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고쳐야 합니다.
러닝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글의 지분을 보면, 더 다양한 종류가 있을 수 있지만 내 기억에 아래 3가지 유형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1. 마라톤 혹은 그날 러닝 인증글
2. 러닝화 및 러닝 용품 질문, 인증글
3. 러닝하고 어딘가 아픈 곳 성토글
괴수들의 러닝 인증 기록을 보면 난 언제나 저 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과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게 되고, 가끔은 초보의 러닝 인증을 보며 괜한 조언을 쓸까 말까 손가락이 근질근질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인증글을 올릴 수도 있지만, 그다지 특별하게 잘 뛰는 것도 특별히 관심이 필요할 정도로 못 뛰는 것도 아니기에 가끔 댓글 달고 좋아요만 눌러주고 있다.
사람들이 러닝이 돈이 덜 드는 취미라고 했지만 사람들의 지름글을 보면 괜히 저걸 사면 기록이 0.1초 정도라도 더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사실 러닝 용품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다. 티셔츠는 아웃렛에서 산 러닝 티셔츠나 마라톤 참가 사은품으로 받은 티셔츠 혹은 집에서 입는 장당 3천 원짜리 기능성 원단 무지 티셔츠를 입으면 충분하다.
러닝 벨트는, 집 근처에서 진행했던 걷기 이벤트에서 받았던 두 개에 택배비 포함 4천 원 수준인 러닝 벨트를 계속 쓰고 있다. 어차피 물은 급수대에서 마시면 되고, 폰이랑 이어폰만 집어넣으면 돼서 더 비싼 게 필요 없다. 그리고 5만 원을 왔다 갔다 하는 제품을 보면 굳이 저기에 돈을 써야 하나 싶은 생각에 괜한 마음을 정리한다.
그런데 문제는 신발이다. 지금 신고 있는 건 작년에 러닝을 처음 시작할 때 샀던 아웃렛에서 파는 흔하디 흔한 러닝화였는데, 물론 지금도 멀쩡하긴 한데 요새 카본화가 인기라 그게 또 궁금하다. 카본화를 신으면 기록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다가 10km만 넘으면 힘들어지는 내 비루한 체력을 보며, 카본화 탓하지 말고 훈련을 더하자며 애써 모른 척한다. 이 신발의 마일리지를 500km 채운 후에 생각해 봐야지.
1, 2번 외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글이 달리고 나서 어딘가 아프단 글이다. 한 때 도수치료가 실비 적용을 받을 수 있어서 인기 있을 때 정형외과가 정말 많이 생겼었다. 그 외에도 자동차 보험 때문에도 정형외과가 정말 잘 되었었는데, 도수치료의 실비 적용도 어려워지고, 교통사고도 한방병원과 파이를 나누면서 정형외과의 수입이 많이 줄었다고 하던데, 러닝 붐이 일어난 후 다시 환자가 늘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걷기 정도 하던 사람이 뛰기 시작하니 어딘가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할 터였다. 물론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처음 며칠은 괜찮았는데 거리를 늘리다 보니 무릎이 조금 뻐근했다. 그래서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무릎이 아픈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무릎 보호대 한번 해보세요."
"아, 어디 거가 좋아요?"
"저는 이거 쓰는데 확실히 덜 아파요!"
바이럴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알음알음 무릎 보호대는 초보 러너들에게 필수품이 되어갔다.
무릎 보호대를 살까 말까 하다가 어차피 할거 병원 가서 진료를 받아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사내에 있는 근골격 센터에 방문해 보았다. 거기에서 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무릎뼈는 뼈와 뼈 사이에 떠 있어요. 주변의 인대와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무릎뼈가 움직이고,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특정 관절 부분이 눌려 통증이 생기고 염증이 생길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무릎이 아프다고 무릎을 치료할게 아니고, 무릎을 아프게 한 인대와 근육을 바로 잡아줘야 합니다."
그래서 난 바로 되물었다.
"그럼 아플 때 보호대를 차면 도움이 될까요?"
"무릎 보호대는 무릎뼈의 위치를 잡아주는 것이지, 무릎뼈가 움직이게 된 원인을 고쳐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무릎 보호대를 하고, 기존의 습관대로 더 달리면 상태는 더 나빠질 거예요. 마라톤 선수들을 보세요. 무릎 보호대 하고 뛰는 사람들이 있나요?"
그렇다. 선수들 중 보호대하고 뛰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물리치료사 선생님께 열심히 치료받고 훈련한 끝에 불편했던 오른쪽 무릎은 더 이상 불편하지 않게 됐다.
만약 내가 그때 보호대를 사서 부적처럼 계속 차고 다녔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사이에 근육이 강화돼서 상태가 호전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제 젊은 친구들이 아닌 40대 중년이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중년 러너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프면, 커뮤니티에 물어보지 말고 병원에 가세요.
다행히 간단한 검사나 치료는 보험으로 가능하고, 도수치료까지는 아니지만 물리치료도 보험 적용받아서 저렴하게 받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다. 그래야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뛸 수 있다.
오른쪽 다리가 괜찮아졌더니 이젠 왼쪽 고관절이 문제다. 3km 정도 뛰다 보면 고관절이 아파온다. 이번에도 근골격 센터에 가봤더니 고관절과 연결된 허벅지 앞쪽 근육이 긴장된 것 같다고 한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고통을 참아가며 근육을 풀어줘야 할까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그래도 나아질 거란 기대가 있으니 또 참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