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박물관을 보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어제 갔던 슈테델 미술관이 있는 동네로 다시 가기로 했다. 그 동네는 작센하우젠지구라고 하는데 마인강을 건너 위치해있고 여러 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나란히 있다. 어제는 슈테델 미술관을 보았으니 오늘은 다른 박물관을 들러보기로 했다. 이것저것 여행안내를 받기 위하여 중앙역에 있는 여행 센터(Reisezentrum)부터 들렀다. 독일의 여행 센터에서는 여행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각종 티켓발권뿐 아니라 어디서 기차를 타고 어디서 내리는지, 역의 위치는 어디인지, 어느 박물관이 쉬는 날인지 까지 알려주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영화박물관부터 들렀다. 역시 입구에는 계단이 있다. 계단 오른쪽에 있는 리프트를 이용했다. 티켓의 종류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소위 말하면 일반 티켓, 특별 티켓 이런 식으로 보였다. 5유로, 10유로. 영화에 문외한 내가 뭐 특별한 것까지 봐야 알겠냐 싶어 일반 티켓으로 끊었다. 프랑크푸르트 카드로 약간 할인.
전시된 품목을 보니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영화촬영 카메라 같은 것은 알겠지만 나머지는 모르겠다. 영화제작을 위한 촬영카메라, 제작기법, 영화산업의 발달과정 등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종이로 만든 건물 모형을 활영하고 영화 장면에서는 마치 실제 건물인 듯 착각에 빠지게 하는 기법을 소개하는 코너는 흥미로웠다. 그 외에는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였다. 결국 나는 영화 보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이지, 영화제작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동네는 박물관이 많아 박물관 지구라고 이름이 지어진 만큼 다른 박물관을 살펴보기로 했다. 도시의 지도를 펴놓고 보니 눈에 띄는 박물관이 보인다. 성서체험박물관, 세계문화박물관 등. 프랑크푸르트 여행지도상으로 볼 때는 여기가 성서체험박물관 같은데 어디가 입구인지 알 수가 없다. 지도상의 도면을 보고 실제 위치를 찾아보는데 부근의 건물과 혼재해 있을 경우 어느 건물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울퉁불퉁한 돌로 된 길을 따라 조금 움직이니 무슨 건물이 보이는데 확실치 않다. 성서체험박물관 같은데 입구가 정확하지 않다. 입구인듯한 곳을 발견했지만 계단으로 되어 있어 휠체어사용자는 진입이 쉽지 않다. 직원이라도 보이면 물어볼 텐데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볼거리가 없어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인 듯했다. 결국 찾기를 포기했다.
시원한 마인강의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 산책한 곳은 마인강 강 건너편 뢰머광장 쪽이고 오늘은 반대쪽이다. 도로를 건너는 건널목에서 차도와 인도사이의 턱이 낮아 휠체어사용자가 다니기에는 편하지만 휠체어 앞바퀴가 작은 바퀴라서 인도 쪽 턱에 자주 걸려 오도 가도 못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지나가던 누군가 달려들어 휠체어를 밀어주기도 하였다.
다리를 건너 유대인박물관을 찾기로 했다. 시내 쪽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는데 햇빛이 짱짱하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가 거의 매일 있다시피 해서 이렇게 쾌청한 날이 많지 않다. 다리 위에서 마인강의 풍경을 한 컷 찍었다. 시내 쪽으로 연결된 다리의 경사가 심하다. 갈 때는 좋은데 다시 이 다리를 건너오려면 휠체어에 부하가 많이 걸려 밧데리가 많이 소모된다. 그럴 경우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밧데리가 방전될 수도 있다. 다시 이 다리를 건너올 생각을 하지 않고 숙소로 갈 때는 트램이나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 다리를 건너니 저 멀리 유로화 조형물이 있는 유로타워 빌딩이 보인다. 아, 여기가 유명한 유로타워구나.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한 사람들이 인증사진을 찍는 장소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조금 지나니 특이한 형상의 하얀 건물이 보인다. 아, 저게 유대인박물관이구나, 하얀 건물인데 건물의 형태가 직사각형도 아니고 정사각형도 아닌 비대칭 건물로 기하학적인 건물이다. 건축설계자가 무언가 의도를 갖고 설계를 하였을 텐데 알 수가 없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말을 건네며 겁을 준다.
"여기에 들어오려면 아주 정밀한 검사를 해야 한다"
무슨 보물이라고 숨겨놓았을까, 나는 위험물을 소지한 것이 없으므로 겁날 게 하나도 없다. 아마 분위기로 보아 그는 유대인임에 틀림없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Ticket 코너에 가니 Ticket의 종류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Permanant와 Contemporary. 나는 할인카드인 Frankfurt 카드까지 있어서 두 가지 모두 관람해도 7유로 밖에 되지 않았다. 유대인박물관이라니 독특하다. 유대인들은 항상 무언가 독특하다. 오랫동안 박해받으며 살아온 유대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뭉쳐서 살아왔으니 무언가 독특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나는 터무니없는 공상도 하였다. 유대인들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신비한 물건인 법궤가 있지 않을까? 법궤란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다. 아직 현존하는 법궤가 발견된 적이 없다. 실제로 있었는지, 있다가 없어졌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많은 전문가들이 연구와 노력이 있음에도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솔로몬 왕 때 시바여왕이 돌아가면서 가져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만약 법궤가 발견된다면 세계는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구약성서에서나 나오는 물건이 실제로 확인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신화 같은 구약성서의 이야기에 대하여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될 것이다. 법궤의 모형도 없었다.
사실 법궤의 모양은 구약성서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 법궤의 모양을 그린 그림은 이미 알려져 있다. 성서유물에 대하여도 약간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오로지 유대인의 생활상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생활상이 유대교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소개된 것일 뿐 종교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시된 물건은 흔히 성서 속에서 등장하는 은으로 된 촛대, 그릇 등이 있었다. 그리고 토라(두루마리 성경), 탈무드 등이 보였다. 박물관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이다. 구약성경시대 그들의 삶이라는 것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이기도 했다. 좀 특이한 전시물도 있었다. 빛을 발하면서 돌아가는 원형의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 조형물에서 발하는 빛의 색깔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그리고 음산한 느낌을 주는 배경음악이 계속 흐른다. 무언가 구약성서의 계시대로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느낌을 주는 듯했다.
유대인의 생활상의 보여주는 복장, 집기 등이 있었고 대체로 흥미로운 전시물은 없었다. 유대인의 문화에 대하여 아는 바 없지만 다채로운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오랫동안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 살아온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그러한 것 같았다.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 나온 코너를 소개하는 안내문을 보았다. 안네프랑크! 아! 많이 들어보았다. 그런데 안네 프랑크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오지? 알고 보니 안네프랑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녀는 나치하에 독일군을 피해 숨어 살았는데 그녀의 일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알려졌다. 그녀가 살던 네덜란드의 집에는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일부나마 그녀의 흔적을 볼 수 있다니 좋은 기회이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물건들, 옷, 그녀가 찍힌 사진들을 보면서 괜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치하의 그 숨 막히는 상황을 그 어린 소녀가 어떻게 견디었을까, 비참한 전쟁, 죽음의 의미 이런 것으로 아직 제대로 모르는 나이이기 때문에 그런 숨 막히는 현실을 견디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때로는 불안과 공포에 대하여 무지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에 도움이 될는지 모른다. 안네가 어릴 때 부친으로부터 받았다는 책이나 입었던 옷 등을 보면서 안네가 어렸을 때의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했다.
전시된 사진은 안네프랑크가 안네의 다른 자매와 찍은 사진도 있어 어릴 때의 모습은 다른 자매와 구분이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전시실 직원에게 안네프랑크가 확실하게 나온 사진만 골라달라고 부탁해서 고른 사진만 찍기도 했다. 안네의 부친 오토 프랑크의 사진도 보였다. 직원은 나에게 일본 사람이냐고 물었고 나는 한국사람이라고 하니 그는 갑자기 우호적으로 바뀐다.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의 외모가 비슷한 점이 있어 가끔 나에게 일본사람인 줄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무언가 요기를 해야 했다. 아까 마른 빵으로 간단히 요기는 하였지만 무언가 배를 채우고 싶었다. 배가 부르지 않고 적당했으면 좋겠다. 유대인박물관 내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약간 어두운 분위기. 유대인의 문화가 어두워서 그럴까, 내가 선입관을 가지고 있어 그럴까, 무언가 밝거나 유괘 하지 않은 분위기. 수 천 년 동안 박해를 받아온 유대인이기 때문에 어두운 분위기일 것이라는 선입관일까, 그런데 확실한 것은 이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는 어두운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실내벽지도 그렇고 종업원의 복장도 그렇고. 음식도 시커먼 어두운 색깔을 띠고 있는 것 같다. 메뉴판을 보니 뭐가 뭔지 알 수없다. 메뉴의 내용이 사진으로나마 있으면 알 수 있을 텐데 사진도 없으니 알 수가 없다. 그냥 Beef라는 단어가 들어간 메뉴를 골랐다.
Beef filet with fresh shitake in creamsauce
나온 음식물의 양이 너무 많다. 이렇게 양이 많은 음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곁들여 나온 빵조각은 알겠는데, 검은색 덩어리는 모르겠다. 음식 제목으로 beef라고 쓰여있으니 고기로 만든 것일까,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비건'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고기는 아닌 것 같다. 고기 같은 검은 덩어리를 씹어보니 고기를 씹는 식감이 느껴진다.
두 여종업원 모두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데 한 여자는 전형적인 유대인 여자 얼굴이다. 얼굴 형태가 계란형이고 눈이 크고 얼굴 볼테기 살이 두툼하다. 안네 프랑크와 비슷한 이미지. 다른 여자는 독일계 스타일의 얼굴인데 말투가 억세다. 인상은 부드러울 것 같은 데 말을 걸었다가 말투가 너무 세서 더 이상 말을 불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식사 후 음료수가 나오는데 애플와인이라고 한다. 사과주라는 뜻인데 사과 냄새가 나지 않고 밋밋하다. 사과를 제대로 숙성해서 만든 것 같지 않고 맹물에 사과주를 대충 섞은 듯하다. 하여튼 음식물의 양이 너무 많아 빵과 필레 부분은 거의 남겼다. 식사 18.5유로, 애플와인 3유로.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갈 시간. 오늘에는 프랑크푸르트 카드가 있으니 Tram을 타기로 한다. 숙소방향으로 가는 11번 트램이 온다. 트램이 서자 나는 기관사가 나를 볼 수 있도록 맨 앞쪽으로 갔다. 기관사가 내려 상황을 보더니 승강장과 트램 사이의 단차가 작아서 그런지 경사로를 꺼내지 않고 그냥 승차하라고 한다. 그런데 간격이 넓어 휠체어의 작은 바퀴가 승강장과 트램 사이에 빠질 것 같다. 다른 승격이 내 휠체어를 잡아주어 겨우 탑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