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첫사랑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우울증 치료를 하면서 저에게 근본적인 구원은 사랑이라 믿었습니다.
n년이 흘러 30대를 앞두고 있는 지금 지난 20대를 돌아보자면 사랑을 주고받던 시간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결국 저의 구원은 사랑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같이 죽고싶은 사랑도 해봤고, 그 누구보다 세상을 살고싶어지는 사랑도 해보았습니다. 그 누구도 저에겐 구원자가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씩 메세지를 남겨주고 가긴 했습니다. 지금도 부적처럼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 딱 한 번 쓸 수 있는 찬스처럼 아껴두고 있는 느낌이에요. 사랑에게서, 타인에게서 구원을 찾지 말라는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어요.
"사랑은 대상이 변할 뿐 인간은 쉬지않고 사랑을 해. 그런 사랑이 구원이라는 게 너무나도 말이 되는데?"
전달되지 못 할 말이지만 그래도 적어본다면 역시나 '보고싶다' 입니다. 보고싶어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그리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 사람과 남이 된 순간부터 그리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원망하던 때가 있었어요. 하수구에 사는 쥐새끼였는데 괜히 햇빛을 봐버려서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말이죠. 차라리 몰랐을 때면 적당히 불행하게 지냈을 것 같은데 알게돼버려서 더 괴로운 거 있죠?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 빛에 이끌렸고, 저도 가져보고 싶었어요. 흉내내보려 해봤지만 잘 안 되더라구요. 그사람이 보여준 희망과 몰랐던 세상이 괴롭지만 동시에 다시 보고싶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 울었던 흔적을 들킨 순간이 많았어요. 그걸 죽도록 미안해하곤 했습니다. 내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것들을 같이 안게 한 것 같아서. “나는 분명 너를 웃게하고 집에 보냈는데, 내일이면 죽어버릴 것 같아.” 라는 그사람의 말에 처음으로 제가 먼저 이별을 말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옆에 있으면 안 되겠다. 너의 빛이 조금이라도 희미해진다면, 그게 나 때문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제 사고의 흐름은 이랬어요. 혹여나 조금이라도 저에게 물들까 봐 무서웠는데 정말 그런 말을 들어버리니깐 옆에서 사라져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사람을 사랑하면서 동경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제 사랑은 안전하고 무해하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것만으론 그 사람 성에 차지 않았나봅니다.
같이 죽고싶어지게 만들었던 첫 번째 메세지.
-진아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따라 죽을 거야. 살 이유가 없어졌잖아.
-그럼 죽고 싶을 때면 죽어죠! 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한 약속은 말야. 그때는 다시 사랑을 고백하기 전도 시작하기 전도 아니었을 약속이야. 지킬게. 흉터 하나 내지 말고 가 네 옆에 있지 못했던 순간들 중 가장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날 그래서 내가 별로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던 날이 그 날이야 너 흉지는 건 내가 너네 집 햄스터여도 싫어
세상을 같이 살고싶어지게 만들었던 두 번째 메세지.
'가족이 되어주겠다'던 그 사람의 말을 아직 붙들고 지냅니다. 언젠가 다시 마주치게 되는 날이 오면 나에게도 희미할지라도 빛이 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살아나가려 합니다.
사랑을 구원 혹은 도피처라 믿었던 저에게 잠시 구원이 될 뻔 했던 사람이 이렇게 둘입니다. 그 때의 기억이 흐릿해지기라도 할까 봐 틈만나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을 찾아보고, 같이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회상하곤 합니다. 그 시간이 저에겐 거의 유일하게 웃음을 안겨주는 순간입니다. 고집이겠죠?
제가 강력히 고집했던 '사랑은 구원이다'에 대해 의문점이 들다보니 저의 고집들에 대한 자신감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소소한 행복을 어디서 찾아야 될 지 길을 잃은 상태고, 이것도 모르겠고 저것도 모르겠는 나날들의 연속이라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저만의 방향성을 어쩌다가 찾게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궁금해할 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감사히도 브런치 작가로 승인이 났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2023.08. 수면제에 취한 상태로 써내려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