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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적천석  水滴穿石

by 김사과 Mar 24.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전옥서 / 재판 중인 미결수를 가둬두는 감옥


전옥서 마당에 깔린 거적 위로, 죄인의 시신이 또 내려졌다. 한둘이 아니었다. 줄 맞춰 누운 시신의 숫자가 칠십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있었고, 나이 많은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개중 어린 소녀와 소년들도 끼어 있었다. 옥졸들이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시신을 날랐는데, 역병일 지도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신 참봉이 시신의 수를 세다가 대문 살피기를 반복하던 그때, 검은 비단 치마가 전옥서의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호산월, 그녀를 모르는 자는 이 안에 아무도 없었다. 누군 구미호라 했고, 누군 노앵설이라 했다. 그리고 한결같이 귀신을 보는 기생이라고 말했다. 신 참봉은 다급하게 호산월을 마당으로 안내했다.


“곧 형조에서 참판 영감이 나온답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어르신.”


마당에 누운 시신들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많았다. 그들 대부분이 목에 칼을 차고 손과 발에 차꼬를 채웠던 흔적이 시퍼런 멍으로 남아있었다. 태형을 맞아 흐른 피가 옷에 묻고, 발바닥의 피부가 벗겨져 썩어버린 자들, 종아리가 피범벅인 자들이었다.


“전옥서에서 죽어 나가는 이들이야 늘 있었지만, 이렇게 떼로 죽은 것은 처음입니다. 역병이 돌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귀신이요. 귀신.”

“암! 귀신 짓이지. 귀신이 아니고서야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죽을까?”     


시신을 나르던 옥졸들이 한 마디씩 거들자, 신 참봉이 눈을 흘기며 조용히 시켰다.     


“어르신, 말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좀 ….”     


호산월은 마당에 누운 시신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옥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며칠 동안 내렸던 눈이 지붕 위에 쌓였다가 녹고 있었다.


녹은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흙바닥에 일렬로 홈을 팠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힘으로 파인 자리에, 눈 녹은 물방울이 같은 속도로 계속 떨어졌다.


“수적천석 …”          


호산월이 저 혼자 중얼거리자, 신 참봉이 다가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시신이 가장 많이 나온 옥방을 볼 수 있소?”               


신참봉은 시신을 나르던 옥졸 하나를 불렀다. 나이 어린 옥졸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호산월은 어린 옥졸을 따라  남옥(男獄)으로 향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갔는지, 옥사 바닥은 온통 진흙 천지였다.     




“저기 저쪽 끝방입니다.”          


옥졸이 가리킨 곳은 남옥의 가장 끝 방이었다. 거기까지 걸어가는데, 갇혀있는 죄인들의 앓는 소리와 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살려주세요. 눈도 코도 없이, 입만 커다란 귀신이 저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나으리! … 나으리! “


살려달라는 남자의 외침을 뒤로 하고, 호산월은 옥졸이 멈춰 선 방 앞으로 갔다. 텅 빈 방은 지푸라기 위에 나무 그릇 몇 개가 나뒹굴고, 죄인들의 토사물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이 안에서 몇 명이나 죽었소?”          


“열세 명이 있었는데 다 죽었습니다. 여옥에서 삼십여 명이 죽어 나왔고, 남옥에서 사십여 명이 죽었는데, 이 방만 몰살했습니다. 혹시 그게....”     


망설이는 말투에 호산월이 고개를 돌려 젊은 옥졸을 바라보았다. 갓 상투를 올린 젊은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물었다.      


“정말 귀신의 짓일까요?”  

“칠십 명이나요?”     



호산월은 어린 옥졸을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옥졸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전날까지 살아있었는데, 아침에 보니 열세 명이 서로 뒤엉켜 죽어있었습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          


“형조와 한성부에서 검시를 할 것이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이런 죽음은 대부분 온역 아니면 식중독입니다.”          


하지만 옥졸의 의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 추운 날에 식중독이요? 그것도 이상합니다. 누군 멀쩡하고 누군 죽고.”          


“누군가는 멀쩡히 들어오고, 누군가는 태를 맞은 후 들어오고, 누군가는 장을 맞고 들어와 먹지도 자지도 못하니까요. 누군 가족이 사식을 넣어 주고, 누군 칼을 차고, 누군 차꼬를 차고, 누군 솜옷을 입고, 누군 얇은 무명옷이 전부니까요.”               


막상 그렇게 말한 호산월의 표정은 어두웠다. 무거운 숨을 삼키고 옥사에서 나오는데, 중문으로 형조 참판의 일행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호산월은 남옥 뒤로 돌아 신당 쪽으로 숨었다.          




”도대체 뭘 한 거야! 어떻게 했길래, 칠십 명이나 죽어! 이 일은 자네들이 목을 걸어야 할 것이야.“


고래고래 호통치는 소리를 피해, 호산월은 동명왕을 모시는 사당의 은행나무 뒤에 숨었다. 그런데, 신당 주변의 풀숲에 죽은 개구리들이 보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개구리 수십 마리가 배를 내놓고 죽어있었다.     


그 주변에는 이것저것 섞어 쑨 듯한, 누런 죽이 뿌려져 있었다. 호산월은 개천 쪽을 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신당 아래로 죄인들의 식사를 만드는 지찬소가 보였다.


“이제 겨우 얼음이 녹기 시작했는데, 너희가 여기 있는 이유는 먹을 것이 있어서였겠지.”                


갑자기 빨라진 발소리에 호산월이 고개를 들었다. 형조의 관원들이 둘러싸더니, 호산월의 팔을 잡고 형조 참판의 앞으로 끌고 갔다.     


형조참판은 시신 칠십여 구가 누워있는 마당에서 호산월이 끌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안 그래도 전옥서에 모든 책임을 묻고 넘어가려 했는데, 마침 좋은 구실이었다.          


“기생년이 전옥서에 숨어들다니. 죽어도 할 말이 없으렷다? 누구냐? 누가 이년을 끌어들여 나라의 법을 어지럽힌 것이냐?”               



바들바들 떨고 있던 신 참봉이 나서려 할 때, 호산월이 형조 참판 앞으로 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소인 호산월이라고 합니다.”


이름 세 글자에 형조 참판이 조용해졌다.


“수적천석… 물방울이 돌에 떨어져 구멍을 낸다. 송나라 현령이, 엽전 한 닢을 훔친 관리의 목을 친 일에서 나온 말입니다.”               


전옥서의 옥사마다 처마에서 눈 녹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물방울이 떨어진 곳마다 손가락 한 마디의 홈이 파여 물이 고였다. 고인 물 위로 물방울은 계속 떨어져 홈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지난해에도 농사는 흉작이었고, 선혜청의 곡물도 동이 나 관리들 녹봉도 지급하기 어려웠지요? 먹고살기 어려우니 남의 것을 훔치고, 그러자니 때리고, 죽이고. 고변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러니 전옥서의 방마다 죄인이 들어찼겠지요.”               


전옥서의 옥리와 옥졸과 관노비들이 빙 둘러서서 호산월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들었다.


“그래서? 무엇이 이들을 죽인 것이냐?”          


“원망이지요. 처음에는 귀찮았을 것이고, 그다음엔 지겨웠을 것이고, 어차피 죄지은 인간들 벌 받은 셈 치지. 그런 마음이 생겼겠지요.“




“아주 오랫동안 그 마음이 빗방울처럼 떨어져 … 바위를 뚫었네요.“


형조 참판은 마당을 가득 채운 칠십여 구의 시신들을 보았다. 전쟁을 넘고, 기근을 넘고, 역병을 넘어서 겨우겨우 왔는데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형조참판은 고개를 돌려 전옥서의 옥리들과 옥졸과 노비들을 보았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몇은 몸을 옆으로 틀어 숨으려 했다.               


“음식에 조금만 손을 쓰면 되는 일입니다. 한꺼번에가 아니라 조금씩.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요. 몸이 건강한 자는 아주 천천히. 매를 맞아 골골 앓는 자들은 좀 더 빨리. 몸이 약할 대로 약한 노인과 아이는 순식간에.”               


형조참판은 다시 마당의 거적 위에 누운 죄인들을 보았다. 죄인이라고는 해도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미결수들이 태반이었다. 그중에는 부모가 없어 빌어먹다가 음식을 훔친 죄로 끌려온 아이들도 있었다.


“당장 의금부에 알리고, 지찬소를 살피도록 하라.”          


하지만 신참봉은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저들은 그와 술잔을 나누고, 고충을 나누던 동료였다. 그들이 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닙니다. 이건 귀신의 짓이에요. 칠십이나 죽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어떻게 이런 짓을 합니까? 흉악한 귀신의 짓입니다.”     




호산월이 신 참봉의 손을 잡아 그 손위에 뭔가를 올렸다. 바로 죽은 개구리였다.      


“신당 앞에 개구리들이 떼로 죽었습니다. 아직 추운 겨울에 나와, 먹을 것이라고는 죄인들을 주고, 남아서 버린 음식이었습니다. 지찬소를 뒤지면 죽을 쑬 때 넣은 것을, 숨겨놓았을 것입니다. 가을 햇볕에 잘 말린... 독버섯 같은 것 말입니다.”          


신참봉은 다리를 쫙 뻗고 죽은 차가운 개구리를 한참 보다가, 전옥서 식구들을 보았다. 관노비 하나가 풀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려 마당에 누워 차갑게 언 시신들을 보았다.


신참봉은 그중 나이 어린 소년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얼마나 급하게 먹었는지 입가에 죽 찌꺼기가 잔뜩 묻어있었다. 저 죽으라고 먹인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은 것이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전옥서 마당을 가득 채웠다. 얼음은 녹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얼음밭이었다. 신 참봉은 몸을 돌려 전옥서 마당을 걸어 나갔다. 의금부로 가는 그의 짚신에 눈이 녹아 질퍽대는 진흙이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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