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이상하지 않소?”
“어휴, 바빠죽겠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아?”
30년 경력의 수모는 문갑 위에 화장도구를 올리며 핀잔을 했다. 하지만 수모를 따라다닌 지 겨우 5년 된 젊은 수모곁시는, 문갑 너머 열려있는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송화루 별채 마당에 핀 연꽃 때문이었다.
“연꽃이 피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하는데, 물을 끓여 땅을 데운 건가? 요상한 일이야.“
저녁놀이 내린 연못 주변은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그 사이에 연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그보다 … 형님은 본 적 있소? 기생집에서 기생이 혼례식을 올리는 거요.”
“우린 일하고, 그 대가만 받으면 그만이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수모 역시 꺼림칙했다. 오색실로 꽃과 학을 수놓고 옥과 진주로 장식한 화관에다가, 호박을 깎아 만든 봉잠. 그것도 모자라 기와집 한 채 값의 가채와 활옷이라니, 나라에서 알면 신분 질서를 어지럽혔다고 잡아갈 일이었다.
수모는 신방을 이리저리 살폈다. 두 칸짜리 방은 기생집 방이라고 하기엔 소박하고 단정했다. 벽에 걸린 호랑이 그림만이 유일한 장식품이었는데, 여인의 방이 아니라 선비의 방처럼 보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수모와 수모곁시가 일어나 한쪽으로 물러났다. 아청색 치마에 옥색 저고리를 입은 호산월이, 어린 기생을 데리고 들어왔다. 수모는 기생의 트레머리를 내리고 신부화장을 시작했다.
“우리 동아는 연꽃보다 피부가 희니, 백분은 적당히 해 주세요.”
잠시 후 연지함을 열자, 호산월이 또 끼어들었다.
“우리 동아는 연꽃보다 뺨이 붉으니, 연지도 적당히 해 주세요.”
수모는 한마디 하려다가 신부의 뺨을 보았다. 확실히 연꽃잎을 그대로 따온 듯이 뽀얗고 발그스름했다. 비싼 송연묵으로 눈썹을 그리려는데, 숱이 빽빽하고 길어서 더 그릴 것도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를 데려가는 신랑은 어느 댁 자제입니까? 내가 모르는 집이 없는데.“
수모의 질문에 뒤에 앉은 호산월은 웃기만 했다. 수모곁시가 넌지시 또 물었다.
“연꽃잎을 우려서 목욕을 하셨습니까? 향기가 진동을 하네. 뜨신물로 연꽃을 피운 거지요?“
신부의 어머니처럼 보이는 호산월은 그 말을 들으며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신부화장이 끝날 즈음 별채 마당으로 소나기가 쏟아졌다.
후두두둑!
제법 거세게 쏟아지는 소리에 수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신부의 머리를 만지던 손을 멈추고 문갑 너머의 마당을 보았다.
“이를 어째? 혼례청이 다 망가지겠네.”
“걱정 마세요. 신랑이 도착하면 비가 그칠 것이니.”
호랑이 그림 앞에 앉은 호산월의 말이 끝나고, 잠시 후 신기하게도 세차게 쏟아붓던 비가 순식간에 그쳤다. 그리고 마당으로 송화루 하인이 들어와 외쳤다.
“신랑이 왔습니다. 어르신! 나와서 맞으셔야 합니다.”
방주인이 별채 밖으로 나가자, 수모와 수모곁시가 서로 마주 보았다.
“송화루 어르신이면 그 구미ㅎ ….”
수모가 수모곁시에게 눈을 흘기고는 신부에게 물었다.
“기생일 때는 도성 사내들이 줄을 서고, 은퇴 후에는 북촌 마나님들이 줄을 선다던 그 어르신 맞소?“
신부는 대답 없이 두 사람이 입혀주는 대로 활옷을 입으며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러니 수모곁시는 더더욱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큰 마당 주변은 온통 청사초롱 불빛과 송화루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변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큰 신랑이 전안상 위에 나무 기러기를 놓고 절을 했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호산월이 크게 외쳤다.
“신랑을 초례청으로 모셔 주세요.“
초례청은 후원이었다. 병풍 대신 수련이 잔뜩 핀 연못 앞에서, 신랑과 신부가 마주 섰다. 수모와 수모곁시가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절을 하도록 도왔다.
“우리 동아, 복이 터졌구나. 이리도 듬직한 신랑한테 시집가고.”
한 기생의 말에 다들 까르르 웃어댔다. 놀란 수모가 인상을 썼지만, 웃음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호산월이 가운데 서서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수모가 청실홍실을 장식한 잔에 술을 따라 신부와 신랑이 입에 대도록 했다.
그 주변으로 나비가 날아들었다. 노란 나비들이 초례상 위로 날아다니자, 수모곁시는 나비들을 보느라 술잔을 놓칠 뻔했다.
“김서방은 우리 동아 울리면 안 되네.”
“암! 동아가 울면, 그 집 마당의 느티나무를 베어버릴 테니까.”
“다음에 우리 버선과 떡을 안 해오면, 신랑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두들겨 줄 테야. “
또 까르르하는 기생들의 웃음소리가 후원 안에 가득 들어찼다. 수모는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30년 넘는 동안 수많은 혼례를 보았지만, 이런 혼례는 처음이었다.
합근례가 끝나고, 신랑과 신부는 신방으로 들어갔다. 신방에는 삶은 돼지고기와 수수범벅에 막걸리가 차려졌다. 송화루 기생과 하인들은 모두 소사랑의 연회장으로 몰려가, 서로 술잔을 주고받고 춤을 추었다.
수모곁시는 오줌이 마렵다는 핑계로 소사랑에서 나와 신방이 있는 별채를 기웃거렸다. 신방을 밝힌 촛불의 빛 덕분에 마당과 연못까지 환했다. 수모곁시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데 연못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과 그 물방울들 사이로 연꽃이 유독 아름다웠다.
“요상하다. 요상해. 뭐 한다고 때 이르게 연꽃을 피워두었담? 임금께 바칠 것도 아니고.“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았는데, 수모곁시 바로 뒤에 송화루의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호산월이 서 있었다. 낭패였다. 혼례를 망쳤다고 품삯을 주지 않으면 어쩌나 안절부절못하는데, 화살 수십 발이 어둠을 가르며 신방의 창문을 뚫고 들어갔다.
- 슉! 슉! 슉! 슉!
화살이 멈추지 않고 신방으로 쏟아졌고, 촛불이 꺼졌다. 호산월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수모곁시를 연못 뒤로 끌고 갔다. 비처럼 쏟아지던 화살이 멈추고, 사내들의 무거운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 저벅저벅…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수모곁시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칼을 든 사내들이었다. 한둘이 아니라 열댓 명은 넘는 듯했다. 그 맨 뒤에 먹빛의 도포를 입은 사내가 들어와 별채 방을 바라보았다.
“노앵설인지 구미혼지 하는 그년을 꼭 죽인다.”
수모곁시가 눈을 돌려 호산월을 보았다.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내들의 칼을 뽑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우는 부엉이 소리 같았다. 그들이 칼을 치켜든 채 별채의 마루로 올라서는데, 그들과 함께 마루로 올라선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연못에서 피어오른 하얀 김이었다. 김은 어느새 짙어져서 살아있는 뱀처럼 땅을 기어 사내들의 발을 휘감았다. 발을 휘감고 곧 팔을 휘감아 올랐다. 그러자 칼을 든 사내들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들 놀라서 칼을 떨어트렸다.
“도깨비다!”
그 순간, 어두운 방에서 불의 살이 공중으로 쏟아져 나왔다. 방으로 쏘아졌던 화살들이 푸른 불길이 되어 어둠 속으로 내뱉어져, 제멋대로 움직였다. 사내들의 눈앞으로 불길 같은 화살이 쌩하니 지나갔다.
암살자들은 칼을 떨어트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당을 구르고 넘어지며, 별채 밖으로 도망쳤다. 마지막으로 남은 먹빛 도포의 양반 눈에 불화살의 빛이 쏘아져 타올랐다. 그러자 넋이 나간 채로 중얼거렸다.
“내 손으로 왕을 만든다… 내가 왕을 만들 거야.”
푸른 불빛 속으로 그는 꿈을 꾸듯 끔찍한 광경을 보았다. 그의 목이 잘려 바닥을 구르고, 굴러간 목이 성벽에 매달리는 광경이었다.
“ 으아아악!“
사내는 비명을 지르고는 별채 밖으로 사라졌다. 그 때야 신방의 문과 창의 불이 꺼지고 마당은 어둠과 고요를 되찾았다. 연못의 하얀 김도 사라졌다.
“이게, 이게 다 … 무엇입니까?”
“신행길 준비를 해 주세요. 자정에 출발할 것입니다.“
수모곁시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이 너무 꿈만 같아, 연못을 다시 보았다. 연꽃은 아름답게도 피어있고, 짙은 안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신방의 창은 화살자국으로 엉망이었지만 고요했고, 멀리 장구 소리와 가야금 소리,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자정이 다 되어 수모곁시는 신부를 데리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호랑이 가죽을 덮은 꽃가마와 말이 놓여있었다. 신부는 호산월의 손을 한번 잡고는 가마에 올랐고, 신랑이 호산월에게 고개를 숙였다.
“혼례의 혼은 여인과 어둠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여인이 귀만 열어놓고 있는 모양이지요. 어두운 밤, 앞은 안 보이고 기댈 곳은 신랑뿐이겠지요. “
“산신께서 권하셨고 오늘 하나가 되었으니, 함께 피고 함께 지고, 함께 바라볼 것입니다.”
신랑은 말에 올라타 앞에 섰고, 그 뒤로 가마꾼이 든 꽃가마가 따랐다. 신랑과 신부가 자정의 운종가 길로 들어서는 것을 호산월이 지켜보았다.
봄밤의 하늘에 뜬 얇은 그믐달 덕분에 사람들의 눈에 띄진 않을 것 같았다. 대문 앞에서 끝까지 지켜보던 수모곁시는 멀리 번쩍이며 춤추는 파란 불꽃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돌아선 호산월이 수모곁시와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었다.
“도깨비 장가가기 좋은 날입니다. 올봄에는 나무에 예쁜 연꽃이 피겠어요.”
수모곁시는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