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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다람쥐

동화

by 인산

깊고도 푸른 숲 속에, 근육질의 거대한 곰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곰은 누구보다 힘이 셌지만,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거대한 곰은 기분이 언짢을 때면 앞에 보이는 바위를 집어던지고, 길을 막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곤 했습니다.


곰이 지나간 자리에는 바람이 멈추고 새들도 노래를 잃었습니다. 나뭇잎들은 숨어버렸고 동물들의 웃음소리는 사라졌습니다.


“곰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걱정에 찬 모두는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때, 커다란 바위가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의 커다랗고 단단한 몸이라면 막아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곰은 바위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깊은 협곡 아래로 던져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천 년을 살아온 지혜로운 나무가 나섰습니다.


“내 오랜 지혜로 곰의 마음을 돌려보마.”


하지만 곰은 주저 없이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렸습니다. 이제 그 누구도 감히 곰 앞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숲은 더욱 메말라갔고, 희망은 바람처럼 흩어졌습니다.




숲 속 조그마한 나무 구멍 속에 다람쥐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작고 여린 몸이었지만, 누구보다 숲을 사랑했고 친구들과 뛰어노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지만 요즘 다람쥐의 웃음은 자꾸만 사라졌습니다. 나뭇잎이 시들고 도토리가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람쥐는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어느 날, 도토리를 찾던 다람쥐는 땅을 울리는 무거운 발소리를 들었습니다. 곰이 또 숲을 헤집고 있었지요. 다람쥐는 숨죽인 채 나무 뒤에 숨어보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불꽃같은 외침이 올라왔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 누군가는 멈춰야 해.’


작은 다람쥐는 떨리는 몸으로 곰 앞에 섰습니다.


“비켜라! 너 같은 꼬마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곰이 으르렁거리며 외쳤습니다.

다람쥐의 다리는 떨리고 심장은 쿵쾅거렸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먼저 여기 있었어요. 아저씨야말로 비켜 주세요.”


곰은 당황했습니다. 누구도 자신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곰은 분노에 찬 앞발을 번쩍 들었습니다. 다람쥐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지만, 곧 숲 속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습니다.


‘내가 물러서면 아무도 숲을 지킬 수 없어.’


다람쥐는 두려움을 꾹 삼키고 더욱 단단한 눈빛으로 곰을 바라봤습니다.


“숲은 모두의 거예요. 아저씨만의 것이 아니에요.”


곰은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거대한 발걸음으로 다람쥐를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다람쥐는 빠르게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피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무줄기를 타고 훌쩍 올라갔습니다.

곰은 화가 치밀어 나무를 흔들며 따라 올랐습니다. 나무는 휘청였고 다람쥐는 위태롭게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다람쥐는 반동을 이용해 공중으로 몸을 솟구쳤습니다. 날아가듯 옆 나무로 옮겨간 것이었죠.


“이 요망한 녀석!”


곰은 더욱 거칠게 나무를 타기 시작했고,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는 “우지끈!”하고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곰은 굉음을 내며 땅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으윽...”


커다란 곰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고통에 신음하다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날 이후, 곰은 더 이상 숲을 망가뜨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겨울이 오면 조용히 움막을 찾아 들어가 긴 잠을 자곤 했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듯 말이죠.


숲은 다시 노래를 찾았습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은 웃었고 도토리는 다시 열매를 맺었습니다. 여전히 작고 빠른 다람쥐는 누구보다 큰 용기를 가진 친구로 숲 속 모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날부터 동물들은 그 다람쥐를 이렇게 불렀답니다.


“날다람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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