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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마라톤, 송도 국제 마라톤 10km

이제는 홈그라운드다.

by 구르미
출처 : http://songdorun.net/

바야흐로 러닝 인구 천만 시대. 그만큼 주변에도 러닝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어쩌다 회사 헬스장에서 자주 마주치던 다른 팀 동료분과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마라톤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르미님, 9월 말에 송도에서 마라톤 하는데 신청하시죠? 아직 신청 중이에요."

"네? 저 마라톤 뛴 적이 없어서. 내년에 도전해 보려고 하고 있었어요."

"르미님은 꾸준히 뛰고 계시니까 어렵지 않으실 거예요. 같이 뛰시죠!"

"아, 그래볼까요?"

"저 하프 뛰는데 같이 하프 신청하시죠?"

"아, 그건 안될 것 같고, 전 10km에 신청해 보겠습니다!"

"네 그럼 그때까지 준비 잘하시고, 출발선에서 보시죠."


그렇게 엉겁결에 말을 해버렸고, 그날 마라톤에 신청했다. 마라톤 출발점은 우리 집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이라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가도 충분한 거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엔 내가 아직 10km를 달려보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팀에서 가장 잘 달린다고 하는 민성님에게 물어봤다.


"민성님, 혹시 9월에 하는 송도 마라톤 뛰세요?"

"아, 전 그날 서울에서 다른 마라톤 일정이 있어서 송도에서는 못 뛰어요."

"아, 그렇군요. 근데 제가 아직 10km를 안 뛰어 봤는데, 대회는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요?"

"르미님은 꾸준히 뛰셨으니까 10km는 무난하게 뛰실 거예요.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개인적으로는 '나이키 러닝 클럽' 추천드려요. 거기에 10km 마라톤을 언제 뛸 건지 일정을 입력하면 알아서 훈련 스케줄을 잡아주거든요."

"아, 그래요? 깔려 있긴 한데 아직 안 써봤었거든요. 한번 해볼게요."


폰 안에 코치 있다.


요즘은 좋은 세상이다. 알아서 훈련 스케줄을 짜준다니. 그래서 그날 저녁 바로 나이키 러닝 클럽, 줄여서 NRC를 접속해 봤다. 지역과 언어를 영어로 바꾸니 10km뿐 아니라 하프와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는 플랜까지 활성화되었다. 물론 코칭을 영어로 들어야 해서 조금 생경하긴 했지만, 다행히 어렵지 않은 단어와 속도라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출처 : https://www.nike.com/kr/running/half-marathon-training-plan

훈련 코스는 크게 3가지 종류가 있었다.

1. Recovery run : 편안한 속도로 길지 않은 시간(20분?)을 달림. 코치의 이야기를 들려줌. 회복이 중심.

2. Speed run : 인터벌 훈련. 대신 종류가 여러 가지 있음. 빠르게 달리고 쉬었다가 다시 빠르게 달리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경우도 있고, 피라미드 런처럼 변주한 인터벌도 있음. 근력을 향상해 대회 참가시 스퍼트가 가능하도록 근력을 향상하는 목적.

3. Long run : 매주 거리를 늘려가며 장거리를 달림. 속도보다는 거리 중심이므로 지속 가능한 속도로 달리도록 가이드함.


유명한 코치나 선수의 내레이션 혹은 응원이 힘을 주었다. 시간이 없다면 밤 11시에라도 나가서 했었으니, 나름 나도 즐거운 코스였던 것 같다. 특히 Speed run은 내가 따로 하지 않았던 훈련이라 더 재밌었다. 훈련의 마지막에 몸을 극한의 상황까지 내몬 후에 훈련을 마칠 때의 성취감은 나에게 묘한 도파민을 주었다.


그렇게 NRC 훈련도 하고, 기존에 하던 매트 필라테스도 지속하고, 새롭게 타바타 트레이닝 (20초 고강도 훈련+10초 휴식 반복)도 시작하면서 내가 회사원인지, 운동선수인지 모르게 운동에 미쳐서 살았다. 사실 이게 재미가 없었다면 안 했을 텐데, 문제는 재밌었다. 내가 살아있는 느낌도 들고 극한의 상황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에 중독된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운동에 열심히 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번 주 일요일 아침부터 전국에 비가 내릴 예정입니다.'

그렇게 첫 10km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는데 뉴스에서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토요일만 해도 하늘에 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흔한 기상청의 뻥처럼 흐리긴 하나 비가 안 오는 정도를 기대했는데, 야속하게도 대회 당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세차게 오고 있었다. 그냥 이슬비 수준이 아니라 많이 내리고 있었다. 10km 마라톤도 처음이지만 비 오는 마라톤은 아예 상상조차 못 했기에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우산을 들고 가야 하나? 우산을 그럼 들고뛰어야 하나?

우비를 입어야 하나? 우비를 입고 뛰다 보면 엄청 덥지 않을까?

출발 지점까지 어떻게 가지? 걸어가긴 너무 먼데..


여러 고민을 하다가 오늘 같이 마라톤을 뛰기로 한 요한 님에게 물어봤다.

"오늘 비 오는데 마라톤 해요?"

"네, 해요. 의외로 비 오는 날 마라톤은 흔해요."

"그럼 우산은 어떻게 해요? 우비 입어야 해요?"

"어차피 아예 안 젖고 뛰는 건 불가능해요. 우산을 들고 가도 뛸 때는 접어둬야 하고, 접은 다음에 짐을 맡길 수도 있어요. 근데 전 그냥 우산 다 부서진 거 들고 가서 경기 전까지 쓰다가 출발할 때 쓰레기통에 버릴 거예요. 다른 분들은 싼 우의 입고 있다 출발하면서 버리는 분도 계시고 큰 비닐 준비해서 그거 구멍 뚫어서 옷 위에 입고 있다가 출발할 때 버리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럼 전 그냥 바람막이 입고 있다가 허리에 매고 갈게요."

"네, 그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근데 가벼운 옷으로 준비해요. 은근 물 먹으면 옷이 무거워요."

"네, 혹시 차 갖고 가세요?"

"아마 엄청 막힐걸요? 전 근처 역에 있는 주차장에 차 세우고 걸어가려고요."

"전 그냥 주차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네, 행운을 빕니다. 그럼 끝나고 저 좀 역까지 태워다 주세요."

"네, 그럼 이따가 봬요."


부랴부랴 경기 후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차를 타고 출발했다. 예상한 대로 차들이 엄청 밀려와서 길이 난장판이었는데, 다행히 틈새 자리를 찾아 빠르게 주차를 하고, 상태를 지켜봤다.


저 뒤가 무대인데, 사람들은 반대쪽 출발선 쪽에 몰려 있었다. 비가 너무 매려서 도저히 그냥 맞을 순 없었고, 천막에서 비를 피하며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출발.


비가 너무 와서 안경은 출발 후 바로 벗었다. 위에 비를 피하려 입었던 바람막이도 2km 정도 지나고 벗어서 허리에 묶었다. 신발은 빗물에 서서히 젖다가 물 웅덩이 몇 개를 밟으니 그냥 장화가 되었다. 옷은 무겁고, 눈은 빗물에 뜨기 어렵고... 이러고 뛰어야 하나 싶었는데, 한 가지 좋은 점도 있었다. 열이 안 오른다.


원래 3km 정도 지나면 땀이 비 오듯 흐르는데, 비가 열을 시켜줘 땀이 거의 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음악을 들으며 내 페이스에 맞춰서 하염없이 뛰었다. 주변 풍경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달렸다. 다행히 멈춰서 걷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첫 10km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PB를 달성했다.



53분 27초. 저번에 호주에서 5km를 27분에 달렸는데, 거리는 두배로 늘었지만 속도는 오히려 그때보다 빨라졌다. 막판에 힘이 남아서 전력으로 달렸는데, 남은 체력을 생각하면 더 일찍부터 스퍼트를 시작하거나, 전체적인 페이스를 올려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10km를 뛴다면 50분 미만을 달성해야지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생각해 보니 일단 다음 하프 마라톤에서 컷오프 2시간 30분 이내에 들어오는 것이 더 문제긴 하다. 이렇게 또 하프를 위한 여정이 다시 시작이다.

막상 지극히 개인적인 마라톤 도전 및 마라톤 결과인데, 내 얘기가 아닌 남의 얘기를 듣는 독자 입장에서 이 글은 어떻게 읽힐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이 글을 보고 누군가는 고민에 빠졌을 때, '아, 나도 해보고 싶은 게 있었지. 괜히 바쁘단 핑계로, 늙었다는 변명으로 피하고 있던 게 아닌가? 다시 도전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음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이렇게 10km 마라톤 도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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