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를 사람들이 뭐라 부르는지 알고는 있나?”
마루에 걸터앉은 점쟁이 김천이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호산월은 마루 양쪽 기둥에 걸어놓은 제등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운종가 끝자락의 골목에 놓인 송화루는 오늘따라 어두웠고 고요했다.
“송화루 퇴기라 부르겠지요.”
“노앵설이라 부른다네. 늙은 꾀꼬리 혀. 점쟁이라고 불리는 나보다야 그럴싸하지.”
호산월은 낮게 웃음소리를 흘리고 점쟁이 김천의 옆에 앉았다. 정월대보름부터 매일매일 따듯한 물을 넣은 연못에 물풀이 싱싱했다. 물 위에 뜬 연잎 사이로는 주먹만 한 연꽃 봉오리도 보였는데, 그 주변으로 하얀 김이 아른아른한 것이 꼭 기생들의 춤사위 같았다.
“광창 부원군에게 받을 것은 다 받아놓고, 이제 와 배를 갈아타시렵니까?”
“강이 얼면 걸어서 가고, 물이 녹으면 배 타고 가야지. 살얼음이 꼈다고 걸어가다가는 물에 빠져 물귀신이 되는 걸세. 나는 물에 빠지지 않고, 강만 건너면 돼.“
“그 강, 안 건너면 그만 아닙니까? 꼭 건너서 무엇을 하시게요?”
답답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김천이 마루에서 일어나 마당에 섰다. 천한 신분에 비단 도포를 입고, 양태가 넓은 흑립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이제껏 대북파의 그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김천은 그늘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이건 절대 막을 수 없는 순리야. 나라 꼴을 봐. 전쟁 때보다 더 못 살겠다고 아우성들이네. 그때는 윗전들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싸우기라도 했지. 지금은 하나 같이 해 처먹으려고 싸우고 지랄들이잖아.”
한껏 격앙된 판수 김천을 바라보던 호산월은 바닥에 누운 그의 그림자를 보았다. 양쪽 기둥에 걸린 등불 두 개 때문에 김천의 그림자도 두 개였다. 그 그림자 사이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의 젊은 남자는 호산월을 살피면서 김천을 불렀다.
“어이, 김판수! 대감께서 부르신다.”
김천이 창백한 얼굴의 남자에게 허리를 굽실거리다가 몸을 틀어 호산월을 보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의 김천은 자신만만했던 눈썹이 축 처진 것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보는데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머뭇거렸다.
“뭐 하고 있어?”
“예! 예! 갑니다.”
점쟁이를 바라보던 호산월이 마루에서 댓돌로 내려와 신발을 신었다. 그 소리에 김천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나으리! 소인도 대감마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말씀 넣어 주시겠습니까?”
소사랑 앞에는 사병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칼을 찬 채 줄을 서 있었다. 평소라면 손님들로 북적일 대사랑의 방들은 불이 다 꺼져 고요했다. 소사랑 안으로 창백한 얼굴의 양반과 점쟁이 김천이 앞서 들어갔고, 그 뒤를 호산월 뒤따랐다.
소사랑의 연회장 문이 열리고 발을 들이자, 서로 마주 앉은 남자들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 가운데 맨 윗자리에 가장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 자가 김천입니다. 그리고 그 기생입니다.“
“퇴기 호산월이라고 합니다.”
방이 너무 넓었다. 그래서 맨 끝에 앉은 젊은 남자도 그렇고 그의 양옆으로 쭉 줄지어 앉은 남자들도, 어둑어둑하니 그림자들처럼 보였다. 흐린 불빛 속에 숨은 남자들은 수염이 하얀 노인부터 혈기 왕성한 청년까지 다양했다.
“말해 보거라. 창덕궁에 사는 호랑이를 사냥하기 좋은 날이 언제인가?”
“말씀 올리면, 제 목숨은 보장해 주시겠습니까?”
김천의 말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대북의 점쟁이가 아닙니까. 소인은 믿을 수가 없나이다. 그냥 이 자리에서 죽이십시오.”
“쌍리의 옆에서 이 땅을 사라, 저 땅을 사라. 저놈을 죽여라. 이놈을 죽여라. 저 점쟁이의 농간에 나라가 이 꼴이 된 게 아니겠습니까? 죽여서 후환을 없애는 게 맞습니다.”
호산월은 앞에 앉은 김천이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줄지어 앉은 어둠 속의 남자들을 보았다. 어둑해서 그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소반에 놓인 술을 홀짝이는 것은 보였다.
“갑사님들께선 호랑이를 잡아 무엇을 하시렵니까?”
호산월의 말에 연회장 안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러자 김천을 데리러 왔던 창백한 얼굴의 선비가 호통을 쳤다.
“이년! 갑사라니. 네가 죽고 싶은 것이냐?”
“호랑이를 잡으신다면서요? 그 호랑이가 인왕산 호랑이든, 금강산 호랑이든 아니면 창덕궁 호랑이든, 호랑이를 잡으시는 분들이면 착호갑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 호랑이를 잡아서 어찌하시겠습니까? 약재로 쓰실 겁니까? 호랑이 가죽을 얻어 겨울을 나시렵니까? 고기는 나누어 먹고, 기름으로 불을 밝히시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들은 사내들이 한 마디씩 떠들며 낄낄거렸다.
“그놈의 발톱부터 다 뽑아야지. 하나하나 뽑아서 육시를 해야지.”
“저 대북 놈들을 이번엔 뿌리째 뽑아버려야 하네.”
“제일 먼저 쌍리 그놈을 거열형으로 다스려야지.”
“아니지. 먼저 잡아 죽여야 하는 건, 그 여우 같은 상궁년이지. 지밀 것들은 어린년이든 늙은 년이든 깡그리 다 도륙 내야지. 큭크크크…“
말하는 사내들의 목소리는 이미 거사를 성공시킨 듯했다. 호산월은 조용히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하나하나 살피며, 그들의 얼굴에 내려진 그림자를 확인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수염 없는 젊은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말없이, 호산월이 하는 행동을 관찰했다. 그러다 술잔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홍계관이라는 판수가 있었지.”
호산월은 그가 말하는 판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임금에게까지 불려 갔지만, 혹세무민 한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맹인 점쟁이다.
“쥐 한 마리 때문에 목이 날아가는 게 점쟁이인데, 호랑이 때문이면, 목이 몇 개나 떨어질까? 머리 쓸 거 없이, 길한 날짜를 말하면 된다. 두 사람에게 동시에 들어야겠다. 호랑이 사냥하기에 좋은 날은 언제이냐?”
그러자, 얼굴이 창백한 젊은 선비가 종이와 함께 갈아놓은 먹물과 붓을 들고 왔다. 떨어져 앉은 점쟁이와 호산월에게 날짜를 적으라 하고 기다렸다.
점쟁이 김천은 바들바들 떨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는 종이에 날짜를 적어 선비에게 주었다. 하지만 호산월은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늙은 꾀꼬리의 혀라더니, 화복과 길흉을 맞추지 못한 적이 없다더니… 그 혀가 굳어버린 건가?”
“하하하하…”
어둠 속의 젊은 남자가 비웃으며 말하자, 다들 따라 웃었다. 그가 누군지 호산월은 잘 알고 있다. 핏줄로 치면, 이 나라에서 가장 귀한 핏줄인 동시에, 광인의 핏줄이었다.
“북촌의 안방마님들이 부르지 못해 안달이라더니 다 헛소리군.”
맨 윗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의 말에, 호산월이 일어나서 문갑 위에 놓인 커다란 백자 쪽으로 갔다. 백자 안에는 갓 피어서 꺾어다 놓은 홍매화 꽃가지가 여러 개 꽂혀있었다.
“노앵설이라고 불러주시니, 제가 오늘 밤 무꾸리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누구에게 흉한 날이려면, 누구에겐 길한 날이지 않겠습니까?”
호산월은 매화가 핀 나뭇가지를 꺼내 들고, 사내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다음 홍매화 꽃잎을 한 남자의 술잔에 담갔다가 털었다. 술 방울이 거무튀튀하고 눈썹이 짙은 남자의 얼굴 위로 튀었다.
“아니고, 갑사님. 왜 그러셨소? 욕심이 너무 많고, 질투도 많고, 의심도 많으니 될 것도 안 되지. 사지가 절단된 채로 참수되겠네. 산 채로 팔다리 잘리는 것을 보시겠소.”
놀란 남자가 헛웃음을 내뱉더니 부르르 떨었다. 본체만체 호산월은 뒤를 돌아, 먹빛 도포를 입은 남자의 술잔에 홍매화 꽃잎을 담갔다. 꽃잎에 묻은 술 방울이 그의 주위로 흩뿌려졌다. 호산월은 놀라서 깊이 숨을 들이키며 미간을 모았다.
“나라를 팔아먹는구려. 아들은 역모로 죽고, 손자도 죽고. 목이 떨어져 성벽에 걸리겠소. 아내도 며느리도 첩도 모두 모두 노비가 되겠구려. 조상의 묘는 다 파헤쳐져, 부관참시를 당하니 멸문이요. 멸문.”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산월의 멱살을 잡았다.
“낙서!”
상석에 앉은 우두머리의 부름에 멱살을 놓았지만, 호산월을 향한 사내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호산월은 멈추지 않고, 걸어가 연회장에서 가장 어리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남자의 술잔 앞에 섰다. 그리고 매화꽃을 술잔에 담갔다가 흔들었다.
방 안에 앉은 사내들이 올려다보니 호산월이 너무나 길게 보였고, 길쭉한 모습이 어둑시니 같았다. 이 어두운 밤에 만난 헛것 같았다. 올려다볼수록 호산월이 저절로 길어졌고, 곧 깔려서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방안에 들어찼다.
“원하는 것을 얻으실 겁니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잃으실 겁니다. 참으로 많은 이의 손가락질을 당하시며 높은 곳에 서실 겁니다.”
그러고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가 몸을 세웠다.
“내달 열두 번째 날입니다. 호랑이 사냥에 성공하면 오늘 봐 드린 길흉도 맞을 것이고, 실패한다면 제 목을 내어드려야겠지요?“
얼굴이 창백한 선비는 들고 있던 종이를 펴서 사람들이 보도록 돌렸다. 정확히 다음 달 12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점쟁이 김천은 안도의 숨을 토했다. 호산월은 홍매화 가지를 다시 달항아리에 꽂고, 문 앞에서 한 번 더 깊이 허리를 숙였다.
“얼음이 녹을 때면, 쩍 갈라지는 소리에도 호랑이는 도망을 가지요. 얼음이 녹는 것을 모르면, 배를 언제 띄울지도 알 수 없습니다. … 배를 띄우는 것도 물이고, 배를 뒤집는 것 역시 물입니다.”
그렇게 말한 호산월은 연회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방안은 고요했다. 여기저기 뿌려진 독한 술 향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호산월의 뒤를 쫓지 못했다. 점쟁이를 죽이라던 사내들도 호산월을 죽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그저 자기들 도포에 떨어진 술방울을 조용히 털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