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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 Sep 20. 2023

건강하지 못 해서 죄송합니다

의사선생님과 상의없이 먹던 약을 2개월정도 끊었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 일주일정도는 금단현상이 바로 올라왔지만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었어요. 하늘을 보면, 풀밭을 보면 기분이, 감흥이 느껴졌거든요.


항우울제를 복용한 지 9년째입니다. 저에게 항우울제는 정답이었을까요? 아무런 기분도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일상은 지루하다 못해 견디기가 버겁습니다. 그렇다고 먹지 않았다면 우울감을 또 견뎌내기 힘들어했겠죠. 이러나 저러나 버티는 것에 가깝습니다. 지금 심정으로는, 지독하게 우울을 앓아도 좋으니 잠깐씩이나마 기쁨과 순간의 행복 등을 느끼고 싶어요. 오늘 병원에서 한 대화예요.


첫번째.

-항우울제의 가장 큰 부작용이 뭔지 아세요?

-어떤 기분도 못 느끼는 거요..?

-그럼 어때요?

-우울하죠. 좌절스럽구요.

-그게 위험하다는 거예요.



두번째.

-선생님 제가 혼자 있을 때 밀려드는 우울감을 치료하고 싶어요.

-ㅇㅇ씨에게 고용량도, 섞어서도, 여러가지 약을 처방해보기도 했는데, 약이 통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없어요.

-그럼 제가 그 우울감을 못 견뎌서 죽으면 어쩌죠?

-입원해야죠

-입원할 형편이 안 돼요

-그럼 견디셔야죠


의사선생님마저 버티고 견디는 삶을 권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저는 삶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사람인가봅니다.



다른 얘기입니다.


아버지가 제가 되었다가, 다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내가 당신이 되어보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꿈이었기에 가능했겠죠.


다시 아버지가 된 순간 아버지가 느끼시는 죄책감과 우울감, 절망감 따위의 감정들이 오롯 느껴집니다. 꿈에서의 아버지는 자살을 택하셨습니다. 버팀에서 삶으로 나아보고자 하는 이 시점에서는 견디기가 곤란한 감정이라 잠시 도피해보고자 합니다.



수면제를 먹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더이상의 삭힘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꺼내어놓고,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고, 제법 놀란 마음을 스스로 달래주어야 합니다. 상담선생님에게 메세지를 보내어놓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이 감정은 도대체 뭔가요?”


영양제는 아니고 링거정도 되는 것 같아요. 딱 지금처럼 도피하고 싶을 때 꺼내보는 대화가 있습니다.


“너는 진짜 잘 컸다. 스물 다섯의 너도 그랬지만 스물일곱의 너는 더 말을 곱게 한다? 참 신기한 사람이야. 오늘 비가 올까? 라고 물어보면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비가 오길 바라지 않는다면 같이 바래줄게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깐 우산은 챙길까? 이렇게 대답을 해.“


“의지가 없으면 이거 몰라 저거 몰라 할 때 방향을 알려줘도 안 찾아가는데 너는 의지가 있잖아 대단하다 너는 곧 행복해지겠다”


“이사람은 대체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끝나고 나서야 확신이 되었어”




‘아, 나 이렇게 응원과 사랑을 받았었지’


기분을 잠깐 다른 데로 옮겨 괜찮아 해봅니다. 이런 저는 아직도 살아내는 척 과거에 고여있는 걸까요?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앗아간 것에 초점을 두기보단 남기고 간 것들에 초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말을 빌려 힘을 얻어봅니다.




잠깐이라도 괜찮았으니, 다시 용기를 내어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도망친 지 십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몸만 도망쳤을 뿐 마음은 쉽사리 떠날 수가 없었는데, 요 며칠 들어 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짙어집니다. 지금도 혼자인 제가 더욱 혼자가 되고 싶어집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 할 일에 대하여 부모님이 대신 용서를 한 것에 화가 치밀어올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화가 치밀어오르기보단 역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웠어요.


“너는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는데 뭘 그리 헤매고 아파하니”


대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서로에게 가시가 되어 닿을 걸 알았고, 무슨 이야기를 꺼내놓아도 이해받지 못 할 얘기임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이해받지 못 할 것들 투성이입니다. 이해를 바라는 건 아니에요. 가족들을 포함한 타인이 제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다만 가족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저에게 거신 기대가 크셨을 텐데, 아파서 죄송합니다” 입니다.



역시 다른 얘기입니다.


자동차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립니다.

다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나요?

어디로 향하고 계신가요?

어떤 목적을 향해 가시나요?


커피한잔을 들고 담배를 피우면서 자동차 소리를 듣고 있으면 겸연쩍습니다. 나는 이렇게 고여있고, 맘춰있는데 다들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요.


간만에 하늘이 맑아요. 커피는 얼음이 녹아가고 저는 여전히 머쓱한 상태입니다.


팔에 새겨져있는 ‘811’을 찾아서 가만히 보기만 하는 순간들이 잦아졌습니다. 살기 위해서예요.

지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는데, 근 두어달 제법 바쁘게, 건강한 척하며 지내봤습니다. 지칠 때가 되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또 반복이 될까 지레 겁을 먹게 되네요.



제가 가끔씩 보는 우울증 관련 커뮤니티가 있어요.

왜살지, 공허하다, 언제까지 버텨야되지, 죽는것도 어렵다, 잘자고싶다, 매일 운다, ...

저까지 우울해지진 않아요.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요. 우리 같이 살아내보자고.

근데, 제가 입을 열 수 있는 상태인가요? 저는 아직도 지독하게 헤매고 있는데 말이에요.



2023.09. 제가 온전히 건강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 또한 자기연민의 일부분 같아서 스스로에게 또 한 번 실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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