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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도전, 이제는 하프 마라톤이다 - 5

첫번째 하프 마라톤, 성공? 실패?

by 구르미

8월 말 호주에서 5km 마라톤을 참가할 때에만 해도, 가볍게 뛰고 오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고,

9월 말 집 근처에서 10km 마라톤을 참가할 때에도, 10km는 어렵지 않겠지였다.


올 초부터 일주일에 적어도 3일은 5~7km씩 달려왔었고, 10km는 간간히 달렸던 거리라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하프는 달랐다.

NRC 훈련 코스에 하프를 달리는 미션이 있었지만, 발목이 불편해서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더 짧은 거리에서 멈췄다. 최대로 달려본 게 발목 부상을 만들었던 커브드 트레드밀 15km였다. 그래서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과연 21km를 달릴 수 있을까?


마라톤 신청 후 3달간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다. NRC에 있던 인터벌, 템포런을 꾸준히 했고, 매달 150km 이상은 달렸다. 대회 전 2주일은 온도에 적응하려 매일 아침 야외에서 꾸준히 달렸다. 그렇게 마라톤 전날이 되었고, 주섬 주섬 옷과 필요한 물품을 챙겨봤다.

Marathon gear flat lay


일단 가장 먼저 걱정됐던 건, 서울 광화문이라는 출발 위치였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곳이었고, 그렇다는 건 저번 10km 마라톤처럼 집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후 바로 마라톤을 출발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란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장거리 달리기에서 부담되는 건 뱃속의 상태다. 뱃속이 만약 편안하지 않다면, 그건 정말 재앙일 테니까.


그런데 하필 그 전날 일산에서 하는 F&B 박람회였던 '메가쑈'에 다녀오면서 잡다한 음식 시식을 했고, 하필 전날 저녁에 먹은 게 삼겹살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닭가슴살이나 단백질 쉐이크 먹고 속을 비워두고 싶었는데, 가족들이 삼겹살을 먹는데 혼자 "미안, 난 내일 경기가 있어서 닭가슴살 먹을게."라고 하면 밥상 분위기를 망치는 것이기에 그냥 먹을 수밖에. 난 본업이 운동선수가 아니니까.


부담 때문인지, 삼겹살의 기름기 때문인지 새벽 3시쯤에 깼는데 뱃속이 계속 부글부글 거렸다. 억지로 조금 더 자다 깨다 5:20에 깨서 화장실을 시도했지만 영 성과가 없었다. 불안했다. 다행히 회사 동료가 차를 가져간다고 하여 같이 타고 가서 이동시간은 줄이긴 했는데, 흐름 따라 경기장에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나니 화장실 줄이 보였다. 길다. 심각하게 길다. 그때 함께 갔던 러닝 고수 회사 동료가 조언을 해주었다.

"주변에 건물 화장실을 가는 게 훨씬 쾌적하고 빨리 다녀올 수 있으니 혹시 화장실 가실 거면 그쪽을 찾아보세요." 그렇게 말하고 A조에 편성된 그 동료는 홀연히 출발라인으로 떠났다.


다행히 조금 떨어진 건물의 2층에 넉넉한 화장실이 있었고, 마음의 평온을 찾고 출발지로 향했다. 러닝 고수가 준 우의 덕분에 그나마 찬 바람을 막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엄청난 인파와 함께 출발.

언제나 마라톤의 처음은 길막 피하기 이다.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안정적인 페이스를 유지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나와의 싸움이다.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면서 가장 편하면서 느리지 않은 페이스로 달린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러닝머신이나 집 근처였다면 실내 혹은 익숙한 풍경의 연속인데, 마라톤은 새로운 풍경이란 점이다. 예전에 대학생 때 한창 토익 공부한다고 다니던 어학원, 술자리의 추억이 있던 종각, 카메라 산다고 기웃거리던 남대문 시장 카메라 상점들, 칼국수 먹던 광장시장, 노래로만 듣던 건대입구, 아이와 함께 갔던 어린이대공원, 한강을 바라보며 건너는 잠실대교, 항상 차가 많았던 롯데월드를 지나 도착지인 잠실운동장. 차로만 다녔던 그 길을 달린다는 것은 묘한 쾌감을 준다. 그래서 달리면서 그냥 웃었다. 웃으니 왠지 힘도 덜 든 것 같다. 특히 지하 차도를 지날 때는 다들 소리를 지르며 그 쾌감을 공유했다.


그렇게 주변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니 21km가 순식간에 끝나 있었다. 물론 중간에 힘든 시점도 있었지만, 도저히 못 가겠다. 멈춰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았다. 신기하게도 전체 페이스는 평소 훈련하던 페이스 대로 나왔고, 한 번도 크게 페이스 떨어진 것 없이 끝까지 완주했다. 최종 기록은 1시간 57분 4초. 과연 가능할까 싶었던 서브2를 첫 하프마라톤에서 달성했다.

남들이 말하는 특별한 대회뽕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평소 페이스대로 끝가지 밀고 갔던 게 뿌듯했다. 그간의 훈련 덕분에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 연재의 제목처럼, 젊어서 한 번도 제대로 달려본 적 없던 40대 아저씨가 과연 뛸 수 있을까 싶었었는데, 내 몸이 생각대로 따라와 준 게 참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그래도 아직은 쓸만한 몸인 것 같다.


다음 도전은, 풀 코스 완주다. 쉽진 않겠지만, 계속 훈련하다 보면 할 수 있겠지.


하프 마라톤 도전,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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