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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과 Jul 18. 2022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이즈 업

혼자 살기로 했다(16)


투명한 생수에 얼음이 쏟아져 들어간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그 얼음물 위로 막 짜낸 커피 원액 2샷이 떨어진다. 검은빛이 도는 커피 원액이 얼음 사이를 스며들어 물에 퍼져나간다. 황금빛 크레마는 얼음 위에 뜨고 투명했던 물은 서서히 갈색으로 변한다.


커피숍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바로 그 순간이다. 얼음물에 뜨거운 커피가 섞이는 순간.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만나 적당한 온도를 만드는 순간. 그런데 가끔 그 순서를 바꿔서 제조하는 직원을 만난다.


얼음물이 아닌, 그냥 생수에 대충 커피 원액을 붓고 얼음을 툭툭 넣어 내놓을 때면 나는 한숨이 나온다. 아름답지 않은 그 광경을 보면 다시 해달라고 컴플레인이라도 넣고 싶어 진다.

아이스 라떼를 시키면 우유가 아래 가라앉고 그 위에 커피를 올려, 위와 아래가 섞이지 않은 상태로 받고 싶다. 예쁜 받침 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은 유리잔과 잔 표면에 수증기 방울이 방울방울 맺힌 것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사소한 집착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카페인이니까.




학원 출근길에 꼭 들리는 곳은 학원 바로 아래에 있는 커피숍이다. 음악을 들으며 식물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커피 향이 확 쏟아진다. 솔직히 커피 향을 기다리기보다는 커피 향에 섞인 카페인의 향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수업 준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카페인이기 때문이다.

주말은 더 하다. 실험용 비커처럼 생긴 플라스틱 컵에 불투명한 커피를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가 앉아서 한 모금 마시면 두 가지 생각이 난다.


아, 카페인 충전!
진짜 맛없다.


나는 꽤 오래 너무너무 맛없는 커피 전문점을 다니고 있다. 예전에는 스타 벅스를 다녔었다. 스타 벅스의 텀블러도 몇 개 사고, 이벤트에 참여해 다이어리도 받아봤다. 하지만 두 번의 불쾌한 기억 후 스타벅스는 가지 않게 되었다. 예쁜 커피숍도 꽤 다녀봤다. 맛있는 커피로 유명한 집도 가봤다. 하지만 마지막에 정착한 곳은 커피가 너무나도 맛없는 이 카페다.


커피가 그토록 맛이 없는데… 왜?

작은 음악 소리, 제한 없는 와이파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전기, 그리고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지 않는 적당한 에어컨 바람.


그 편안함에 적응을 해서 주말이면 그 카페로 향한다. 텁텁하고 맛없는 커피를 꾸역꾸역 마시며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어느새 적당한 에어컨 바람이 화끈거리는 몸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마음까지 편안해진 나는 넓은 창으로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역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고, 커다란 나무가 7월의 햇살에 반짝이는 게 보인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거리와 차들과 건물들, 특히 손절한 스타벅스가 바로 앞에 보인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어제까지 쓰던 글을 다시 읽는다.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과했는지 찾으며 읽다가 다시 커피를 마시면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순간 ‘으, 너무 맛없어.’라고 현타가 밀려오지만, 다시 글쓰기를 이어가면 커피의 맛 따위는 잊힌다. 음악과 글쓰기와 에어컨에 조금 맛없는 커피지만 카페인이 더해진 주말은 자유로움 그 자체다. 행복할 수밖에 없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넓은 창문 너머로 비에 풍덩 빠진 세상이 아름답다. 빗소리는 너무도 듣기 좋아서 음악의 볼륨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몰래 사람을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하며 몰랐던 삶의 모습을 찾는다.




‘삶의 의미란 매일 아침 눈 뜨게 하는 그 무엇이다.’라고 했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뜬다. 무엇 때문에 눈을 뜨는가?

몇 번이나 생각했다. 그리고 얻은 답은 ‘습관, 책임, 의무’였다. 슬펐다. 커피의 맛은 잃고 카페인에 중독된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점심 빨간 문을 열고 그 커피숍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 마시고 갈 게요.”


“사이즈 업 해드릴까요?”


“네?”


“회원 등급이 오르셔서 사이즈 업 가능합니다. 해드릴까요?”


이 짧은 틈 사이로 결정 장애가 밀려온다. 맛없는 커피를 사이즈 업까지 해서 먹을 필요는 없는데, 오랜 고민이 민폐가 될까 봐 적당한 대답을 한다.


“.... 네. 해주세요.”


나는 다 먹지도 못할 카페인이 가득 든 사이즈 업 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간다. 계단을 오르면 내가 늘 앉는 자리가 오늘도 비어있고, 창문 너머의 풍경은 어제 그대로다.


일을 하고 글을 쓰게 하는 힘은 맛있는 커피가 아니라 카페인에게 얻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습관’, ‘책임’, ‘의무’여도 괜찮지 않을까?

슬퍼하지 말고, 습관과 의무와 책임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습관과 책임과 의무, 그 사이사이에 음악이나 글쓰기나 에어컨 같은 행복을 주는 사소한 것들을 만나면 되니까. 주의 사항은 있다. 카페인 중독이 위험하듯, 습관과 의무와 책임에 얽매이면 위험하다.


의자에 앉아 얼른 커피부터 한 모금 마셨다. 인간적으로 진짜 너무 맛없다.

삶이 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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