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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강에서 유람선을 타다.

오랜만에 뢰머 광장에 오다

by andre

오늘은 먼저 뢰머광장으로 가보기로 한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 시간 상 잠깐 들렀지만 이제 시간이 많으므로 찬찬히 들러보기로 한다. 뢰머 광장에 있는 시청사는 TV나 사진에서 워낙 많이 보던 건물이라 별다른 감흥이 없다. 광장 가운에 작은 동상이 하나 있는데 '정의의 여신'이라고 한다. 10여 년 전에 이 자리에는 젊은 친구가 무릎이 터진 청바지를 입고 구슬픈 피리 소리를 들려주어 이방인의 객수를 달래주었는데 오늘은 그런 거리의 악사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은 하나 보인다. 그 젊은 친구는 지금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겠지.


20250430_092005(1).jpg 뢰머 광장

뢰머 광장의 시청사 건물 건너편 쪽으로 길을 따라가다 보면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보인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하니 유서 깊은 성당이다. 성당 안에 들어가 보니 분위기는 좀 썰렁하다. 지금도 미사를 하고 있는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조금 있으니 신자인 듯한 어느 나이 든 여인이 제단 밑에 놓인 꽃에 물을 주고 있다. 고개를 들어 오른쪽으로 보니 파이프오르간이 보인다. 여기서 미사를 할 때면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울릴 것이다. 내가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직접 들은 것은 서울 압구정동 소망교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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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대성당

요즘 유럽 성당들의 신자가 줄어들어 일부는 개조하여 카페나 상가로 세를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이 일상생활과 함께하였던 중세시대와는 달리 요즘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잘 믿지 않는다. 신이 원래 없었을까, 아니면 어느 유명한 철학자처럼 신이 있었는데 죽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을 나와 약간 경사진 길을 내려오니 바로 마인강이 보였다. 휠체어를 탄 채로 마인강변을 거닐기로 했다. 햇볕은 완전 여름날. 덥기는 하지만 미세먼지가 없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한참 가다 보니 유람선이 보인다. 유람선 이름은 독일이 자랑하는 인물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 Volfgang von Goethe). 독일은 어디서 든 지 괴테의 명성을 써먹으려 하는 것 같다. 한번 타볼까? 매표소의 여직원에게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유람선에 탑승할 수 있느냐, 식당이 있느냐고 물으니 모두 가능하다고 한다. 식사가 된다면 유람선을 타고 강가를 구경하며 식사를 할 심산이었다.


20250430_102008(1).jpg 마인강 변의 유람선


티켓을 끊고 시간을 기다리니 이윽고 유람선이 출발할 준비를 한다. 선착장 쪽으로 내려가는 통로를 찾아보니 경사로가 있기는 하나 경사가 아주 심하다. 그냥 내려가다가는 앞으로 꼬꾸라질 것 같아 직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무게가 앞으로 쏠리면서 꼬꾸라지지 않기 위하여 왼손으로 철제 난간을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휠체어의 조이스틱을 조금씩 움직이기로 했다. 무사히 유람선에 탑승. 아직 출발 시간이 많이 남아 사람이 별로 없다. 내가 구입한 티켓은 11시 출발인데 아직 15분 정도 남았다. 나는 우선 화장실 볼일부터 봐야 했다. 종업원에게 Accessible toilet(장애인용 화장실)이 있는지 물어보니 있다고 한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가오는데 무얼 먹어야 했다. 테이블 위에 있는 Menu판을 보니 뭐가 뭔지 알 수없고 아는 단어 'fish'라고 적힌 메뉴를 골랐다. 메뉴 내용을 모르니 내가 아는 단어를 보고 고를 수밖에. 잠시 후 나온 것을 보니 소위 '피쉬 앤 칩스'다. 먹어보니 약간 짭짤한 맛은 있으나 적당히 바삭하고 생선은 잘 익었다. 같이 곁들여 나온 샐러드도 적당했다. 독일에서 음식 주문에서 물은 기본이다. 공짜물은 없다. 식당에서 주는 물은 정수기 물이 아니고 병에 담은 물이므로 공짜가 없다.

20250430_110341(1).jpg 유람선 식사


시간이 되니 배가 서서히 움직인다. 여기 유람선 코스는 2가지가 있다. 50분 코스는 한쪽 방향으로 돌아오는 코스이고, 100분 코스는 양쪽 방향을 모두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이다. 다른 승객들은 모두 전망이 좋은 2층으로 올라갔고 휠체어 형편상 1층에서 있는 덕분에 1층 전체를 나 혼자 전세 낸 것처럼 사용하니 나쁘지 않다. 마인강의 풍경은 평화롭고 미세먼지가 없이 태양이 내리쬐니 행복감을 느끼기게 충분하다. 세로토닌이 팍팍 분비되는 기분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막 눌러댔다. 아무리 찍어대야 필름 값이 들지 않고 지우면 용량이 회복되니 아껴야 할 필요가 없다. 유람선 코스는 50분이면 적당했다. 졸지에 유람선을 타게 되었는데 마인강의 평화로운 풍경을 만끽하기에 좋은 경험이었다.


20250430_114527(1).jpg 유람선에 바라본 마인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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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관광을 마치고 보니 바로 옆에 무슨 다리가 있다. 이게 그 유명한 다리구나, 아인젤러(Eiserner) 다리. 이 다리도 한번 건너봐야지. 그런데 다리가 좀 높고 계단도 있다. 어이쿠, 휠체어장애인은 못 올라가겠네, 독일에서 이런 경우 부근을 살피면 항상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아,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그럼 그렇지, 항상 독일은 장애인에게 친절하다. 다리에 올라가 보니 마인강의 전경이 더 잘 보인다. 여기서도 다리 난간에 수많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리의 세느강이나 잘츠부르크의 잘자흐 강을 건너는 다리처럼 수많은 연인들이 그들의 사랑과 맹세가 영원하기를 기원하며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채운 뒤 열쇠를 강에 버렸을 것이다. 세느강의 경우 얼마나 많은 자물쇠를 채웠는지 무게로 인하여 다리 난간이 위협을 받아 모두 철거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러면 그들의 사랑에 대한 맹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따뜻한 햇살과 함께 맑은 공기가 좋다. 여기서 사진을 몇 개 더 찍었다.


20250430_121532(2).jpg 아인젤너 다리 위의 자물쇠
20250430_121755(1).jpg 마인강의 풍경

다음에 어디로 갈까, 스마트폰을 꺼내 구글 지도를 펴보니 부근에 프랑크푸르트박물관이 있다. 아이젤러 다리 부근이다. 다시 뢰머 광장 방향으로 오면서 무슨 박물관 건물 같은 곳이 보이는데 간판이 없어 이게 프랑크푸르트 박물관인지 확실치 않다. 구글 지도상으로 볼 때는 이 건물이 맞는 것 같기는 하다. 건물의 입구 쪽으로 가려고 보니 한참이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독일에서는 항상 장애인출입구가 별도로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Ausgang이라고 적혀있는 문이 보이고 보턴이 있다. 혹시 이 보턴을 누르면 호출하게 되는 것일까? 보턴을 누르고 한참이나 기다렸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 그랬더니 한참 후에 남자 직원이 문을 열고 나온다. 그러면 그렇지, 독일에서 장애인출입을 위한 별도의 시설이 없을 리가 없지,


프랑크푸르트 박물관 1층 안내데스크에는 나이 지긋한 어른이 앉아있다. 느낌상 고위 공직생활을 은퇴하고 안내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투나 느낌상 그렇게 다가온다. 박물관 내용물은 특이한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그림들이 있고 장신구 도자기들이 보인다. 도자기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연한 푸른색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림내용은 산수화와 비슷하고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중국인이다.


프랑크푸르트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여행안내소를 찾기로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여행안내소라 하면 두 군데 있다. 중앙역과 뢰머광장. 중앙역 안에 있는 여행안내소에서는 주로 티켓발매일을 하고, 뢰머광장에 있는 안내소에서는 각종 팸플릿, 지도 등 각종 여행안내서를 비치하고 있다. 뢰머광장에 있는 여행안내소는 구 시청사 옆의 건물이었다. 그런데 입구에 계단이 보인다. 우리 같은 휠체어 사용자는 건물 입구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가 있는지부터 먼저 본다. 그런데 경사로를 끝끝내 보지 못하였다. 그래도 장애인에 대한 시설이 잘되어 있다는 독일인데 어딘가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있겠지 하면서 한참이나 부근을 살펴보았는데 끝내 내 기대를 저버렸다. 도로 쪽으로 나 있는 건물의 바깥쪽을 살펴보았지만 계단이 있는 출입구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돌아갈까? 한참이나 망설였다. 저 여행안내소에 들어가야 프랑크푸르트 도시에 대한 지도 등 각종 여행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약간의 배짱이랄까, 용기가 생겼다. 계단 입구에 고교생쯤 됨 직 한 여자아이들 여럿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여학생들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 내가 지금 이 계단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누군가 안에 들어가서 직원으로 하여금 밖으로 불러내줄 수 있느냐?"

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어느 여학생이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직원인듯한 여자가 나온다. 나는 지금 여행자료가 필요한데 계단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자료를 가져다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잠시 후 그녀는 여행자료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녀는 손가락으로 계단 옆을 가리키며 저기 장애인호출기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 진즉 알았더라면 여학생들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 호출기 보턴은 아까 그 여학생들이 몰려 앉아 있는 바람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자료를 넘겨받은 후 숙소로 돌아올까 하다 아직 시간이 많아 이 부근에 있는 괴테의 집에 들러보기로 하였다. 구글 지도를 켜놓고 가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괴테의 집 앞에 가니 입구에 계단이 몇 개 보인다. 들어가기 어렵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나오더니 옆의 건물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괴테의 집 옆에 붙어있는 낭만주의 박물관. 건물에 들어가니 바로 티켓코너가 나온다. 티켓코너 뒤쪽 벽 쪽으로는 책으로 가득 찬 서재를 연상시키는 display로 되어 있다. 아마 괴테가 문학인이니 이에 걸맞게 인테리어 한 것으로 보인다. 티켓을 구입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1층(한국에서는 2층임)부터 관람하기로 되어있다.

첫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많이 보던 그림이 보인다. 괴테의 전신상을 그린 그림,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나 입을 듯한 망토 같은 옷을 걸치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모습, 얼굴이며 분위기로 보아 귀족출신임이 확연히 드러나고 무언가 많이 배운 듯한 인상의 모습. 괴테를 소개하는 책이나 그런 데서 항상 소개되는 그림이다. 전시장에는 유독 이탈리아 풍경을 소재로 한 그림이 많이 보였다. 괴테가 이탈리아를 동경하여 여행을 하고 이탈리아 여행기를 쓴 적도 있는데 이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그의 이탈리아여행기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의 책 내용 중에는 괴테가 직접 그렸다는 이탈리아 농경의 풍경 그림도 있었다. 그가 좋아했던 이탈리아 풍경과 여기에 전시된 이탈리아 풍경화가 무슨 연관이 있을 듯한데 그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20250430_160415(1).jpg 괴테의 전신상

여인의 그림이 보이는데 궁금했다. 괴테와 무슨 관련이 있는 여인일까? 초상화의 주인공은 '아말리에 폰 레베초프' 그림의 설명 내용을 보니 '울리케 폰 레베초프의 어머니'라고 나온다. 괴테가 74살에 청혼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울리케 폰 레베초프'. 당시 올리케 폰 레베초프의 나이는 19세. 그녀는 괴테의 청혼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평생 수녀로 살며 괴테의 편지를 간직했다고 한다. 74세의 노인이 19세 소녀에게 청혼하다! 역시 소설에서나 나올 법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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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가 폰 레베초프


이것저것 살피다 보니 시간이 좀 흘렀고 휠체어밧데리 잔여량 표시를 보니 15%가 남았다. 잔여 밧데리량을 표시해 주는 표시가 미세하게 표시해주지 못하고 잔량 40%에서 갑자기 잔량 15%로 확 떨어지니 불안하다. 이러다 언제 갑자기 0%로 표시될 런 지 모른다. 더 이상 여기서 지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숙소로 돌아오기로 했다. 아직 관람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어느 쪽에 있는지, 트램은 어디쯤 탈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시간상 여유를 부릴 수없었다. 안내하는 남자 직원에게 트램을 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남자직원이 따라나서며 안내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 지만 알려주면 될 텐데 예상밖이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친절할까? 아님 내가 휠체어를 탄 사람이기 때문일까? 한참을 가도 트램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가다가 지나가던 다른 남녀 일행에게 안내일을 넘겨주고 되돌아간다. 그런데 그가 돌아서면서 그가 나에게 한 인사말은 한국말이었다. 내가 그에게 한국말을 한 기억은 없다. 나의 생김새만 보고 한국인임을 알아차렸을까? 어쨌든 그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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