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0) 초겨울 마라톤에 대비하기
첫 마라톤은 16도 정도로 선선했던 8월 마지막 주 여행 중이었던 호주 시드니였고, 두 번째 마라톤은 20도 정도에 비가 왔던 집 근처였다. 그나마 무난했던 두 번의 마라톤에 비해 세 번째 마라톤은 난이도가 부쩍 올랐다.
거리가 늘었고, 위치가 집에서 멀어졌고, 날씨가 확 추워졌다. 이 3중고를 이겨내기 위해 전략을 짜봤다.
심적으로 가장 큰 차이라 하면 달리는 거리이다. 어쩌다 보니 더블링으로 늘고 있는 거리인데, 처음 5km야 어렵지 않게 뛰었고, 그다음 10km도 1~2주에 한 번씩은 10km를 뛰었기에 뛸만했는데, 이제 또 두 배가 되어 21.1km이다.
하프는 아마추어에게도 의미가 큰 것이, 10km는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일반인도 악으로 뛸만한 거리다. 물론 뛰고 난 후 며칠 고생할 수는 있겠지만, 넘사의 영역은 아니다. 그래서 10km 마라톤에 참가해 보면 이벤트로 뛰는 사람도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한다.
그런데, 하프는 단순히 깡으로는 달릴 수 없는 거리이다. 왜냐면, 아무리 깡으로 뛰어도 10km가 넘으면 어딘가 심각하게 아파 도저히 버티지 못할 수준이 되는 경우가 많고, 거리가 길기 때문에 컷오프의 압박도 커진다.
도심을 달리는 마라톤은 보통 컷오프 시간을 정하는데, 그 이유는 교통통제를 무한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참가하는 MBN 마라톤은 광화문 광장을 출발하여 잠실 운동장에 도착하는 코스인데, 서울의 중심을 통과하기에 컷오프 시간이 2시간 30분이다. 10km를 뛰던 5분 초반 페이스까지는 안 바라고, 적어도 6분 페이스로만 달려도 2시간인데, 보통은 10km 마라톤 기록에서 30분을 추가한다고 하니 그럼 2시간 반이 간당간당하게 된다. 개인의 기록을 떠나 컷오프를 조마조마하며 뛰어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다. 컷오프 돼서 차 타고 도착지로 가는 건 정말 하기 싫기 때문이다.
전에 뛰어보지 않았던 거리를 컷오프라는 무언의 압력을 놓고 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거리를 늘리는 훈련을 위주로 했다. 매주 한 번은 장거리를 뛰기로 하고, 10km - 13km - 15km 이런 식으로 점점 늘려가고 있다. 중간에 퍼지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컷오프 전에는 들어오겠지.
그리고 거리가 길기 때문에 또 하나 준비한 것이 '에너지젤'이다. 나중에도 뛸 걸 대비해서 대량으로 구매해 봤는데, 과연 다 먹을 만큼 달릴 수 있을까 싶긴 하다.
혹자는 에너지젤이 굳이 필요하냐라는 말도 있긴 한데, 그래도 영양학적으로 봤을 때 장거리를 달리면 몸속의 글리코겐을 다 소모하게 되고 그럼 더 피로하게 될 것이라, 출발 전, 10km 지점, 도착 후 회복 시 먹어주면 도움이 되긴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성분도 아미노산, 당류, 전해질 등이 들어있고, 내가 고른 건 부스팅을 위해 카페인도 들어있다. 부디 효과가 있길 빌어본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위치다. 이번 경기는 광화문에서 출발해서 잠실 운동장에 도착하는데, 양쪽 다 집에서 멀고, 대중교통으로 가기 불편한 위치다.
일단 차로 가는 걸 고민해 봤다. 차로 가면 일찍 도착했을 때 차에서 기다릴 수도 있고, 완주 후 먹을 걸 넉넉히 준비해 둘 수 있으며, 무엇보다 편안하게 오고 갈 수 있다. 대중교통을 탄다면 집에서 출발해서 광화문까지 2시간은 걸릴 텐데, 차로 가면 1시간이면 가니 월등히 편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a. 주차 : 아무리 주말이지만, 엄청난 인원이 몰리는 마라톤이 열리니 주변 주차장이 다들 미어터질 것이다.
b. 출발지-도착지 : 10km는 같은 곳에서 출발/도착이라 그곳에 주차하면 되는데, 하프는 출발과 도착지가 많이 떨어져 있다. 만약 광화문에 주차한다면, 경기가 끝나고 굳이 다시 대중교통으로 광화문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그냥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조금 일찍 출발해서 가기로 했다. 근처에 숙박하고 가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난 기안84처럼 모텔이 편하지 않다. 그냥 집에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가는 게 낫겠다.
그럼 또 한 가지 걱정이 생기는데, 짐은 어떻게 하지?
다행히 짐은 광화문 광장에서 맡기고 짐 이동 서비스로 잠실 운동장에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경기 후 입을 외투나 간식거리를 적당한 가방에 넣고 맡겨야겠다.
이래서 서울 살아야 하나 보다. 멀면 너무 힘들다. 이런데 춘천이니 대구니 그런데는 어떻게 참가하나 모르겠다. 새삼 그들의 열정에 존경심을 느낀다.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날씨다. 오늘도 아침에 5도까지 떨어졌던데, 3주 후라고 온도가 더 오를 일은 없고, 영하는 아니겠지만 10도를 넘진 않을 것 같다. 그런 날에 뛰어야 한다니..
첫 걱정은 뛸 때 복장이다. 겨울 달리기는 뛰기 전에 춥고, 뛸 때는 덥고, 뛰고 나면 급격히 추워진다. 그래서 러닝 고수들에게 물어보니 일회용 우의를 위에 입고 뛰다가 열이 오르면 버리고 계속 뛰고 도착하면 바로 짐 찾아서 외투를 입으라고 한다.
음, 쓰레기를 버리는 게 좀 걸리긴 하는데, 잘 보이는 운영위원들이 있는 곳에 미안한 표정을 하며 놔둬야겠다. 저번에 바람막이를 입고 뛰다가 허리에 차고 가봤는데, 은근히 걸리적거려서 일회용 우의가 더 나을 듯싶다.
그리고 안쪽 복장은, 위에는 긴팔을 입고, 아래는 춥지만.... 긴바지를 입고 뛰어보니 영 불편해서 반바지를 입고 뛰기로 했다. 폰과 에너지젤, 이어폰 케이스를 위해 허리 벨트 정도만 차고 가볍게 뛰어야지. 뭐, 열심히 뛰면 얼어 죽진 않겠지.
날이 추우면 문제가 제대로 몸을 풀지 않고 숨을 깊게 마시면 기관지가 얼어버린다. 천천히 몸을 풀고 기관지를 공기에 적응시키고 출발해야겠다.
와이프 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뭣하러 그런 고생을 돈 주고 하니? 차라리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찾아봐라.라고 하더라.
사실 맞는 말이다. 평일에는 매번 회사에서 일하느라 늦게 들어오는데, 마라톤 나간다고 훈련한다고 더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 혼자서 저길 간다고 새벽부터 나가서 점심때에야 들어올 테니.
그런데 40 넘어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나에게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뛰다 보니 체중도 많이 줄었고, 체력도 많이 늘었다. 군대 때만큼은 아니지만 운동 안 하고 일에 찌들어 살았던 30대 때 보다 지금 몸이 오히려 더 좋을 것 같다. 잘 준비해서, 다치지 말고, 즐겁게 뛰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