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원우는 불빛을 쫓아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불빛의 시작점은 뒤뜰에 있는 야외아궁이였다. 아궁이 위에 무쇠솥 하나가 걸려있었고, 오래 끓였는지 하얀 김이 계속 피어올랐다.
원우의 시선이 용광로 같은 아궁이로 향했다. 그리고 아궁이 불빛에 가까워질수록 의문의 무게가 커졌다.
‘무쇠솥 안에선 무엇이 삶아지고 있을까?’
‘장작불 속에선 무엇이 타고 있을까?’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원우는 다시 한번 백유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잘린 … 사람 머리 같아.”
유리는 황 씨가 들고 있던 물통 안에 사람의 머리가 들어있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다. 논리적으로 따져도 머리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사라진 안정태의 마지막 모습은 논리와 상관없었다. 7층에서 떨어져 죽은 황은수의 진실을 황 씨가 안다면, 논리 같은 건 다 개소리였다.
유리는 숙소 빌라로 들어가 창문을 모두 닫아걸고, 혹시 모른다며 소형 카메라가 있나 뒤졌다. 빌라 이곳저곳을 열어보며, 오는 게 아니었다고 정태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고 짜증을 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는 물통 속에 정태의 머리가 들었다며 원우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다.
“네가 황은수 아빠면 정태를 가만둘 수 있어?”
“내가 황은수 아빠였으면, 너부터 공갈 협박으로 신고했지.”
“야! 기껏 삼천이야. 삼억도 아니고, 삼천. 그냥 가방 하나 가격이라고.”
코웃음 치는 백유리에게 등 떠밀려 뒤뜰로 오기는 했지만, 원우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문이 반쯤 열린 창고를 보았다. 어쩌면, 물통을 저 안에 두고 새벽에 처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원우는 주방 문을 확인한 후, 작은 창고 건물로 향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창고 건물로 다가가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아궁이 불빛에 멀어버린 눈이, 창고 안의 어둠을 보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거기서 뭐 하세요?”
등 뒤에서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원우가 급히 몸을 돌렸다. 주방 문 앞에 민박집주인 딸이 서 있었다. 미소가 사라진 표정은 황은수와 더 닮아 착각하게 했고, 원우는 그 오싹함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서 … 손전등이 혹시 있을까요?”
원우의 말에 은채의 미소가 되돌아왔다. 하지만 그 미소가 원우에게는 이상하게 다가왔다. 그는 분명, 친구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황은수의 동생, 황은채는 미소를 지었다.
“손전등 가져올게요. 저랑 같이 가요.”
원우가 대답할 새도 없이 은채는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손전등 2개를 들고 왔다. 민박집주인 딸과 민박집 손님은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안정태를 찾아 나섰다.
늦여름의 밤은 걷기 좋았지만, 처음 온 섬에서의 밤은 보이는 모든 것이 머뭇거리도록 했다. 밤이 되자 낮 동안 하얗던 아스팔트 도로에 검은 안개가 낀 듯했다.
그 어둠 위로 노란색 원형의 불빛 두 개가 나란히 움직였다.
원우의 손전등 불빛은 발 앞의 도로를 비추었고, 은채의 손전등 불빛은 벼가 익어가는 논과 잡초가 무성한 빈집,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비췄다.
“사이렌은 왜 울리는 겁니까?”
은채가 손전등 불빛을 원우에게 쏘았다. 쨍한 불빛에 놀란 원우가 손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돌리자, 은채가 손전등을 내렸다.
“죄송해요. 무슨 말인가 해서. 안개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냥 안개라면 사이렌까지 울릴 건 없잖아요.”
“안개 때문에 가끔 사고가 있었어요. “
“안개가 왜요? “
원우의 질문에 은채는 대답 대신 손전등 불빛으로 이곳저곳을 훑었다. 원우의 눈이 자연스레 그 불빛을 따라갔다. 문 닫은 마트와 옥수수 텃밭, 텃밭 앞에 있는 황금색의 양은 물통 같은 것들이었다.
양은 물통? 순간 물통에 닿았던 은채의 손전등 불빛이 아스팔트 길로 너무 빨리 돌아왔다. 미묘한 차이였다. 하지만 미묘한 속도 차이가 이원우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원우는 자신의 손전등으로 물통을 비췄다.
“저게 뭐죠?”
“생선일 거예요. 물텀벙이나 삼세기 같은 거요. “
“생선 모양이 아닌 거 같은데…“
원우는 걸음을 멈추고, 손전등 불빛 안에 갇힌 양은 물통 쪽으로 걸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민박집주인 황 씨가 들었던 고무 물통이 스쳤다. 어둠 속에서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는 모양이었다. 비슷하다는 느낌은 곧이어 백유리가 했던 말로 이어졌다.
‘잘린 … 사람 머리 같아.’
“그럴 리가 없잖아.”
원우는 혼잣말하며 양은으로 된 물통을 향해 걸었다. 손전등의 밝은 불빛이 점점 하나만 보도록 했다. 다른 것은 시야에서 가려지고, 물통 속의 얼룩덜룩한 무언가만 보였다.
너무 밝았다. 원우는 홍채가 점점 조여드는 느낌에 눈을 가늘게 뜨고 옥수수 텃밭 가까이 다가갔다. 옥수수도 이제 보이지 않고, 오직 보이는 것은 물통 속에 담긴 머리통만 한 물체였다. 점액질이 만든 거품으로 부글거리는 액체 속에 처음 보는 거뭇한 생물체가 담겨 있었다.
‘잠깐! 황은수 동생은?’
주변은 너무 어두웠고, 불빛 속 생물체만 눈에 보였고, 뒤에 있을 황은채의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여기저기 움직이던 은채의 손전등 불빛도 멈췄다. 기분 나쁜 고요함이 그의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이원우는 뒤로 돌아 손전등의 불빛을 비췄다. 좁은 아스팔트 도로와 산으로 연결된 나무들을 살폈다. 노란 불빛이 어둠을 뚫고 허공에서 흔들렸다. 빛은 멀리도 나갔다. 벼가 익어가는 논과 잡초가 무성한 오래된 집, 옥수수수염이 말라버린 텃밭의 옥수수들.
불빛이 사라졌던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비치던 것만 바라보던 짧은 순간, 그 사이에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원우는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원우는 다시 불빛을 아스팔트 도로 끝으로 향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끝에 황은채가 서있었다. 그녀의 손전등 불빛은 꺼진 채였고, 핸드폰 불빛이 얼굴만을 비추고 있었다. 그 불빛 안에서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은채는 웃고 있었다.
“왜 웃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