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년 전의 일이야. 청아가 열 살 무렵이었지.
새싹이 무성해지는 사월의 어느 날이었어. 아버지가 소 한 마리를 사 오셨어. 청아가 기억하기로 돼지우리에는 늘 꿀꿀 소리가 났지만 그때까지 외양간에 소가 있었던 적은 없었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낯선 소 한 마리가 외양간의 주인이 되어 있었어. 그동안 동네에서 보아왔던 소들과는 사뭇 달랐어. 휘어진 뿔과 매끈한 얼굴, 어마어마한 덩치에 터질 것만 같은 뱃살, 등에 타도 편안할 것 같은 포근한 소, 느릿느릿 점잖게 걸어가면서 한번씩 움메하고 울어주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소는 아니었지. 뿔은 작고 양 옆으로 날카롭고, 얼굴의 털은 억세고 길어서 신경질적으로 보였으며, 갈비뼈가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앙상한 몸, 뒷발짓 크게 하면서 외양간을 이리저리 빙빙거리는 모습이 말 안 듣는 남동생같은 모습이랄까? 청아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의 처음 만나는 소였어.
"아버지, 이 소는 큰집 소랑 많이 다르네예?"
"큰집 소는 새끼를 많이 낳은 어미소고, 우리 소는 오늘 코뚜레를 뚫은 새끼소니까 다르제."
"이름은 뭐라고 할까예?"
"이름은 니가 지라. 앞으로 니가 소먹이야 된다 아니가."
"음...음... 우리 돼지 이름이 '꿀꿀이'니까 우리 소는 '소리'라고 할께예. 다 '이'로 끝나고, 우리 성(姓)도 '이'가니까예!"
"그라먼 좋겠네. 앞으로 '소리'라 케라."
그날 청아는 소리와의 만남과 앞으로 소몰이를 다닐 것을 생각하니 너무 좋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지. 그동안 누려 보지 못했던 설레는 밤이었어. 동네에는 집집마다 소 한 마리 이상은 있었어. 동네 아이들은 여름방학이면 소를 몰고 이 산으로, 저 산으로 꼴을 먹이러 다녔어. 그러면서 개울에서는 멱을 감고, 산에서는 칼싸움, 술레잡기도 하고, 약초를 캐기도 하면서 여름방학을 보냈지. 청아에게는 말로만 듣던, 함께 하고 싶었던, 넘볼수 없는 세계였어. 그 세계를 앞으로 청아도 누리게 될 것이었어.
다음날 청아는 큰집으로 달려갔어. 큰집은 소 한마리가 새끼를 낳아 그 새끼가 어미소가 되었고, 또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아서 벌써 네 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었어. 큰집 오빠가 큰 어미 소의 뿔을 뽀족하게 갈고 있었지.
"오빠야, 뭐하노?"
"소싸움 잘 하라고 소뿔 갈고 있다 아니가."
"소싸움은 왜 하는데?"
"소싸움해서 이기면 대장 되지. 대장되면 꼴 먹이러 갈 때 1등으로 갈 수 있는기라."
"1등으로 가면 뭐가 좋은데?"
"1등으로 가면 기분 좋지. 너도 반에서 공부 1등하니까 좋다 아니가. 우리 소가 1등 하면 우리 소들 다 맨 앞에 갈 수 있고, 동네 소들은 다 따라 오는 기라. 기분 엄청 좋지!"
"참, 우리 집에도 소 생겼는데!"
"진짜가?"
"아버지가 어제 사 왔다. 이름은 '소리'다. 코뚜레 막 뚫은 거를 사 오셔 가지고 아직 새끼소다. 동네 소들 다 같이 꼴먹이러 갈때 나도 가도 되제?"
"방학이나 돼야 같이 가제. 방학이 될라믄 아직 많이 남았다 아이가. 머슴아들만 가지, 가시나는 안 가는데?"
"가시나라고 와 못 가노? 나는 따라갈기다."
"그래. 어쨌던 이번에는 우리 소가 대장 할기니까 우리 소 뒤에 따라 오면 된대이."
청아는 누구의 소가 대장이 되는지에는 관심이 없었어. 큰집 소가 대장 소가 되기를 응원해 주기로는 마음먹었지. 그동안 소를 줄지어서 산으로, 들로 다니는 것이 너무 부러웠는데 드디어 함께 갈 수 있게 된 것이 설레었어. 어서 방학이 되었으면 하고 학수고대했어.
청아는 친구가 없었어. 동네 친구도, 학교 친구도 없었어. 또래들과 대화를 하는 적이 없었지. 등교해서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하교하는 날이 많았어. 말이라면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정도였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 부터 줄곧 부반장이었지만 그것은 투표로 뽑힌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의 유무와는 상관이 없었지. 그 당시 청아의 학교는 남학생은 반장, 여학생은 부반장을 했어. 시험 성적으로 1등을 하면 담임선생님이 지명을 했었던 거야.
청아는 집에서도 말이 없었어.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니었어. 누구도 청아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지. 아버지는 병약했지만 예의범절을 중시해서 말 붙이기도 어려운 존재였어. 아버지와 밥상을 함께 먹은 적도 없었지. 아버지의 밥상은 늘 따로 차려졌어. 밥상머리에서 대화하는 것을 금지했고, 수저를 먼저 놓고 일어서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지. 말대꾸를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어. 엄마는 아버지의 병수발과 농삿일까지 하느라 바빴고, 어린 자녀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어.
언니는 청아의 유일한 대화상대였지만 터울이 많은 중학생이라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지. 그리고, 주로 언니가 청아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또 언니의 주변에는 친구가 많아서 청아가 낄 틈이 없었어. 동생들은 동네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집에는 어린 동네아이들로 북적였지.
청아는 책꽂이에 있는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어. 몇 권 밖에 되지 않는 책이 친구였지. 심심하고 외로웠던 청아는 친구를 찾고, 찾고, 찾았지. 그러나 청아의 외로움을 달래주기엔 부족했어. 밤9시에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라고 방송이 흘러나오면 어김없이 청아와 두 동생들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자야만 했어. 청소년이 된 언니는 혼자만의 방을 가졌지만 청아는 북적이는 안방에서 더 외로움을 느꼈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9시 뉴스를 보시면 그 옆에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어. 열 살 밖에 되지 않는 청아가 밤이면 배개닛이 젖도록 울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어.
눈물과 외로움에 지쳐 있던 청아가 소리를 만났던 거였어. 청아에게 친구가 생긴 거였어. 눈물로 배개닛을 적시던 청아는 매일 소리의 꼴을 먹이는 일을 궁리하느라 설레는 밤을 보내게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