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집에서 암투병 중이셨어. 늘 힘이 없었지만 가끔은 논일, 밭일도 할 정도로 회복되곤 하셨지. 그리고 일을 하러 갈때면 청아를 데리고 다니셨어. 언니는 증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동생들은 어렸기 때문에 늘 청아가 아버지와 함께 했지. 청아는 아버지가 지게를 질 때면 부축해 드리고, 리어카를 끌면 뒤에서 밀어 주곤 했어. 우시장에 다녀올 정도의 힘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소를 사러 먼 길을 다녀오셨던 거야.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시절을 보내고 있었어. 청아는 소리를 몰고 아버지와 함께 아직 기경하지 않은 밭이나 길가의 무성한 풀들을 소에게 뜯기곤 했지. 너무 엄해서 늘 무섭고 가까이 하기 힘든 아버지였는데 청아는 소리를 몰고 아버지와 며칠을 함께 했어. 기력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아 보이는 아버지였는데 청아에게 소를 모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지.
"소를 앞으로 몰 때는 고삐로 소의 배를 치면서 '이랴이랴'하면 된대이. 오른쪽으로 몰고 싶을 때는 고삐를 오른쪽으로 당기면서 '우랴우랴' 하고, 왼쪽으로 몰아야 할 때는 고삐를 왼쪽으로 당기면서 '좌라좌라' 하면 되는 기라. 그라고 소를 멈출 때는 고삐를 뒤로 당기면서 '워,워' 하면 된대이. 알것나?"
"예, 알았어예. 아버지."
청아는 소리를 몰고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대로 몰아 보았어.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를 몰고, 풀이 조금이라도 많이 돋아나 있는 곳이 있으면 찾아다니고, 어둑할 때 집으로 돌아와 또 소리의 식사를 도맡았어. 여물통에 물도 채워주고, 구유에 사료도 부어 주었어.
"야야, 돼지 꾸중물도 퍼 줘야제. 맨날 소 여물만 그리 챙기노!"
"알았어예."
엄마는 소리만 챙기는 청아에게 역정을 내시곤 했어. 그러면 청아는 남은 음식을 모아둔 꾸중물통을 휘휘 저어서 꿀꿀이의 여물통에 부어 주었어. 꿀꿀이는 몇 년째 돼지막에서 살고 있었지. 새끼를 낳고, 새끼가 젖을 떼면 팔고, 또 새끼를 낳고, 몇 번이나 반복한 것 같아. 엄마는 소보다 돼지를 키우는 것이 수월하다고 늘 말씀하셨지.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거동이 없이 누워만 계시고, 논이며 밭에서 일하시느라 바쁘신 어머니도 집에 계신 날이 많아졌지.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마당을 쓸고, 대청마루에 앉아 시조창을 읊으시는 아버지는 이제 볼 수 없었어. 청아는 학교에 다녀오면 아버지 없이 혼자 소리를 몰고 좋은 풀을 찾아 다녔어. 청아가 우리밭, 우리논, 우리산, 우리과수원이라고 칭하는 곳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어디든 맘 편히 다녀 올 수 있었지.
여름장마가 시작되었어. 비속으로 소리를 몰고 갈 수 없으니 청아는 생각했지. 어떻게 하면 소리에게 파릇한 꼴을 먹여 줄 수 있을까? 비료포대 양쪽 귓퉁이에 소매를 내어 우비로 입고, 또 다른 비료 포대 하나를 챙겨들고, 모자를 쓰고, 낫을 챙겨서 논으로 갔어. 논가나 논둑에 자라고 있는 잡초를 낫으로 베는 거야. 장갑을 끼긴 했지만 번쩍이는 낫이 겁나긴 했어. 그래도 소리에게 먹일 꼴을 베어야 했기 때문에 조심조심, 열심히 풀을 베어 한 포대 꾹꾹 담아냈어. 비 속에 물꼬를 보러 오신 이웃 어른들이 놀라서 한 마디씩 했지.
"아이고, 저리 어린 것이 우째 저리 풀을 잘 베노. 소꼴 베느라 애쓴대이."
"쯧쯧. 아버지가 아프니께 애가 고생이 많네."
"저리 어린 기 풀 베는 것이 기특하네. 우리 골짜기에 저런 아는 아무도 없을 기다."
청아는 전혀 고생스럽지가 않았어. 오히려 즐거웠어. 풀 한 포대 머리에 이고, 노래를 흥얼흥얼 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와서 소리의 외양간 구유에 파릇한 꼴을 한가득 채워주는 행복을 어른들은 모르는 것일까? 청아는 장마가 끝날 때까지 매일매일 꼴을 베어 소리에게 먹여 주었어.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어. 방과 후에 어김없이 소리를 몰고 우리산으로 갔어. 산으로 오르는 길에 목화밭이 있었어. 목화가 청아의 키만큼 자라 있었지. 여기저기 하얀 꽃이 피어 있었고, 드문드문 목화다래가 열려 있었어. 소리를 산 중턱에 묶어 놓고, 목화밭을 누비면서 목화다래가 보이는 대로 주머니에 따서 넣었지. 소리는 되새김질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청아는 소리의 옆에 앉았어. 햇볕은 따가웠지만 달콤한 목화다래를 까먹으면서 소리와 함께하는 시간이란, 청아는 행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목화다래를 따서 먹으면 목화를 수확할 수 없기 때문에 어른들은 목화다래를 먹는 아이들을 혼냈지.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그 시기에 달콤한 목화다래만큼 좋은 간식거리는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목화다래만 발견하면 따서 먹었지. 청아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목화다래를 주머니 깊숙히 넣고, 소리와 함께 집으로 달려갔어. 점잖음이란 없는 소리는 늘 청아를 끌다시피 뛰어서 갔지. 집에 도착한 청아는 엄마의 애곡하는 소리에 놀라 방으로 뛰어 들어 갔어. 예전같은 따뜻하고 미세한 숨소리는 들리지 않고, 핏기가 없는 얼굴로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아버지를 발견했어. 순간적으로 무릎을 꿇고 차가워진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어.
'흐흐흑, 엉엉. 아버지, 아버지..."
한참을 울었어. 동생 둘도 함께 엉엉 울고 있었어. 읍내의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도 집으로 돌아왔고, 온 가족이 다 모였지만 여느 날과는 다른 새로운 날이었지. 큰방이나 사랑채는 동네 사람들과 조문객으로 북적였고, 안채의 작은 방이 청아와 언니와 동생들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어 . 언니가 3일 동안 학교에 안가도 된다고 말해 주었어. '아이고, 아이고.' 빈소가 차려진 사랑채에서 엄마의 곡소리가 자주자주 들려왔어. 주머니에 깊숙이 숨겨 왔던 목화다래를 동생들에게 쥐어주고 함께 먹으면서 소리만 생각했어.
‘내일은 학교에 안 가니까 아침 일찍 소리를 데리고, 꼴 먹이러 가야겠다.’
아버지가 별이 된 다음날이 되었어. 집안은 더욱 북적였지. 먼곳의 친척들이며 다른 동네 어른들까지 모여 들다 보니 안채, 사랑채, 안마당, 바깥마당에까지 멍석을 깔았어. 엄마는 '아이고, 아이고.' 계속 곡을 하면서 조문객을 받았어. 언니는 엄마와 함께 했지만 청아는 소리를 데리고 북적이는 집을 빠져 나와서 산으로 향했지. 소리를 산에 풀어 놓았어. 소리는 이곳저곳 맛난 풀을 따라 옮겨 다니고, 청아는 작은 옹달샘 하나를 발견해서 땅가재를 잡으며 놀았지. 돌맹이를 하나씩 들추다 보면 땅가재가 이리저리 몸부림치듯 달아났어. 그까짓 땅가재 잡기는 일도 아니었어. 땅가재를 잡아서 다시 샘에 넣고, 도망치면 또 잡고, 반복하면서 놀았어.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나서 눈물을 훔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다 보았지. 산허리를 붉게 물들인 보리똥으로 간식을 했어. 쐐기에 쐐여가면서 새콤달콤하면서도 떨떠름한 보리똥을 맘껏 따서 먹었어. 청아는 점심 무렵에 산에서 내려왔어.
뛰어가는 소리의 고삐를 잡고 신나게 달려서 집에 도착하니까 익숙한 얼굴들과 선생님이 바깥 마당에 서 계셨어.
"부반장."
친구들이 함께 청아를 불렀어. 문상을 온 거였어. 청아와 친구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지. 선생님은 슬픈 일을 당한 제자를 위로하면서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셨어. 선생님의 위로에 갑자기 슬픔이 밀려오고,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청아는 눈물을 훔치며 돌아가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배웅했지.
아버지의 장례식 마지막 날이 되었어. 동네 아저씨들의 힘찬 걸음에 상여는 청아네 산 동편 끝자락까지 거뜬히 올라갈 수 있었어. 엄마와 언니와 청아도 함께 올라갔지. 온 동네가 다 보이는 곳이었어. 맞은편 동네도, 그 윗 동네도 한 눈에 볼 수 있었지. 햇볕도 잘 들고, 전망도 좋다고 다들 칭찬일색이었어. 땅을 파고, 목관을 묻고, 봉을 만들고, 떼를 입히고, 상여를 불태우고, 집에서 싸온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었어. 이제 이곳이 바로 아버지의 산소,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야. 물론 소리를 데리고 와도 좋을 만한 곳이었지.
"떼 입힌 지 얼마 안 됐응께, 소 같은 거 데려오면 안 된대이."
청아의 마음을 읽었는지 동네 아저씨 한 분이 말했지.
장례식이 끝나고 학교에 갔어. 그런데 친구들의 수군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어. 부반장이 미친 것 같다는 거였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소꼴 먹이러 산에 갔다 오는 거 있제. 그것도 노래 부르면서 소하고 뛰어서 내려 왔다니까."
하루아침에 청아는 미친 아이가 되어 있었어. 어떤 친구는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 것 같다고도 했지. 학교에서 돌아온 청아는 속상한 마음에 아버지의 산소에 올라갔어. 물론 소리를 데리고 갔지. 열 살 난 아이가 가기에는 먼 곳이었지만 산을 오르는 것은 청아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소리도 거뜬히 올라갔어. 소리를 나무에 매어 놓고 아버지 산소에서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았어.
"아버지, 반 친구들이 내가 미쳤다케예.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소리를 데리고 산에 갔다 왔다고예. 소리가 내달려서 소고삐 잡고 함께 뛰어 왔는데...내가 미쳤어예? 아버지가 소리의 꼴은 내가 먹여야 한다고 했잖아예? 아버지. 아버지. "
청아는 큰소리로 '아버지'하고 다시 불러 보았지. 살아계실 때는 친근하게 불러 보지 못한 이름, 아버지. 그 이름을 자꾸자꾸 불러 보았어. 아버지는 메아리가 되어 우리 동네 뿐만 아니라 앞동네, 그 윗 동네까지 돌아돌아서 다시 청아에게로 돌아왔어. 메아리가 돌아오는 것을 바라보며 기분이 상쾌해진 청아는 앞으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찾아 오리라고 생각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