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밤

by 김사과

수많은 밤이 스쳐갔다

밤이 밤인지도 모른 체

밤이 얼굴인 줄도 모른 체

어두웠다가

밝았다가

비가 내렸다가

달이 뜨기도 했다

적당한 날에는

골목을 걸어서 밤을 마주하기도

나무 사이에 서서 밤에 인사하기도

차들이 오가는 숨소리에

따라 숨을 뱉어보기도 했다

그날의 밤은

그다음의 밤과 달랐지만

스쳐갔다

깜깜한 어둠도 그저 어둠

나무를 기어가는 개미는

보이지 않았고

발소리의 분위기는

들리지 않았고

별은 어차피 사라진 체

수많은 밤은 아침이 되었다

밤이 밤인지도 모른 체

아침의 고요를 만든 밤

고요의 냉정함

무수한 밤이 만든

무수한 아침

무수한 고요

무수한 냉정함

밤은 아침에도 있었고

빛 속에도 있었고

얼굴 속에 있었고

밤은 무수한 사이사이에

무수한 걸음과 걸음 속에

눈을 깜박거리는

그 눈꺼풀 사이에도

나의 무수한 밤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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