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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도전, 이제는 하프 마라톤이다 - 1

D-32일, 마음처럼 늘지 않는 거리

by 구르미


어렸을 적에는 둘도 없는 영혼의 단짝이었던 남동생은 크고 결혼한 후엔 명절에만 만나는 아육대 (아이돌 육상 체육대회) 만큼이나 뜸하게 보는 사이가 되었다. 거기에 쌍둥이까지 낳고 나선 전화도 자주 하기 어려워졌다.


여느 남자 형제가 그렇듯 사실 큰일이 없으면 서로 연락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연을 끊은 건 아니고 연락이 없으면 잘살고 있겠거니 하고 있다. 조카가 태어나긴 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살기에 마음처럼 자주 못 가기에 미안할 뿐이다.


그런 동생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형, MBN 서울 마라톤 뛸 생각 있어?"

"어? 웬 마라톤?"

"형 요즘 달리기 한다고 엄마가 그러던데? 회사에서 MBN 마라톤 후원하는데, 임직원 및 가족 대상으로 마라톤 표가 나와서 선착순으로 신청해준다고 그러네."

"와. 너네 회사 복지 장난 아니네. MBN 마라톤 인기가 많아서 신청하고 싶어도 못하거든. 나도 신청하려고 들어갔다가 결국 못 했잖아."

"이런 거 주지 말고 돈이나 더 주라고 해. 여하튼 링크 줄 테니까 신청해. 가족관계에 내 이름 쓰면 돼."

"오케이. 고마워. 너도 나갈 거지?"

"그럼 애는 누가 보고? 난 쌍둥이 봐야 해."

"에고, 그게 다 추억이다. 지나면 또 그립다. 여하튼 고맙다 동생!"

"형이니까 특별히 마진 없이 원가만 받을게!"

"그래 마음만 잘 받을게~"


말은 저렇게 했지만 신경 써준 동생이 고마워 쌍둥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두 개 주문해서 배송시켰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객기가 부른 재앙의 시작


원래는 10km를 뛰려고 했다. 아직 하프는 무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청하기 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코스를 보고서 괜한 욕심이 생겼다.

'광화문에서 잠실 종합 운동장이라고?'

'내가 언제 저 도심의 도로를 달려볼 일이 있을까?'

'이왕 하는 거 더 비싼 거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프 8만원 10km 6만원)'

물론 꾸준히 뛰기 시작한 지 8개월이 넘었고, 매달 100km 이상은 뛰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작 5km 마라톤 한번 뛰어본 게 전부인 마라톤 초짜임에도 뜬금없는 객기로 하프를 신청해 버렸다. 그리고 신청을 잊을만할 때 즈음 문자가 하나 왔다.

당연히 될 거라 생각하고 훈련도 꾸준히 하긴 했는데, 신청이 됐다는 문자를 받고 나니 괜히 더 긴장이 됐다. 잘할 수 있을까?


새로운 코치 고용, 훈련 시작


9월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마침 9월 말에 10km 마라톤을 신청한 것도 있어서 10km 마라톤 준비 겸 하프 준비를 위해 체계적인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새로 고용한 코치는, 나이키 러닝 클럽의 외국인 코치였다. 안타깝게도 한국어 버전은 하프마라톤 훈련 플랜을 지원하지 않는다. 영어로 바꿔야만 훈련 플랜과 코칭을 지원한다. 그래도 쉬운 영어로만 해줘서 듣기에 그리 어렵진 않았다.


이렇게 일주일 훈련과 휴식 플랜을 제공해 주고 각 세션마다 코치가 오디오로 설명해 주고 의욕을 북돋워 주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도장 깨기 느낌도 있었고 내가 더 발전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이대로만 잘 따라 하면 하프도 달릴 수 있겠단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찾아온 근육 통증과 근골격 치료


처음으로 10km를 달려보고, 일주일에 5일 정도는 꾸준히 달렸었다. 그런데 거리를 늘리고 나서 갑자기 고관절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근육의 피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다리를 펼 때면 고관절에서 인대가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안했다.

'아프지 않으려고 운동을 하는 건데, 아프면 안 되는데, 이러려고 운동했던 건 아닌데..'


불안한 마음에 전에 방문했던 근골격 클리닉에 방문해서 상태를 설명했다. 여기저기 누르고 비비고 이런저런 신체 실험을 한 후 근골격 선생님께서 주신 소견은, '대퇴직근'과 '봉공근'의 과도한 긴장 및 수축에 따른 고관절 전면 쏠림이었다.


허벅지 앞 쪽에 있는 근육이 달리기를 하면서 많이 긴장되어 수축이 되었고, 그게 근육만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 붙들고 있는 고관절 뼈까지 앞으로 당긴 것이었다. 그 덕분에 허리까지 아프고 왼쪽 다리가 더 쉽게 피로해졌던 것이다.


<참고> 대퇴직근과 봉공근 스트레칭

https://blog.naver.com/haffywind/224036464610


호전되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문제는 근골격 치료 시 뭉쳐있는 근육을 누를 때 정말 아팠다. 재활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재활이 이 정도 고통이라면 진짜 힘들 것 같았다. 통증에 거의 정신을 놓을 뻔하다시피 참고 견디다가 시간이 다 지나갔다.


과연 이 불편함을 깨끗하게 낫게 할 수 있을까?

최상의 컨디션으로 하프 마라톤을 뛸 수 있을까?


아픈 몸과 달리기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데,

문득 피식하고 헛웃음이 났다.


아침만 해도 상사의 눈치에 불안한 미래에 온갖 걱정이 머리에 가득 찼었는데,

몸이 힘들어지니 다른 걱정은 떠오르지도 않는구나.

달릴 때만 느끼던 현실 걱정 회피를 이럴 때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재밌었다.


이제 하프 마라톤까지 한 달 정도 남았다.

처음에는 쉽게 보였는데, 점점 쉽지 않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과연 난 2시간 반 컷오프 전에 완주할 수 있을까?

처음엔 2시간 이내에 들어와야지 하는 목표를 세웠다가, 일단 완주라도 하자고 목표가 바뀌었다.

준비하면서 무슨 일이 생길지 궁금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새로운 도전이 재미있단 것이다.


다음은 또 어떤 문제가 생기고 어떤 도전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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