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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구름 속을 거닐고 싶다.

휠체어여행을 궁리하다

by andre

휠체어를 타고 혼자 독일 여행을 간다고? 동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휠체어여행을 궁리했다.


열몇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피곤한 몸으로 유럽의 어느 공항에 도착하면 여기저기서 들리는 알 수 없는 왁자지껄한 말소리, 콧속을 파고드는 독한 향수 냄새, 큼지막한 캐리어를 끌고 바쁘게 오가는 낯선 모습의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그제야 다른 세상에 왔음을 실감하며 공항 출국장을 빠져나와 파란 유럽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곳, 나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그런 느낌을 좋아했다. 가끔 예측하지 못한 일이 생겨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는 그런 딴 세상으로 가보는 것을 좋아했다.


현실의 삶이 고단하고 답답할 때 비행기를 타고 창밖의 구름을 보면서 마치 천상의 세계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게 되면 무언가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렇게 하면 내 머릿속을 답답하게 했던 현실 속의 온갖 고민이나 어두운 기억들이 정리되는 듯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를 예방하려면 머릿속에 쌓이는 단백질을 청소해야 하듯이 내가 이 땅에서 온전하게 존재하려면 내 머릿속의 어두운 기억들, 우울한 감정, 억압된 감정 들을 가끔 세척해야 했다. 이러한 세척방법 중 하나가 멀리 가서 새로운 세상에 빠져보는 일이다. 물론 돈이 좀 드는 방법이긴 하다.


먼 나라에서 가서 딴 세상을 구경하고 싶지만 장애인들은 마음대로 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내 여행은 자동차만 운전하면 어디든 가능하지만 유럽으로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많은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요즘 각국 항공사에서는 휠체어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것은 큰 문제가 없으나 현지에 가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일전에 뮌헨이나 마드리드에서 갈 때는 목발을 짚고 갔었는데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하였다. 뮌헨 님펜부르크 궁전 같은 곳은 워낙 넓어서 점심만 먹고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서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동휠체어를 가져갈 궁리를 했다. 어느 나라로 갈 것인가, 비교적 장애인 이동수단이 편리한 독일로 가기로 했다. 독일은 도시 간 이동할 때 휠체어접근성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보고 싶은 도시는 베를린, 그런데 베를린으로 가는 직항이 없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경험이 여행을 좋아하는 다른 휠체어사용자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니 재미난 이야기보다는 현지에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면서 생기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세히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난 내용이나 글솜씨가 없음을 숨기기 위하여 핑계를 대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나의 이야기가 나 홀로 휠체어를 타고 독일여행을 꿈꾸는 어느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어 또 다른 사람의 휠체어여행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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