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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과 아이

동화

by 인산


옛날 옛적, 꽃향기 가득한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먹을 것이 풍요로워 사람들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피어났지요. 봄이 오면 온 마을은 하얗고 노랗고 붉은 꽃들로 물들었고, 꽃향기는 바람을 타고 마을 구석구석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사람들도 순하고 싸우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을에도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마을 뒷산에는 아득히 오래전부터 한 거인이 갇혀 있었지요. 엄청나게 큰 거인은 칡넝쿨과 거목들 사이에 몸을 묶인 채, 옴짝달싹 못 했습니다. 거인은 배가 고프면 엄청나게 커다란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순서를 정하여 먹을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거인은 몸집이 컸기 때문에 먹는 양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거인이 배가 고프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인에게서 참을 수 없는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언제 태어났는지, 무슨 일로 그곳에 묶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씻은 적이 없었으므로 거인에게서 나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인의 지독한 냄새는 더욱 심해졌고, 숨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냄새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마을 노인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큰일이오! 먹을 것만 갖다 주면 거인의 울음소리는 잠재울 수 있어도, 저 지독한 냄새는 어찌할 도리가 없소?”

“맞아요! 이제는 코를 막고 다녀야 할 지경이오. 저 냄새 때문에 밥맛도 다 떨어졌어요!”

“이러다간 우리 마을 전체가 악취로 뒤덮이고 말 것이오.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소? 묘책이 없겠소?”

“저 거인을... 없애버리면 어떨까요?”

“무슨 소리요! 저 거인을 어찌 없앤단 말이오?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오.”

“없애긴 어렵더라도, 쫓아낼 순 있지 않겠어요?”

“쫓아내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오?”

“묶여 있는 칡넝쿨과 나무만 모두 잘라내면 되지 않겠어요? 우리 모두 힘을 합하면 하루면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데.”

“거인을 풀어주면, 우릴 어떻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오.”

“오랫동안 묶여서 움직이지 못한 녀석이니까, 금방 지칠 거요.”

“과연 그럴까요? 저 거대한 덩치가 움직인다면, 우리 모두 위험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이제부터 너는 자유다. 어디든 가거라! 이렇게 말하면, 가고 싶은 곳이 있을지도 모르잖소.”

“가고 싶은 곳? 평생 한자리에만 있었는데, 그런 곳이 있을까?”

“자 이게 결정합시다. 거인을 풀어줄 것이냐, 지금처럼 묶어둘 것이냐.”


그들은 거인을 풀어주기로 했습니다. 마을에서 거인이 사라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인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낫과 도끼를 들고 힘을 합하여 거인을 묶고 있는 칡넝쿨과 나무들을 잘라냈습니다. 거인은 물끄러미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이따금 졸거나 하였습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거인을 묶고 있던 넝쿨과 나무들이 다 잘렸습니다. 한 노인이 거인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이봐. 넌 자유다.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거인은 팔과 다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배고파!”

“넌 자유니까 네가 알아서 해. 뭘 먹든, 어딜 가든. 어서 가.”


그러나 거인은 움직이는 대신 천천히 말했습니다.


“배고파 밥 줘.”


거인은 갑자기 큰 손으로 노인을 집어 들더니 한입에 꿀꺽 삼켜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마을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거인이 팔을 휘젓자, 사람들이 낙엽처럼 날아갔습니다. 거인은 쓰러진 한 사람을 붙잡아 또 입어 넣었습니다.


“아이고! 저 놈이 잡아먹는다. 어서 도망쳐.”


마을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혼란 가운데 한 아이가 넘어졌습니다. 거인은 아이의 다리를 붙잡아 입어 넣으려고 높이 쳐들었습니다.


“악... 엄마! 살려줘.”


놀란 아이가 마구마구 울어댔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있는 힘을 다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안 돼. 먹으면 안 돼. 먹지 마. 우리 애 내놔. 왜 사람들을 잡아먹는 거야? 널 위해 얼마나 애썼는데.”


아이를 입어 넣으려던 거인은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는 거인의 발등에 올라서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아이는 필사적으로 엄마를 불렀습니다.


“우리 애 내놔. 차라리 날 잡아먹어.”


거인이 말했습니다.


“난 배고파. 그래서 먹는 거야.”

“그래도 사람을 먹으면 안 되지. 너도 사람이잖아?”

“나도 사람이라고?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생겼어? 다르게 생겼잖아.”

“마을 사람들이 널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너를 먹여준 사람들을 잡아먹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야? 우리 애 내놔. 내놓으라고.”


엄마가 거인의 다리를 꽉 붙잡고 큰 소리로 외쳐대자, 거인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아이를 내려놓았습니다. 너무 놀란 아이는 크게 울면서 엄마 품에 안겼습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거인은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습니다.


“꺼이꺼이, 나도 엄마가 있었어. 엄마! 엄마! 보고 싶어!”


눈물이 얼마나 큰지 잠잠하던 마을 앞 개울이 갑자기 폭포수가 되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은 저만치 떨어져 거인을 바라보았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만 울어. 홍수 나잖아.”


그러나 한번 울기 시작한 거인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꺼이꺼이. 엄마. 난 형제도 있었어. 그런데 난 버림받았어. 못생겼다고. 꺼이꺼이... 누군가 날 안아 준다면 행복할 거야. 하지만 난 너무 커. 여기서 날 안아 줄 사람은 없어. 난 왜 이렇게 큰 거야. 꺼이꺼이.”


마을 사람들은 거인의 우는 소리에 귀청이 터질 것 같아 두 손으로 귀를 꽉 막았습니다. 점점 물이 불어나면서 개울이 범람했고 길이며 논밭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거인의 울음을 멈추게 하라.”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모두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아까 그 아이가 나뭇가지를 들고 거인의 발바닥을 간질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뚝!


거인은 갑자기 울음을 그치더니 아이처럼 웃기 시작하였습니다.


“헤헤헤 헤헤헤....”


해맑은 웃음소리에 마을 사람들도 따라 웃었습니다. 한참을 웃고 나자 거인은 진정된 듯 말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젠 마을을 떠나겠습니다.”


거인은 쿵쿵거리며 발걸음을 옮겨 서서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에게서 풍기던 지독한 냄새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마을에는 다시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고, 그 후로 그 거인을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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