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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정 Oct 10. 2023

우울해서하는사랑과 우울해도하는사랑

-너 사랑 꽤 잘 해. 너 음 제법 사랑 받을만 해

제가 겪어본 사람 중 가장 사랑을 잘 하던 사람에게서 받은 연락이 생각나요. 뭔데 나를 평가하냐며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이 저에겐 닿아서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어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제 소식을 자꾸만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요 그 누구와 서로 모르는 사이여도 괜찮을 것 같아요. 사실 전해드릴 소식 같은 건 없고, 제법 쓸모 좋은 핑계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경산이 싫었던 적은 잘 없는데, 집에 오는 길에 시끌벅적한 아이들을 피해다니느라 애쓰다가 진이 조금 빠졌습니다. 경산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살게될까 문득 궁금해졌어요. 서울과는 맞지 않고, 그렇다고 또 적당한 도시 분위기 나는 대구 부산도 아닐 것 같고. 제주도에 대한 로망은 딱히 없어서 그것도 아닐 것 같고. 어디 나무가 잘 보이는 주택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아하던 레코드바와 카페들에 이제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입장도 채 하지 못 하게 됐어요. 한 번 사랑하면 끝까지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질리지 않는 노래들과 가게들과 사람 같은.  늘 여전한 제가 고여있는 건지 한결같은 건지 아직 답을 찾진 못 했어요. 아무래도 전자 쪽에 무게가 조금 더 들어간 듯합니다. 스물넷 혹은 스물여덟 정도. 똑같은 자리에 머물고 싶어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니깐, 저 혼자 멈춰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지내요.


써내려가다 어라 싶은 부분이 있어요. 대구에 살다가도, 부산에 살다가도, 어디 오래 살다가도 결국엔 또 경산인, 경산이 좋은 이유는 한결같아서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나이를 먹지만 경산엔 늘 대학생들이 가득하니깐. 늘 거기서 거기인 풍경이니까요.




정을 그렇게나 잘 주면서 정작 사람이 싫어 죽겠는, 그러다가도 제 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오는 저는 또 도대체 어느 쪽일까 생각을 해봤어요. 알 것 같다가 모르겠다가 조금은 명확해진 게 있는데, 괜히 알아버렸나 싶습니다.  진심을 다 해 주변을 살피곤 합니다만, 늘 걱정을 듣는 쪽은 저입니다. 그 걱정들이 미안해서 잘 지내보려 무던히도 노력을 하던 중에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마음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의 허탈함이란요.



우울증을 오래 깊이 앓은 저의 사고회로가 고장났음을 인정하고 저보다 조금 더 오래 산,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조금 더 멋져보이는 사람들의 얘기들에 귀를 기울였던 저입니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사람을 쉽게 믿지 마” 입니다.


사람을 조금 쉽게 믿고 마음을 줘도 되는 세상같은 건 없겠지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은 관계 또한 없겠지요. 어딘가엔 그런 세상과 관계가 있기를 아직도 바라는 저는 어디까지 고립이 될 지 모르겠어요. 무해한 바람과 사랑이 비슷한 마음을 만나 같이 서있을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울해서 하는 사랑과 우울해도 하는 사랑. 전자의 사랑도, 후자의 사랑도 해봤어요. 수많은 전자의 사랑과 단 한 번의 후자의 사랑이 싸워 누가 이기는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선택해서 사랑할 수 있다면 가장 무해한 마음을 택할 것 같아요. 그럴 수 없으니 맞닿는 마음이 저의 것과 비슷한 마음이길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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