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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 Aug 21. 2023

버팀에서 삶으로

두어번의 자살시도가 있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저의 자살시도에는 늘 안전장치가 있었어요. 실패할 걸 가정하고 시도를 했던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해보면 저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아픈 걸 안고서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렇게 살기 싫었던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나마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게 하나 있다면, 제 몸에 새겨진 타투 중 '811' 이라는 숫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새겼죠. 두어번의 자살시도가 (예상대로)실패했고, 다시 살아가볼 수 있는 용기를 준 두 명의 숫자를 새겼습니다. 한 명은 가족이고, 한 명은 이미 떠나고 없는 사람입니다. 숫자로나마 그 사람의 흔적을 새겨놓은 것에 감사합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도망갈래?”


근데 어디에서부터 도망을 가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그렇게 싫어하던 세상에서부터 도망쳐 나왔는데 여전히 도망을 가고 싶어요.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버텨내는 이들에게 더이상 버팀이 아닌 삶을 살아내자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먼저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제가 버티는 게 아닌 삶을 살아나가야 할 말이 생기고,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이 생기는데


여전히

입을 열지 못 하겠습니다.





바로 어제 바다를 보고 왔다는 사실도 자고일어나면 기억을 하지 못 합니다. 약 남용으로 인해 손저림과 전신경련증상이 있고, 어딜 가나 입원 권유를 받으나 금전적인 문제로 입원을 하지 못 하고 있어요. 바로 어제가 깜깜하고 내일은 더 깜깜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글을 적는 방법도,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께 닿을까 싶어 글을 적어봅니다. 


우울감과 함께 살아오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우울증은 사고회로를 건드리는 질병입니다. 내 판단력이 흐릿해졌음을 인정하고, 내 생각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생각이었음을 인정하는 데에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제 생각이 맞는 줄 알고, 그나마의 살아갈 만한 원동력을 찾기 위해 도파민을 좇아보기도 했고, 의미 없는 사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다 틀린 생각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난 다음엔 저는 갈 길을 잃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저는 점점 고립되어감을 느꼈어요.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가려 수학공식 외우듯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드는 생각은 ‘세상사람 아무도 몰라줘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있으면 숨 쉴 것 같다.' 입니다. 여전히 숨쉬는 것도 버거워 어떨 때는 숨을 의식해서 쉬다가 토하듯이 울음을 뱉어내곤 합니다. 


버팀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늘 생각해왔습니다. 일상을 살아나가는 게 아니라 아등바등 버티고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제 일기장엔 온통 버팀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있고, 버팀의 종착지는 아마 자살이 아닐까. 그렇다면 버팀을 이어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앓아왔습니다. 


태어남을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마무리 정도는 제 뜻으로 정할 수 있기를 바라요. 처음에는 그 마무리가 자살이었고, 그게 답이 아님을 스스로 찾고 난 다음엔 어떻게든 버티는 것 이었습니다. 


버팀과 살아감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해있습니다. 우울이라는 짐을 혼자 감당하기에 벅차 늘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어요. 그 자체가 잘못인 줄도 모르고요. 저의 잘못에 대한 대가인지 지금은 온전히 혼자가 되었습니다. 철저히 혼자가 된 지금, 버팀에서 삶으로 바뀌어나가고자 합니다. 


이 글이 당신에게 가 닿아 인연으로 이어지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만의 텐션으로 바다를 보면서 오늘도 역시 우울한 하루였다,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랍니다. 세상에 미련이 없다면 서로가 서로의 미련이 되어주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은 이겨내지 못 하더라도, 적어도 의연해질 수 있게 되어 누군가에게 숨 쉴 수 있는, 알아주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저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무사히 닿았다면 응답을 해주세요. 





어느새 8월입니다. 습관적으로 7월이라 적다 수정했습니다. 영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영원따윈 없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마무리를 지으려는 친구들이 저에게만큼은 영원히 있어주는 존재이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보았습니다 제 멋대로요. ‘내가 기억하면 적어도 나한텐 영원인 거야.’ 그렇게 떠나보낸 친구들은 적어도 저에겐 영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떠나려는 친구들에게 해 줄 말은 없었습니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편안히 가세요.



2023.08 같이 도망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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