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팀장님의 점심시간

혼밥에 서글퍼지지 않기

by 구르미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가뭄 끝의 단비이며, 끝없이 펼쳐진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오전 11시만 넘어가도 몸은 슬슬 신호를 보낸다. 업무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마우스 커서는 점심 메뉴 공지를 맴돈다. 생체시계는 점심을 알리고, 머릿속은 이미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떠올린다.

물론 팀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팀장도 배가 고프고, 밥은 먹어야 하니까. 다만 '어떻게', 그리고 '누구와' 먹을지의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예전엔 팀장이라는 직책의 무게가 팀원들의 선택을 덮곤 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MZ를 필두로 각자의 점심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고, 점심조차 선택받는 시간이 되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꺼내긴 쑥스럽지만, 그래도 어느새 회사 생활이 20년을 바라보는 나로선, 그 시절 점심 풍경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그때는 점심에 약간의 낭만이 있었다. 대부분은 구내식당에서 먹었지만, 가끔 팀장님이 “오늘은 밖에서 닭백숙 한 그릇 어때?” 한마디 하면, 누구도 이견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 키를 챙기고 다 함께 외부 식당으로 향하는 시간은 마치 짧은 여행 같았다.

도시 외곽, 조금 더 시골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OO가든 같은 식당이 있었고, 도착하면 미리 예약된 자리엔 닭백숙이 김을 내고 있었다. 초록 병 몇 개가 자연스레 테이블을 채웠고, 반주 한두 잔의 여유가 점심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배가 부르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사무실에 돌아오면, 오후 업무는 그야말로 '적당히' 흘러갔다. 저녁엔 골프 연습장을 함께 가거나, 커피 한 잔을 하며 자연스럽게 하루를 정리했다. 그땐 업무도 인간관계도 선이 분명하지 않았지만, 대신 온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점심에 반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휴대폰과 채팅창이 감시자가 되고, 누군가는 그 모습을 곱게 보지 않는다. 팀장이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 점심을 함께 먹자고 제안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시대다. "오늘은 다 같이 점심 먹으러 갈까요?"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운동해야 해서요”, “도시락 챙겨 왔어요”, “약속이 있어서요”다. 억지로 권했다간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떤 팀장은 조용히 혼자 밥을 먹는다. 혼자 걷고, 혼자 들어갔다가, 혼자 나오는 점심시간. 또 어떤 팀장은 1:1 식사를 제안하지만, 팀원들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하다. 갑작스레 업무면담이라도 할까 봐, 말수가 줄고, 분위기는 어색해진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세대도 바뀌었고, 문화도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점심 한 끼조차 나누기 어려운 풍경은 어딘가 안타깝다. 그저 한 끼를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진심이 전해질 수 있는데, 그걸 놓치는 것 같아서.

어쩌면 지금 팀장님도 고민 중일지 모른다. 누구와, 어떻게 점심을 먹는 게 좋을지. 그런 그에게 조심스럽게 건네보면 어떨까?

“팀장님, 오늘 점심 같이 드시러 가실래요?”

단 한 끼의 점심이,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온기를 남길지도 모르니까.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26화영화처럼, 내 커리어도 리부트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