, 붕어를 손질하면서 말했어.
"작년에 숨과 놨던 철판 좀 가지고 온나."
재빠른 아이 한 명이 녹슨 철판 하나를 가지고 왔어.
"히히, 내가 찾아 왔제."
깨끗 씻은 철판을 화로에 올리고 개구리 몇 마리를 큰 대 자로 올려놓고, 붕어도 몇 마리 올려놓았지. 청아는 비위가 상했지만 유심히 보고 있었어. 그런데 누군가가 개구리 뒷다리 한 개를 선심 쓰듯이 건네주었어.
"묵어 봐라. 맛있대이"
청아는 망설였어. 개구리를 먹게 될 줄은 몰랐어. 그동안 개구리를 구워먹는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먹어보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개구리를 먹는 것은 야만인이나 하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 그러나 거절한다면 가시나라서 그런다고 핀잔을 받을 게 뻔했지. 또 가시나는 앞으로 못오게 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강하게 주장하겠다고 생각을 하니 용기가 생겼어. 그까짓것 눈 질근 감고 먹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받았어.
"맛잇겄네. 고맙대이."
조심스럽게 한입 깨물었어. 고소하고 맛있었지만 삼키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지. 청아도 이제 야만인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어. 소싸움도 끝나고, 멱도 감고, 개구리 구이도 먹고 쉬었으니 소를 찾아서 집으로 갈 일만 남았어.
아이들은 다시 산으로 올라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