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일 철도청은 약속을 정확히 지켰다.

생전 처음 베를린으로 가는 독일기차(ICE)를 타다.

by andre

오늘은 베를린으로 가는 날, 기차출발 시간은 오전 11시 5분. 출발시간 20분 전까지 DB(Deuch bahn) information(독일 철도 안내 센터)으로 가서 안내직원을 만나도록 되어 있어 좀 더 일찍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혹시 무언가 변동이 생긴다면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항상 사람이 많고 DB information 앞에도 사람이 많다. 창구 앞에는 이런저런 일로 문의하는 사람들이 항상 줄을 서있는 편이다. 창구 옆에는 나 외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처럼 리프트신청을 하고 대기 중일 듯하다. 내가 탈 기차는 베를린행 ICE. 플랫폼은 13번이다. DB information 창구 직원에게 메일로 받은 프린트물을 보여주었다. 창구 직원은 PC에서 이것저것 검색해 보더니 여기서 기다리고 한다. 무언가 확인되었구나, 변동은 없구나. 독일에서 기차는 자주 연착이 되고 변동이 많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아온 지라 혹 변동이 있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야 변동이 되면 변동된 시간에 해당 플랫품을 찾아가면 그만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휠체어리프트서비스가 제공될 시간과 장소가 변동되어야 하므로 되어 복잡한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직원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의 일정이 누군가의 움직임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 리프트 담당 직원이 출발시간에 맞추어 리프트를 가져오지 않으면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골 아픈 상황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상상을 하게 되는 상황. 그 누군가가 착오로 실수하면 나의 스케줄이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상황이 싫었다.


이윽고 역무원 복장을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크지 않은 덩치에 작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얼핏 보니 중동지방 출신인 듯 피부색이 거므티티하다. 속사포처럼 말을 하는데 내가 겨우 알아먹을 정도이다. 그가 하는 말 중 내가 겨우 알아먹은 말은 '베를린'. 베를린으로 가는 사람이 맞느냐 그런 뜻이다. 나는 'yes'라고 하였다. 그는 나에게 저쪽 B 13번 플랫폼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뭐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웨이트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저쪽 플랫폼에서 기다리라는 뜻인 것 같다. 나는 ' 아이 고우 데어 웨이트?' 내가 저쪽으로 가서 기다리라는 뜻인가 반문하면서 그의 의중을 확인하니 그렇다고 한다.


B 13번 플랫폼에서 기다렸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아까 그 직원은 나타나지 않고 기차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같은 기차에 승차할 다른 다른 승객들도 있을 텐데 이쪽에는 사람이 없다. 이상하다. 그런데 B 12번 플랫폼으로 기차가 도착하니 사람들이 모두 우르르 그쪽으로 간다. '저 기차는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B 13 플랫폼에서 우두커니 기다렸다. 그런데 조금 전 그 직원이 리프트를 가지고 나타나더니 B 12 플랫폼에 도착한 기차를 타라는 것이다.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탈 기차는 13번이라고 하니 그는 'changed'라고 하였다. 아, 소문대로 독일기차는 자주 일정이 바뀐다더니 이렇게 바뀌는구나, 아마 전광판안내도에도 바뀐 플랫폼표시가 되어 있을 텐데 내가 그런 것까지 제대로 볼 정신이 아니다. 다행히 직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기차를 타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플랫폼


베를린행 기차가 이윽고 출발. 내 자리는 2등석 첫 칸. 맨 앞쪽의 위치한 67번 좌석. 좌석이 2개 있는 자리인데 나 혼자 타고 갈 것 같다. 2인석에서 옆자리가 비어 있어 나 혼자 편하게 가는 그런 호사를 누렸다. 내 자리 앞에는 접이식 탁자가 있어 물건을 올려놓을 수도 있었다.


기차가 매끄럽게 움직인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건물들이 하나둘씩 보이더니 시외곽으로 들어서자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베를린까지는 장장 4시간 정도. 그리 긴 시간도 아니고 짧은 시간도 아니다. 비행기를 13시간이나 타고 왔던 경험이 있으니 4시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창밖을 우두커니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베를린으로 가는 창밖의 풍경은 어떠할까, 궁금하다. 먼 이국 땅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은 흥미로운 시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풍경에 눈을 기울이기도 하고.


유채꽃 밭처럼 노란색 들판이 보이더니 어느새 붉은색 지붕의 그림 같은 집들이 나타난다.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있다. 울창한 나무와 우거진 산들이 보이더니 금방 푸르른 들판이 보인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보던 장면이다. 그렇다. 유럽의 미술관에서 흔히 보던 그림 속의 장면들이다. 유럽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면서 왜 이렇게 짙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약간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될까,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실제 독일 들판의 장면은 그러했다.


베를린으로 가는 독일기차(ICE) 안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까지 장장 4시간가량. 창밖의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명화에 나오는 그림 같은 풍경을 보았으니 시간 가는 줄 몰았다. 중간에 3개의 정류장을 거치면서 잠깐 정차하기도 했다. 어느 역에서 정차하고 창밖을 보니 어느 휠체어를 탄 여자가 플랫폼에서 승차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도 나처럼 리프트를 이용해서 승차하겠지, 잠시 후 그녀는 승차하였고 장애인 객실이 있는 내 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좌석의 오른쪽 건너편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혹시 그녀가 나와 같은 목적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어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베를린이라고 한다. 아, 나와 같은 종착지이구나. 나는 이런 리프트를 이용해서 독일기차를 타는 것이 처음이지만 그녀는 여러 번 해보았을 것이다. 베를린에서 내릴 때도 그녀가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되겠지, 같은 입장에 처한 동지를 얻은 기분. 오는 중간에 하차할 역을 놓칠까 봐 그녀에게 확인하기도 하였다. 이윽고 베를린 도착, 그녀는 먼저 하차할 준비를 하고 앞선다.


베를린 중앙역은 예상대로 복잡했고 어디가 어딘지 알 수없다. 나는 무조건 큰 출입구가 열려있는 쪽이 정문인 줄 알고 나갔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구글지도상으로 볼 때 중앙역을 나가면 바로 내가 예약한 호텔이 보이는 상황일 것 같은데 호텔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구글지도 보니 내가 나간 곳은 후문이었다. 다시 반대편 쪽으로 입구를 나서니 그제야 내가 예약한 호텔 비숫한 건물이 보인다. ibs 호텔.

베를린 중앙역

호텔 입구 카운터에서 체크인하다. 나는 인터넷으로 신청할 때 장애인객실을 요청했지만 이를 확인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런 방이 남아있을지 알 수 없다. 카운터 직원은 요청사항을 확인하더니 장애인 객실이 없다며 원하면 취소하라고 한다. 이곳에서 내가 어디 가서 갑자기 다른 호텔을 구할 것인가, 나는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니 장애인 객실이 아니어도 된다고 하니 알았다며 203호 방을 배정해 준다. 그런데 203호실에 들어가 보니 내 방이 도로변이라 지나는 차량의 소음이 들린다. 밤에는 더 크게 들릴 것이다. 다시 내려와 카운터 직원에게 나는 소음에 민감한 편이라서 조용한 방으로 바뀌 달라고 하니 높은 층이라도 괜찮으냐고 하길래 'no problem'이라고 답했다. 다시 614호 객실로 배정받았다.


614호는 입구도 크고 더 넓고 조용해서 만족했다. 그에게 Danke라고 답례했다. 여행 갔을 때 숙면을 취하여야 다음날 개운한 여행을 하기 때문에 조용한 방은 매우 중요하다. 응대한 카운터 남자직원은 전형적인 독일 사람으로 젊은 친구이다. 그는 매너가 좋았고 빈말이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요청하라고 한다. 내가 그의 도움을 요청할 일은 없겠지만 그는 고객을 편하게 해 주었다. 그 옆의 직원은 중동 출신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을 걸면 딱딱하게 대하여 더 이상 말을 붙이기 싫었다.


첫날 저녁에 무언가 먹을거리를 사기 위하여 중앙역으로 나와보니 중앙역사 안은 대형 쇼핑센터처럼 각종 가게가 모두 있었다. 독일의 전형적인 마트인 'REWE'도 있었다. 앞으로 필요한 먹거리는 여기서 사면 되겠구나, 베를린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일정을 마무리했다.


keyword
이전 07화프랑크푸르트의 명동에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