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람을 만났어요.
아 제가 말하는 사람이라는 건 제가 내켜서 만나는 사람이요. 마음이 내켜서 만났고, 즐거워서 웃은 게 대충 4개월만인 것 같아요. 대화의 주제는 유쾌하지 않았지만 풀어내고 듣는 과정 중에 숨 쉴 것 같았어요. 몇시간의 대화로 그 사람의 하루을 감히 판단할 순 없기에, 그저 좋은 하루가 되었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저는 오늘 편안하게 잠들지 못하더라도 좋은 하루로 마무리되었다고 일기를 써봅니다.
친구가 어떤 안약을 넣어주는데 아프게 느껴질 만큼 화한 거예요. 나머지 한쪽 눈 넣기 싫다며 몸부림을 치고 한참을 그렇게 장난치다가
-너 앞으로 자해하고 싶을 때마다 이거 넣어. 내가 네 옆에 없는 날이 오더라도 이건 기억해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
안약은 조금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걸 다 써버리면 그 친구의 기억이 희미해질까봐서 입니다.
-진아 너를 약하게 키워서, 덜 키워서 미안해
무슨 말인가 잊을 만하면 생각이 나고 오늘도 여느 때처럼 생각이 나서 곱씹어보다가 조금은 알 것 같아 기록해봅니다. 방황하고 헤매고 다른 길로 갔다가 버티기도 했다가 이제서야 살아감을 말해보려는 지금 이 시점, 지난날의 저는 얼마나 온실 속 화초였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마음들을 빌려 지내왔어요. 같이 아파해주던 마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게해주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어렴풋이 기억나는 대사가 있어요. 넘어진 어린아이는 안아줄 엄마가 있기에 울 수 있는 거라고. 궁금한 걸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 있었기에 늘 물음표를 달고 살았고, 안아주든 채찍질을 하든 신경써주는 마음들이 있었기에 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늘 나를 알아주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껏 아플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게 그 때의 너는 왜 그렇게 나를 알아주고 다 괜찮다고 해줬을까. 왜 내가 결핍에 발을 절 때마다 채워넣어줬을까. 뒤늦게 심술 섞인 네 탓을 해보아도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10여년동안 외면하며 지내왔다면, 이제는 그 누구의 어떠한 마음도 빌리지 않고 혼자 일어서야 할 때예요. 혼자 아픔을 마주하기까지 이나만큼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보편적인 사회의 시선에서 봤을 때 많이 느린 저이지만 결국은 혼자 길을 잃지 않고 서있을 수 있는 날이 올 테니 괜찮다고 다독여 봅니다.
저희집엔 실외베란다가 있어요. 상담선생님도, 병원에서도 저에게 유기공포가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가 되어서 내 인생을 산다면 다른 모습일까?
-진아 네 병은 네가 키운 걸지도 몰라
그게 실제로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느낀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베란다 위를 올라 정성스럽게 쿠션을 깔고 걸터앉았습니다. 연락처를 정리하고, 밑을 쳐다보기를 한 시간 정도. 그러다 비가 와서 내려왔어요. 저희집은 4층입니다. 고층이었다면 제가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이번엔 정말 괜찮은 줄 알았던 만큼 넘어지는 것에 타격을 많이 입은 것 같아요.
다시 일어나보겠습니다 !
2023.09.26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