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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도전, 이제는 하프 마라톤이다 - 4

마라톤은 내가 메카닉, 드라이버, 감독인 F1 경기

by 구르미
출처: 나무위키 '피트' 검색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무서울 게 없었다. 준비 운동이라 해봤자 다리 들어 올리기 몇 번, 발목 돌리고 무릎 돌리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 끝이었다.

그렇게 5km를 쉬지 않고 달리고, 다음 주엔 7km를 달렸다. 주변에선 다들 무릎이 아프고 발목이 아프다던데, 나는 멀쩡했다. 마침 필라테스를 시작했을 때였어서 필라테스 덕분에 몸이 좋아졌구나 생각하며 정말 내가 달리기를 잘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달리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10km를 처음 달린 다음날, 오른쪽 무릎 바깥쪽이 걸을 때마다 당겼다. 근골격 클리닉에서는 “균형이 맞지 않아 한쪽 근육이 과도하게 수축되면서 인대가 무릎뼈를 밀어서 통증이 발생한 것”이라 했다. 다행히 주사를 맞을 수준은 아니고 근육 스트레칭을 통해 수축된 근육을 풀어주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처음 폼롤러나 마사지볼로 풀어줄 땐 엄청 아팠는데, 그게 아프지 않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날 이후로 스트레칭을 일상처럼 했다. 3주쯤 지나자 통증이 줄었고, ‘이제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10km 마라톤을 달리고 나니 이번엔 왼쪽 고관절이 문제가 생겼다. 왼쪽 고관절이 다리를 들어 올릴 때마다 뚝뚝 소리가 나고, 장거리 러닝 중엔 오른쪽 대비 유난히 빠르게 뻐근함이 찾아왔다. 달릴 수는 있었지만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두 달 만에 다시 병원에 가보니, “앞 허벅지 근육이 뒷 근육 대비 긴장돼 수축하면서 골반을 앞으로 당겨서 균형이 틀어졌다”는 진단이었다.

햄스트링과 둔근이 제 역할을 못하니, 앞 허벅지 근육이 보상하듯 과도하게 긴장되어 골반이 앞으로 밀려났고 그래서 다리를 들 때 근육이나 인대가 뼈에 걸리는 것이었다.


고관절은 3주간 치료를 받았지만 첫 번째 치료받았던 오른쪽 무릎처럼 완전히 낫지 않았고, 장기간 지루한 재활이 이어졌다. 점점 나의 훈련은 '달리기' 보다는 '정비'의 비중이 더 많아졌다.


달리기 전에는 반드시 폼롤러로 20분간 근골격 클리닉에서 배운 대로 근육을 풀어주고, 뛰다가 통증이 느껴지면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고 다시 근육을 풀어줬다. 달리기를 끝낸 후에도 당연히 20분간 동일하게 근육을 풀어줬다. 그리고 근육의 균형을 위해 항상 햄스트링과 둔근 강화를 위한 보조 근력 훈련을 했다. 그렇게 한 달 반쯤 지나자 고관절의 소리도 사라지고, 왼쪽의 피로감도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한결 덜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즈음에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커브드 트레드밀에서 15km를 달린 후, 발목을 과도하게 들어 올린 탓에 염증이 생긴 것이다. 이번에는 평소에도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있었기에 근골격이 아닌 정형외과를 방문했고, 복숭아뼈 쪽 인대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는 소견을 받았다. 소염진통제 처방과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썩 나아지진 않았다. 운동을 쉬라고는 했지만, 마라톤을 3주 앞둔 상황이라 완전히 쉬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나마 염증이기에 혈류량이 늘면 통증이 줄어들어서 플랭크나 다른 전신 운동을 통해 몸의 온도와 혈류를 늘려 통증을 줄인 다음에 발목을 늘리는 스트레칭을 했다. 아프지만 참고 늘려준 후 느린 속도로 조금씩 걷다 뛰다 했다. 그렇게 2주쯤 지나고 통증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젠 걸을 때 크게 불편하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달리다 보니 달리기는 단순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달리기 전에 몸의 각 부위를 점검하고, 달리는 동안에도 계속 모니터링한다.

오른 무릎의 통증은 어떤가. 오른 발목의 각도는 괜찮은가. 보폭은 너무 길지 않은가. 왼쪽 고관절이 다시 뻣뻣해지진 않았는가. 숨은 깊게 잘 쉬고 있는가. 팔을 과도하게 흔들진 않는가..

이 모든 걸 실시간으로 점검하느라 처음에 자주 들었던 오디오북은 듣는 여유는 상상하기 힘들다. 달리는 동안에 해야 할게, 생각해야 할 게 아주 많으니.


어느 날 문득, 달리기가 F1 경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동안 나는 드라이버다. 하지만 동시에 내 몸을 정비하는 메카닉이고, 전체 전략을 짜는 감독이기도 하다.

피로를 느끼는 근육은 엔진 소음 같고, 잘못된 자세는 타이어가 닳는 징후처럼 느껴진다.

내가 나를 정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엔진을 달고 있어도 완주할 수 없다.


이번 주에 있을 마라톤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는 내 차를 꾸준히 점검하고 다듬어왔다.

결승선에 다다를 때, 내 안의 메카닉과 드라이버, 그리고 감독이 함께 환호하길 바란다.

오늘도 그 엔진을 예열하며, 나는 나를 운전한다. 부디 대회에서 리타이어는 하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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