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수 / 군영(軍營)에서 사형을 집행하던 사람
반촌의 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문들은 다 닫아걸었고, 성균관 사역인과 유생을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창덕궁 쪽은, 반정군들에 의해 전소된 전각에서 검은 연기가 아직도 피어올랐다.
호산월은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진 반촌 거리를 걸어 고기를 파는 현방 앞에 섰다. 마침 현방을 나서던 백정 길달이 호산월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길달은 붉은 옷을 입고, 어깨에 아주 긴 칼을 메고 있었다. 웬만한 성인의 키만큼 긴 칼은 무명천으로 둘둘 싸 칼날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눈에 그 칼이 협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길달의 말에 호산월은 너울이 달린 전모를 벗고 살며시 웃었다. 전모를 쓰지 않았다면 기생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를 만큼, 화장도 하지 않고 그저 단정했다.
“재인(宰人)께서 광희문 가시는 길이, 외로울 것 같아서요. 같이 갑시다.“
“오늘은 백정이 아니라, 회자수요. … 아니지. 아니야. 회자수도 아니고 그저 망나니입니다.“
“망나니든 회자수든 뇌물이나 좀 챙기지 그러셨소?“
호산월이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길달의 짙은 눈썹은 잔뜩 일그러졌다. 산도둑 같은 남자가 표정까지 험악했다. 어깨도 두껍고, 팔도 두꺼워 마음만 먹으면 맨손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듯했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찾아왔습니다. 다들 하나같이 고통스럽게 죽여 달라대요. 난도질을 해서 원한을 풀어달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길달이 반촌 밖으로 걸어 나갔다. 호산월은 다시 전모를 쓰고, 길달과 나란히 걸어 반촌을 나섰다. 길달은 사람이 없는 창경궁 옆 좁은 길로만 걸었다. 누가 볼까 주위를 살피는 길달에게 호산월이 말을 걸었다.
“전쟁 때, 진주성에 계셨다 했지요? 탈영하는 병사나, 왜놈들과 내통한 자들의 목을 쳤다면서요. 그때가 몇 살 때입니까?”
“열여섯에 회자수로 끌려가, 스물하나에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러더니 눈이 아주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한 번은 고향 친구가 사라졌지요. 새벽에 잡혀 왔는데 목사께서 참형을 명하셨어요. … 친구였습니다. 전쟁터에서 의지했던 유일한 친구. 그 명령은 죽는대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하는 길달은 회자수도 망나니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사람이었다.
“목사께서 직접 목을 쳤지요. 사람 목이 얼마나 단단한지 아십니까? 그 친구는 한참 동안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단칼에 목을 쳤다면 고통은 없었을 텐데.”
친구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지켜봤던 어린 회자수가 여전히 그의 몸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호산월은 나란히 걸으며 회자수 길달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난 전쟁을 떠올리며 점점 더 멍해져 갔다. 그러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람 죽어 나가는 게 언제쯤이나 끝날까요?”
“끝은 … 없습니다. 전쟁으로 죽고, 기근과 역병으로 죽고, 환국과 사화로 죽겠지요. 하지만 애도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백성이 아니니까요.”
종묘를 지나 한참 걸으니, 개천이 나왔다. 개천을 건너 광희문으로 걸어가는데, 드문드문 마주치는 사람들이 길달을 보고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길달은 다시 한번 울컥해서는 중얼거렸다.
“임금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으면, 죽이는 것도 자기들 손으로 할 것이지.”
길달의 말에 호선월의 대꾸가 이어졌다.
“제조상궁은 저들이 직접 제거했다고 합니다. 인왕산 절에서 불공드리는 것을 찾아내, 그 자리에서 죽였다 하더이다.”
“신분으로 사람의 서열을 나누었으니까요. 천한 백정이 도축한 고기로 배를 채우고, 천한 망나니가 목을 잘라낸 자들의 자리에 대신 앉아, 호의호식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호산월이 걸음을 멈추자, 길달도 걸음을 멈췄다. 바로 앞으로 돌아 나오는 장례 행렬이 보였다. 곡을 해야 하는 유족도 노비들도 조용히 걸어오는 것을 보고, 호산월이 머리를 숙이며 애도의 표시를 했다. 행렬이 지나가고 나서야 길달이 한숨을 또 내쉬었다.
“장례도 막고 있는 것을 보니, 광희문 쪽은 벌써 준비가 한창인 모양입니다. 오늘 저는 몇 명의 목을 쳐내야 하는 걸까요?”
“도망이라도 치시렵니까?”
호산월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길달은 대답 대신 광희문을 향해 걸었다. 호산월은 긴 협도를 맨 백정의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연민의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그 옆으로 뛰어갔다.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이 일을 하겠다고 한 건, 단숨에 베어버리기 위해섭니다. 절대 실수하지 않고 고통 없이 잘라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술이 들어가면 손이 떨리고 마음도 흔들릴 것입니다.”
멀리 광희문이 보였다. 문루도 없고, 현판도 없는 통로를 몇 명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전란에 불타버린 광희문은 그 흔적이 그을음으로 남아서 시구문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역병에 걸린 환자들뿐만 아니라 기침만 조금 해도 저 문을 통해 버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도성의 백성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광희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나라의 모든 권력을 휘어잡고는 백성이 죽든 말든 자신들의 배를 불리려고 했던, 죄인의 결말을 보고 싶은 것이다. 누군 회자수에게 뇌물을 먹여 고통스럽게 죽여달라 하고, 누군 난도질을 해 달라고 했다.
권력을 나누지 않기 위해 임금의 눈을 가리고, 동료를 죽이고, 매관매직을 하고, 거짓말로 고변을 하여 옥사를 일으킨 자들의 최후였다.
“성문 하나를 다시 세우지 못하는 작자들이 자기 집, 칸수 늘리는 일에만 눈이 뒤집혀서, 이놈 죽여라. 저놈 죽여라… 참 많이 죽었어요.”
“그래서, 이제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까?”
길달의 질문에 호산월이 다시 웃었다. 하지만 기쁨도 희망도 희열도 없이 슬픔만이 가득했다. 전모의 너울 너머였지만 길달도 그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자 어깨에 멘 협도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한 걸음 옮길 수가 없었다.
“어르신! … 제가 건너야 하는 문은 광희문입니까? 시구문입니까? 제가 하는 이 짓은 빛을 향해 가는 것입니까? 시신이나 쌓는 일입니까?“
백정이요 오늘만은 회자수인 길달이 호산월을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물었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고통 없이 목숨을 거두겠다. 난도질하지 않고 깨끗하게,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에 공포를 주는 대신 안도감을 주려는 그 마음이요.”
호산월의 말에 길달이 겨우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현판이 없어 광희문인지 시구문인지 분명하지 않은 터널을 지나며 길달은 처음 가졌던 마음 하나만을 붙들었다. 호산월이 그 뒤를 쫓았다.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구경을 왔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형조와 의금부, 전옥서의 관리들과 관원들이 지키는 가운데, 반정으로 권력을 뺏긴 벼슬아치들이 묶여있었다.
길달이 그들 앞으로 가자, 관원들이 죄인을 하나 끌고 와 발판에 엎드리게 하고 손발을 묶었다.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상투도 묶어 고정했다. 그때 구경꾼들 속에서 고함이 들렸다.
죽여라!!
길달은 둘둘 말아두었던 천을 벗기고 날카롭게 간 협도를 빼 들었다. 초승달 같기도 하고, 눈썹을 닮기도 한 무겁고 긴 협도의 칼날이 죄인의 머리를 잘라냈다. 그 피가 여기저기 튀고 흘렀다.
비명이 흘렀고, 죄인 중에는 우는 이도 있었다. 목에서 튄 피가 길달의 몸에 흩뿌려졌지만, 붉은 옷이어서 눈에 띄지 않았다.
호산월은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우중충하니 몰려들었다. 해를 가린 하늘은 빛처럼 밝힌다는 광희문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멀리 비석도 없는 둥근 무덤들이 보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셀 수도 없는 무덤이 언덕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렇게 묻히지도 못한 시신들이 숲과 산에서 얼마나 많이 썩어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전쟁으로 죽고, 기근으로 죽고, 역병으로 죽고, 옥사로 죽은 자들의 이름을 누가 기억이나 할까? 호산월은 숲에서 일렁이는 푸른 불꽃을 보았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꽃을 사람들은 도깨비불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죽은 이들의 뼛가루가 부딪혀 불붙은 불꽃이다.
그 불꽃을 보고 여우들이 몰려들어, 이제 막 죽은 시신의 붉은 살덩어리를 씹어먹을 것이다. 뒤이어 쥐들이 몰려들어, 눈알부터 손톱까지 갉아먹을 것이다. 그런 다음 숲에 사는 새란 새들이 모두 날아들어, 그 핏줄과 뼈까지 쪼아 먹을 것이다.
“죽여라!”
“죽여라!”
오랫동안 쌓여온 울분은 저들의 머리가 잘려 나가는 순간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돌을 던지고, 침을 뱉고, 잔인해졌다. 목이 하나씩 잘려 바닥을 구르고 피가 흘러 개천을 만들 것 같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둠이 내리고 군사들이 횃불을 들 때까지 처형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살풀이가 끝나자, 백성들은 광희문을 지나 도성으로 들어갔고, 군사들 몇이 남아 잘린 머리들을 광희문 앞에 효수했다.
호산월이 멍하니 선 길달에게 다가갔다. 당장이라도 벼랑에서 뛰어내릴 것 같은 얼굴로 효수된 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이 많이 어둡습니다. 재인께서는 저 혼자 가라 하시지는 않겠지요?”
길달이 호산월을 돌아보았다. 전쟁터에서 협도를 휘두르던 어린 소년의 얼굴이었다. 전쟁이 두렵고 사람이 죽는 것도 두렵고, 자기 손으로 사람 목을 치던 것이 두렵기만 했던 그 어린 소년의 얼굴로 호산월을 바라보았다.
“갑시다. 저랑 같이 밤새 술이나 마셔요.”
호산월은 백정으로 태어나 회자수가 된 길달의 손을 잡고 광희문을 지났다. 길달은 오랫동안 들고 있던 피 묻은 협도를 그 자리에 버리고 호산월을 따랐다. 좁은 문을 지나며 길달은 이 문이 시구문이 아니라 광희문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호산월과 길달은 어둠이 내린 도성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가득 찬 만월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