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앓아온지 10년하고도 몇년이 흘렀습니다.
참 많은 실수를 해왔습니다. 제 감정이 우선이었던 시절도 있었고, 그래서 떠나보낸 인연들도 적지 않습니다.
온전히 혼자가 된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온전히 남이 되어볼 수 없듯이, 남들도 온전히 내가 되어볼 수 없기에 이해를 바라는 일은 애초부터 잘못된 바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 다 몰라도 알아주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그걸로 살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아프다는 걸 주위 사람들은 알기에, 본인이 힘들 때면 저를 찾아오곤 합니다. '알아줄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알고싶지 않았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슬프게도 제가 다 겪어본 감정들입니다. 알아주는 사람 한 사람. 그 역할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저를 알아주는 사람은 찾지 못 했으나, 그래서 근본적인 고립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렇게 글을 써봄으로써 제가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이 저를 이해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싶습니다. 당신과 내가 서로의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준다면, 그거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브런치 작가 3번째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싶었던 걸 먹음으로써 잠깐이나마 괜찮아지는 우울감 정도면 참 좋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은 당신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서, 입니다. 그럼으로써 당신과 내가 우리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이제는 제가 스스로를 돌아볼 때 더이상 연민이나 혐오따위는 없습니다. 그 과정을 겪어온 시절이 분명 있었고, 후회하고 있지만 후회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기에 지금 주어진 상황 속에서 중증 우울증 환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싶고, 그 누군가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우리끼리의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안녕에 감사하고 안심하는 것. 우리가 서로에게 내밀 수 있는 온기라고 생각해요.
아프지 않은 누군가들의 일상을 흉내내보려 노력한 기간이 길었습니다. 공부를 했습니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직업이 필요했으니까요. 3년간 고시원 생활을 하며 학업에 열중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2018년 어느 날의 일기가 말해요. “5평 남짓한 방 안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면 점점 내려와 나를 짓눌러 죽일지도 모른다”라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직을 해봅니다. 그러면서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흉내내봅니다. 편하지 않다고 아우성치는 마음을 모른 체했습니다. 방법을 찾게된 줄 알고선 자신감이 생길 정도였어요. 모른 척하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정말로 모르게 될 거란 기대가 있었거든요. 매일을 게워냈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어 생각에 생각을 해본 후 나의 결론은 ‘소모하는 에너지가 과다하다’였습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아프지 않아야 했기에 ‘척’을 하는 데에 쓰이는 에너지가 과했던 거예요.
그 기간은 저를 더 병들게 했고, 흉내내는 행위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저의 처절한 시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됩니다. 저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고, 글을 써봄으로써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저를 보고 답을 찾아나가보려 합니다. 그 과정을 여러분들이 지켜봐주시고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적어봅니다.
중증 우울증을 앓는 친구분들의 생각을 묻고싶어요.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걸 우울증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길을 잃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것조차 자신이 없던 2016년도의 나는 여전합니다. 이 사실은 끔찍합니다.
수년을 앓았고, 버텼고, 알 것 같다가도 결국엔 모르겠는, 지금 글을 쓰는 이 시점.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버팀의 종착지가 자살이나 또다른 버팀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보는 것.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 할 우울증이란 패널티를 가지고 버팀이 아닌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같이 찾아가요. 헤매고, 방황하면서 스치듯 지나가듯 찰나의 온전한 생각이 있다면 공유를 하고,
버팀의 종착지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지독하게 앓아왔던 나와 당신을 돌아보고
안아주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해요.
2023.08.20 다를 바 없는 우울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