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밥 May 14. 2021

제국주의의 상징 오벨리스크… 에티오피아에도?


유럽인들, 문명의 시작을 이집트 문명으로 간주

이집트 문명 상징 '오벨리스크’는 최대 전리품

나폴레옹 부인 “오벨리스크를 선물로 가져오세요"

에티오피아 악숨에도 오늘날 오벨리스크 세워져있어

연원은 홍해 장악했던 융성했던 '악숨 왕국'의 잔재


이스탄불에서 만난 오벨리스크.

이스탄불에서 만난 오벨리스크는 사실 터키가 누렸던 대제국의 영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1000년간이나 이어진 비잔틴 제국 시절 이집트산 오벨리스크가 그곳으로 옮겨져왔고,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린 오스만 제국은 오벨리스크를 그 자리에 그대로 뒀다. 동양과 서양의 해상 경계선이었던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스탄불을 차지한 오스만 투르크는 성 소피아 성당을 박물관으로 바꿨다가, 이제는 이슬람의 사원(모스크)로 사용하고 있다.


▶약탈이 일상이었던 제국의 시대= 이집트 문명을 동경했던 유럽 국가들은 문화재를 대거 약탈하여 자국으로 가져갔다. 대표적인 약탈 문화재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오벨리스크(obelisk)들이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신전 문 앞에 좌우로 세워져 태양신 라를 추앙키 위한 조형물이었는데, 유럽 권력자들의 시선은 이를 자국으로 가져갈 경우 자신의 권능을 모두에게 뽐낼 수 있는 장치로 여겼다. 오벨리스크 약탈에 거의 광적으로 집착했었던 시기다. 변변치 않은 문화적 토대 때문에 그리스에 사실상 문화주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팍스로마나 시기가 그랬고, 16~18세기 유럽 제국이 아프리카를 집어먹던 ‘아프리카 침탈(Scramble for Africa)’ 시기가 또한 그랬다.


유럽인들에게 오벨리스크는 권력의 상징이자 유구한 이집트 문명의 상징이었다. 유럽 학자들은 서구문명의 시원을 이집트 문명에서 찾는다. 그만큼 유럽인들에게 이집트 문명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아스완 지역의 붉은 화강암을 재료로 만들었다. 이집트 왕들은 오벨리스크를 통해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고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했다. 오벨리스크의 길이는 30미터 가량이었고 무게는 200~400톤이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석조물이었다. 오벨리스크는 피라미드와 같이 왕의 권위를 상징했고, 신전의 주요한 성물이었다. 3500년 전 이집트인들은 당시 최고의 토목공학으로 아스완에서 이를 제작하여 나일강의 배를 통해 카이로로 운송하였다.


오벨리스크를 탐낸 최초의 황제는 아우구스투스다. 기원전 30년 로마 제국의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14)는 이집트를 정복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1000년 이상 서있던 4개의 오벨리스크를 뽑아서 2개는 로마로 가져가고, 나머지 2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옮겼다. 390년 동로마와 서로마 를 동시에 통치하던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 황제는 기원전 1490년 이집트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에 세워진 1개의 오벨리스크를 약탈해 동로 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은 이스탄불)에 세웠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은 원정을 떠나는 나폴레옹에게 “이집트 기념 선물로 오벨리스크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는 설도 내려오고 있다. 1789년 이집트를 침공한 프랑 스는 1801년 영국에 의해 격퇴당했다. 영국은 그 대가로 오스만 터키 지배하에 있던 이집트 총 독에게 오벨리스크 1개를 요구하였다. 이집트 총 독은 영국의 지원을 기대하면서 동의했다.


영국은 1878년 오벨리스크를 운반해 런던에 세웠다. 1836년 프랑스도 이집트로부터 오벨리스크 2기를 기증받아 1개를 오늘날 파리의 중심 콩코르드 광장에 세웠고, 나머지 1개는 이집트에 남아있다가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이집트에 반환했다.


이집트는 유럽 열강들로부터 가장 많은 문화재를 약탈 당한 국가다. 1801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한 영국군은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전리품으로 로제타석을 빼앗았다. 로제타석은 원래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원정군이 이집트에서 성벽을 증축하다 발견된 검은 돌로, 로제타석에 기록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는 1822년 해석돼 고대 이집트 문화를 이해하는 주요한 단서다. 문제는 중요 문화재인 로제타석이 오늘날엔 대영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는 점이다. 기원전 50년경에 제작된 이집트 덴드라 신전의 천정 12궁도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노예 무역 당시 아프리카 최대 왕국으로 성장했던 베넹 왕국(오날늘 나이지리아)의 각종 문화재들도 프랑스와 영국에 보관돼 있다. 특히 ‘베넹 브론즈’는 정교한 기법과 자연주의적 표현으로 피카소, 마티스 등 서구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베넹 브론즈 문화재들은 영국과 유럽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에티오피아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이집트 산 오벨리스크와는 외관이 다소 다르다. 악숨 왕국 때 만들어졌다.


▶에티오피아에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가 있는 도시는 크게 두 부류다. 과거 로마 시절 때 크게 융성했던 도시거나 18~19세기 이후 전 세계에 제국주의가 번지던 시절의 중심 도시들이란 점이다. 오늘날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 도시들을 보면 바티칸, 로마, 파리, 런던, 뉴욕, 이스탄불, 이스라엘, 네덜란드, 카이로 등이다. 과거 융성했거나 오늘날 세계의 중심 도시들로 손색이 없는 도시들이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북방 도시 악숨에도 오늘날 오벨리스크가 서있다.


과거 한차례 약탈됐었으나 21세기 들어서 반환됐다. 에티오피아의 오벨리스크를 가져간 사람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다. 무솔리니는 1937년 에티오피아를 점령하자 에티오피아 도시 약숨(Axum)에 세워져 있던 오벨리스크를 자국으로 가져갔다. 악숨은 고대 솔론몬 왕과 시바 여왕의 후손이 세웠다는 에티오피아 고대 왕국(1~11세기)의 수도다. 높이 24미터, 무게 500톤인 오벨리스크는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문화의 기념이며, 정체성을 상징하는 보물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거국적으로 오벨리스크 반환운동이 일어 나자 이탈리아는 약탈한지 50년만인 지난 2005년 이를 반환했다.


에티오피아의 오벨리스크는 다소 의외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진짜’ 오벨리스크는 모두 이집트에서 제작됐고,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에 비해 에티오피아는 상대적으로 현재에는 변방국인데다 이렇다할 권능을 보였던 황제가 재위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에티오피아의 악숨 도시 그 자체다. 오늘날 악숨 도시는 고대 에티오피아의 최강국 악숨 왕국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악숨 왕국은 과거 로마제국·페르시아·중국과 함께 세계 최강 4대 국가에 포함됐을만큼 융성하고 강했던 국가다.


악숨 왕국의 융성 배경은 홍해였다. 기원전 300년께 악숨 왕국은 페르시아에서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홍해를 장악한 왕국으로, 로마와도 동맹을 맺을만큼 국력이 대등한 나라였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악숨 왕국 역시 기독교를 받아들인 국가가 됐다. 악숨 왕국은 이후 7세기경 쇠퇴했으나 여전히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악숨왕국을 자신들의 고대 국가라 여기고 있고 자부심 역시 상당하다.


에티오피아에서 오벨리스크 제작이 중단된 시점은 에티오피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한 이후다. 태양신 ‘라’를 숭배했던 고대 국가에서 이제는 기독교 국가로 바뀌게 되면서 오벨리스크의 신규 제작도 중단된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 편이 아닌 십자군 편에 서서 싸웠던 국가다.


워싱턴 기념비가 서있는 워싱턴 DC.


▷오벨리스크는 프리메이슨 상징?= 오벨리스크를 두고선 여러가지 음모론들도 나돈다. 오벨리스크가 전 세계 주요도시들 중 없는 곳이 없을만큼 빼곡히 들어찬 이유가 비밀 결사조직 '프리메이슨'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주장도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일루미나트와 프리메이슨의 관계가 알려진 것보다 더 돈독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벨리스크가 남근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란 주장은 내가 보기엔 정설에 가깝다. 워싱턴 기념비와 주변 조형물이 남녀 성기의 결합이라는 주장 역시 꽤나 그럴싸 해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역대급 전리품 오벨리스크… 이스탄불에선 ‘찬밥’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