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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예쁜 여자 May 20. 2024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이현세의 길’ 특별전




아침에 집을 나서 서리풀 산책로를 지나 국립중앙도서관을 향해 걷노라면, 내게 펼쳐질 하루를 기대해 보며 가슴이 설렌다. 몽마르뜨​ 공원에 장미가 가득해 잠시 머물렀다. 장미에 둘러싸인 <부지발의 무도회> 조각상의 여인이 되어 춤을 추는 순간, 즐거워진다.





국립중앙도서관 문을 들어서자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현세의 길: K-웹툰 전설의 시작’이라는  예기치 않은 기쁨이 맞아준다. ‘한국 만화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 아이콘‘ 으로 불리며, 웹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현세 작가이다. 7월 31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이번 특별전은 국립중앙도서관이 구축한 ‘이현세 디지털컬렉션’을 기념하는 한편, 만화가 이현세의 도전적인 삶과 작품이 만들어낸 ‘길’ 위에서  ‘K-웹툰의 미래’를 조망해 보기 위해 마련되었다는 설명이 맨 먼저 보인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이미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진 만화방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이끌려 들어가는 듯하다. 전시실 외부에도 추억의  만화방이 있다. 옛날 만화책부터 웹툰까지 한국만화가 진열되어 있다.





전시회를 둘러보다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나를 순정만화의 예쁜 여주인공으로 3분여 만에 단숨에 만들어 준 것이다. 이현세 작가가 만들어 준 걸까?





이현세 작가는 1954년 경북 홍해에서 태어났다. 큰집으로 양자 간 이현세는 출생 비밀을 스무 살에야 알게 되어 커다란 충격으로 와닿게 된다. 할머니, 생모, 백모, 그리고 두 누나 사이에서 유일한 남자로 성장한 배경은 여성에 대한 남다른 관점으로 이어져 여성 주인공인 작품들이 많다. 가난했던 성장기의 배경과 가족관계는 그의 작품을 더욱 다양하게 했다.



전시실 외부에 마련된 추억의 만화방



국민학교 때부터 미술을 잘하던 그는 6학년 무렵에는 혼자 힘으로 스토리가 있고 짜임새를 갖춘 완결된 만화를 창작하기 시작한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소재였다. 그러나, 고교 진학 후 색약으로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만화에 뜻을 두고 상경한 뒤에 1974년 순정만화가 나하나를 시작으로 문하생으로 수련을 받았다.



이현세의 작업실은 비좁은 다락방이었다. 월급은 물론 없었고, 하루 두 끼의 식사, 그것도 한 끼는 수제비 같은 것으로 때웠다. 한밤중에 대소변을 다락방에서 해결해야만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 다락방 계단이 선생님이 기거했던 안방으로 통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현세 작가의 서재와 화판



1983년, 스물아홉 살 때, 프로야구 소재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발표해 ‘까치’(오혜성)와 여주인공 ’ 엄지’, 적대자 ‘마동탁’, 조력자 ’ 백두산‘이라는 불멸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군사정권의 억압과 회유가 반복되던 한국 정치의 무의식적 공포 분위기 속에서 시대의 영웅 ‘오혜성’의 등장으로 신예 만화가 이현세는 단숨에 대중적 스타 작가가 되었다.



출판사들이 과거 원고를 전부 모아 출판하겠다고 나섰다. 제법 큰돈도 제시했다. 낯 뜨거운 수준의 작품들인데도 욕심이 생기자, 초기 원고들을 싹 태워 버렸다. 그렇게 초기작이 다 없어졌다.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 까치와 엄지



전시실의 반원형의 미디어 아트 공간에서는 까치와 엄지를 소환한다. 영상이 화려하다.



미디어 어트 공간



나를 순정만화의 예쁜 여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예술가는 바로 AI 로봇이다. 작가의 화풍을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켜 만화를 창작하도록 하는 ‘이현세 AI 프로젝트’와 관련한 AI 라이브 드로잉이라는 재미있는 체험공간에서였다.





이현세와 유사한 얼굴을 한 GPT 탑재 인공지능(AI) 예술가 로봇이 나의 얼굴을 찍고 분석한 뒤, 손에 쥔 펜으로 이현세 스타일로 캐리커처를 그려 나간다. 마주한 로봇의 눈매가 아주 날카롭더니 모자까지 세심하게 그려 주었다. 예쁜 만화 여주인공으로 변신한 내가 싫지 않았다. 로봇이 나를 그렇게 봐준 것인가 잠시 착각도 했지만 설레는 순간이었다.





로봇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인공지능과의 대화도 가능하다. 로봇은 말한다. “사람들이 저한테 로봇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냐고 물어봐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



이현세와 유사한 얼굴을 한 GPT 탑재 인공지능(AI) 예술가 로봇



바로 옆 컴퓨터에서는 작가와 재담미디어가 협력하여 AI 라이브드로잉 콘텐츠도 제작한다. 단순하게 그린 내 스케치가 이현세 작가의 그럴듯한 까치 캐릭터로 신기하게 변신했다.



AI 라이브드로잉 콘텐츠



이현세 작가는 2014년 첫 웹툰 ‘코리안 조’를 시작으로 11년째 웹툰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중과 시장의 요구에 맞추기보다는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내세우며 매 시기마다 새로운 작품 형식과 창작 방법론을 제기했다. 세종대 교수인 이현세 작가는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자비를 투자해 만화잡지사와 출판사를 만들어 신인만화가를 발굴하고 직접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서기도 하며 한국만화의 대중화와 산업화에 기여했다.



출판만화의 전성기인 1990년대부터 K-웹툰이 흥행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만화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지옥의 링’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아마게돈’ 등 작품 원화 120여 점이 전시되었다.



전시 관람 후, 콘텐츠 도장 깨기 이벤트에 참여했다. 국립중앙도서관 각 장소에서 스탬프를 찍어 오면 추억의 먹거리 또는 이디아 커피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열심히 돌아다녔다.



우선, 본관 1층 열린 마당이다. 한국적인 선, 색채와 문양을 현대적인 디지털 미디어 기술과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은 익숙한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체험공간이 있었다. 작가 이상에게 대화를 건네며 다지털북과 함께 작품세계를 생생하게 만나는 공간이다.



본관 1층 열린 마당


작가 이상에게 대화를 건네며 다지털북과 함께 작품세계를 생생하게 만나는 공간



디지털 도서관의 실감서재 또한 꼭 다시 찾아 머무르고 싶은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었다. 소장자료와 첨단기술을 적용해 시각적이고 역동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실감형 체험공간이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실감체험관을 알게 되어 기쁨이 배가 되었다.



디지털 도서관의 실감서재



이벤트를 마치고 이디야커피 쿠폰을 받아 마시는 커피 향이 여느 때보다 진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스치는 나무들 사이로 아카시아향이 퍼진다. 순정만화의 여주인공인양 예쁜 미소를 건넸다.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감사한 하루다.



인터넷 뉴스 기사를 쓰고, 유튜브 영상으로 전시회의 모습도 엮어 보았다. 특히 AI 로봇이 캐리커쳐를 그리는 장면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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