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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 Oct 17. 2023

생명에의 애착

생명에의 애착을 늘 안전장치처럼 가지고 살았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안심이 되었고, 넘어지려 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해줬지요.


얼마 전 베란다에 가만 걸터앉아 아래를 보며 지워야 할 흔적들을 생각해보다가 내려와 강아지를 마주한 순간 아.


데려왔을 때의 마음을 되새겨보았습니다.



그 때 저는 살아있어야만 했어요. 언제든 충동이 이겨버려 없어져버릴까 무서웠던 저는 충동을 이길 사랑이 있어야만 살 것 같았어요. 누구든 붙잡고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을 안고 저는 보호소에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데려오는 마음이 오롯 저를 위한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드는 걸 애써 모른 체하며, 사랑이 많아보이는 아이를 데려왔어요. 데리고와서 같이 살아보니 세상 독립적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아이더라구요. 처음 본 날 그렇게 저에게 애교를 부리던 모습은 없었어요. 어쩌면 자기를 데려가달라는 신호였나, 싶은 생각에 안쓰러워 괜히 한 번 더 만져주고 눈 마주쳐봅니다. 제가 풀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릴 적 처음 같이 지냈던 반려견의 이름을 그대로 주고싶어 ‘김풀’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렇게 같이 지낸 지 6개월정도가 되어가요. ‘내가 살려고 데려온 아이‘라는 마음 속 타이틀엔 아직도 죄책감이 깃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더 강아지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보곤 한답니다.



며칠 전, 산책 중에 넘어지면서 줄을 놓쳐버렸어요. 강아지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는지 저멀리 도망가더러구요. 무슨 정신으로 잡았는지 기억은 안 나고, 집에 와서 가만가만 앉혀놓고 어리둥절한 강아지에겐 조금은 어려울 말들을 중얼중얼. 내가 너랑 어떤 마음에서 함께하기 시작했는데 왜 몰라주냐며 다그쳤습니다. 멀리 도망만 가던 강아지가 순간 너무너무 원망스러웠거든요. 삶에 대한 미련 즉, 애착가는 생명, 내 강아지가 없어져버렸으면 제가 어떤 미련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아찔한 하루였습니다.




생명에의 애착을 사람에게서 찾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어하던 저는 그 사람에게 저의 흔적을 쉴새없이 남겨놓곤 했습니다. 그 때 들었던 의문은 내가 정말 없어지고 싶은 게 맞는 걸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도 절박하게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저를 새기는 행위는 그 사람에게, 그리고 저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사람에게선 애착을 찾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이 또한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잠에서 깼을 때 궁둥이를 붙이고 자고 있는 강아지를 보는 것. 눈을 마주할 때 웃으면 꼬리를 흔들어주는 강아지가 있다는 것. 어디에서 다치고 들어와 울고 있으면 아는지 모르는지 몸을 핥아주는 풀이가 있다는 사실이면 충분합니다. 저는 풀이에게 무엇을 안겨줄 수 있을까요. 이왕이면 대단한 행복 같은 거면 좋겠는데요.


2023.10.13 사랑해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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