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달리는 거예요?
조금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가족들과 간단히 늦은 저녁을 먹고 가족 모두 잠자리에 든 밤 11시. 그대로 잘까 하다가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선다. 예전 같았으면 인터넷 뉴스나 커뮤니티 글을 보거나, 숏츠를 보다 잠들터였다.
늦은 시간이라 내려가는 방향 엘리베이터에는 사람이 없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슬쩍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 스트레칭을 하다 보니 1층에 도착했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를 고민하다가 점점 선선해지는 날씨에 맞춰 오늘은 어쿠스틱 음악을 고른다. 나이키 러닝 클럽의 가이드 런을 할까 하다가 오늘은 그냥 내 흐름대로 뛰어보기로 하고 발목부터 무릎, 고관절, 허리, 어깨, 목을 가볍게 풀어주고 파워 워킹으로 오늘 달리기를 시작한다.
오늘의 코스는 아파트 단지 뺑뺑이 10바퀴이다. 아직 해가 있거나 늦지 않은 저녁이라면 순환보다는 먼 곳까지 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차피 가면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달려야 하는 것도 있고, 달릴 때면 거리의 기준이 걸을 때보다는 넓어져 여기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곳 까지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은 밤에는 길이 어두워지기도 하고, 인적이 드물어 안전 문제도 있어서 단지 내 순환 경로를 뛰는 경우가 많다. 늦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단지 내에는 나처럼 늦은 시간에 달리는 사람이 간간히 있어서 의지를 더 북돋아 준다.
처음 3km까지는 회사에서 있었던 고민과 삶에 대한 고민, 그리고 어딘가 불편한 근육과 관절이 다들 시끄럽게 내 머릿속에서 싸운다. 그래서 그만 뛰고 걸을까, 그냥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하는 무한한 물음표가 머리 위에 구름을 이룬다. 이젠 그런 버징은 익숙해져서 무시하며 심박수를 올린다.
3km가 넘으면 이제 심박수도 안정적이고 근육이나 관절도 신기하게 편안해진다. 몸도 이제 달리기를 받아들인 것이다. 인터벌 훈련이 아닌 이상 웜업 후에는 동일한 속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예전에는 이게 참 지루했다. 젊었을 때에는 달리기는 전력 달리기이지, 하면서 트렉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1km 트랙 한 바퀴를 다 못 돌고 다시 걷다가 뛰다가 그렇게 두어 바퀴 뛰곤 같이 간 지인과 다른 운동을 하던, 아니면 오늘 달리기는 여기까지 라고 하며 집으로 온 적이 많았다. 길게 뛴다는 것 자체가 지겨웠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지겨운 달리기를 한 시간 넘게 하는지 참 신기하다.
장시간을 달릴 수 있는 건, 그리고 장시간을 달리고 싶은 건, 아마도 달리면서 진입하게 되는 다른 영역의 희열 때문 인 것 같다. 3km 정도가 지나고 나면 몸은 어느 정도 예열이 되긴 했지만 175~185 정도의 케이던스로 5:45~6:00분/km 페이스를 달린다는 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바닥에 닿는 발의 위치, 바닥에 닿은 발이 지면을 밀어내는 느낌, 종아리 근육의 긴장, 무릎의 부담, 햄스트링의 당김, 허리의 곧곧함, 팔을 움직이는 각도, 내 시선, 호흡의 빈도와 깊이. 이 모든 게 관리되어야 동일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 그 상태가 되면 뛰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달리려면 온 신경을 달리는데 쏟아야 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달리다 보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긴다. 내가 달리고 있구나. 내가 유지하고 있구나.
그렇게 달리가 9km가 넘으면 또 내 몸의 신호와 실랑이하게 된다. 이젠 좀 힘들다. 페이스를 줄여야 하나. 이러다가 어디 부상이 오는 것 아닐까. 그럼 내 몸과 협상을 한다. 10km까지만 달려보자, 1시간까지만 달려보자.. 그런데 언제나 그 협상은 계속 바뀐다 시계를 보며 10km를 통과했지만 조금만 더 해보자, 1시간을 넘게 달렸지만 한 바퀴만 더 달려보자. 그렇게 달리다가 오늘 목표를 채우거나, 기존의 기록을 넘어서면 아무런 상도 없는 성과에 만족하며 달리기를 끝낸다. 달리기가 끝나고 걷기 시작하면 무릎은 한없이 무거워지고, 땀도 비 오듯 흘러 눈이 따가울 정도인데, 그게 좋다. 오늘도 해내었다는 기분이 좋다.
어느 순간 성취에 대한 역치가 높아진 것도 있지만 성취를 얻을 개체가 별로 없어진 게 사실이다. 회사에서도 임원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없으니 지금 자리를 유지하는 정도가 최선이 되어 버렸고, 아이는 아직도 크고 있지만 생각하는 것은 성인과 다름없을 나이가 되었으니 내가 양육을 한다기보다 같이 생활한다는 편이 더 맞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와이프와도 연애 때처럼 마음을 얻기 위한 질풍노도의 시기는 아니니 눈빛을 안 봐도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달리기가 주는 성취는 또 다른 의미이다. 아직 내가 살아있다. 아직은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달리기를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의 인생에 달리기 같은 작은 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달리는 동안 내가 온전히 그 세계에 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무언가 몰입해 본 적이 언제였는가? 그 몰입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그게 달리기라면, 미루지 말고 지금 뛰러 나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