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베를린으로 가다.
베를린으로 가기로 했다.
그전부터 베를린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베를린으로 가는 직항이 없다. 뮌헨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해야 한다. 독일항공인 루프트한자 노선에도 인천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직항노선이 없다. 그전부터 베를린에 브란덴부르크 공항이 개항하면 직항이 생긴다는 소문이 있어 약간 기대를 하고 기다렸다. 직항을 고집하는 이유는 목발을 짚거나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환승하는 과정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가져가면 수하물로 부쳐야 하는데 환승하는 경우 환승하는 비행기에 제대로 옮겨질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 브란덴부르크 공항이 개항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노선을 알아보니 아직 베를린 직항이 없었다. 이제 언제 직항이 생길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베를린으로 갈 궁리를 했다.
베를린이라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동독과 서독을 나누었던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고 통일 독일의 수도이다. 그만큼 역사적인 볼거리가 많을 거라는 기대를 하였고 특히 박물관 섬이라는 곳에 구미가 당겼다. 베를린에는 박물관이 많이 있는데 박물관이 밀집되어 있는 작은 섬을 박물관 섬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구미가 당기는 것은 베를린 필하모니. 우리가 듣고 있는 상당수의 음반이 베를린 필하모니의 녹음이고 유명한 지휘자 카라얀이 오랫동안 지휘자로 있었던 악단이기로 하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 실황을 베를린 필하모니 음악당의 음향 시설로 들어보고 싶었다. 한국의 예술의 전당과 비교하여 얼마나 음향시설이 잘 되어있는지 느껴보고도 싶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번 목표는 베를린으로 정했다. 이번에는 전동휠체어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일전에 뮌헨에 갈 때 독일항공 루프트한자 측에서 전동휠체어 밧데리에 대한 안전 문제로 까다롭게 구는 바람에 결국 전동휠체어를 가져가지 못하고 목발을 짚고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뮌헨에서 돌아다니는 게 힘들어 겉모습만 보고 돌아온 곳도 있었다. 이번 여행에는 이런 문제에 비교적 까다롭지 않은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하기로 했다.
베를린으로 바로가지 못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을 해야 하므로 이참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며칠 머무르기로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데는 독일고속기차(ICE)를 이용해야 한다. 한국으로 말하면 KTX. 그런데 전동휠체어를 가지고 기차에 승차하기 위하여 독일 철도청으로부터 리프트(전동휠체어를 기차에 올려주는 기계) 서비스 신청을 미리 해야 했다. 이 신청을 하는 방법을 여기저기에 문의해서 방법을 알아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ICE표를 인터넷에서 구한 다음 이를 파일로 첨부하여 독일철도청(DB, Deuch Bahn) 모빌리티 서비스 센터(MSZ)에 신청해야 한다. 그러면 독일철도청에서 이를 확인하고 확인메일을 주는 방식이었다. 독일 철도청에서는 독일 전역의 장애인 서비스를 총괄하는 모빌리티 서비스 센터(MSZ)를 두고 있다. 이곳에 전화나 메일로 신청하게 되어 있는데 전화를 하면 자동응답기로 독일어가 나오는데 독일어가 유창하지 않으면 통화가 어렵다. 나는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진행을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지라 제대로 될까 하나하나 세심하게 준비하였고 독일철도청에서 이에 대응하는 것이 철저하고 완벽하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독일철도청 리프트 이용 방법에 대하여 참고가 되고자 이를 약간 자세히 설명하자면 독일 ICE는 1등석과 2등석이 있는데 휠체어로 탑승할 수 있는 좌석은 2등석에 있었다. 2등석 객차 중에 휠체어 좌석이 비치되어 있는 객차가 별도로 있었는데 객차의 전체 좌석 중 일부 앞 좌석 4개 정도가 휠체어좌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휠체어좌석은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그냥 승차할 수도 있고, 좌석으로 옮겨 앉을 수도 있었다. 좌석 앞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었고 간이 테이블도 있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2등석 좌석표를 끊고 티켓을 PDF 파일로 첨부하여 독일철도청 모빌리티 서비스 센터에 신청하면 일반석을 휠체어좌석으로 바꾸어(새로운 좌석이 지정된다) 새로 티켓을 만들어 보내주었다. 이때 가져가는 휠체어 무게, 휠체어 종류, 동행인 여부, 수화물의 무게 등 세부적인 내용을 적어 독일철도청측으로 보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직접 모빌러티센터와 전화로 할 수 있지만 전화를 하면 처음 독일말로 자동응답기기로 대응되기 때문에 유창한 독일어 능력이 아니면 어렵다. 모든 과정을 메일로 주고받으며 절차를 진행했다.
독일 고속열차 ICE 객차의 형태
나는 4회분의 휠체어서비스 신청을 해야 했다. 처음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기차,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기차, 마지막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공항까지 가는 기차.
나는 메일로 신청을 하고 확답을 받았음에도 실제로 착오 없이 진행될지 불안하였다. 그렇게 먼 나라 담당직원과 메일로만 주고받았는데 착오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 데 리프트 담당 직원이 제시간에 맞추어 오지 않으면 기차는 그냥 떠나버릴 텐데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다행히 독일철도청의 업무처리는 빈틈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