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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지하철에서 이상한 여자를 만나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다.

by andre


베를린 호텔에서 첫날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가다. 뷔페음식을 얼핏 보니 프랑크푸르트에서 묶었던 호텔에 비하면 좀 부실한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 호텔에서는 뷔페 음식의 종류가 다양했는데 여기는 확실히 빈약해 보인다. 가격은 비슷한데 여기 물가가 조금 비싸서일까, 삶은 계란도 보이지 않고 요구르트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따끈한 국물 같은 것도 없다. 다음날 둥근 금속통의 뚜껑을 열어보니 삶은 달걀은 있었다. 첫날에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어디로 갈까, 베를린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 브란데부르크 문으로 가기로 했다. 휠체어를 타고 나섰다. DB reisezenntrum(독일 철도청 여행 센터)으로 가서 상담을 하고 Day Ticket(하루 교통권)을 끊었다. 여기서 아주 친절하게 여행에 관한 모든 상담을 해주어 큰 도움이 된다. 지하철이 도착하였는데 승강장과 차량 사이에 단차가 있었으나 요령껏 승차. 드디어 브란덴부르크 문 역에서 하차.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올라가야 한다.

베를린 U-bahn(지하철)
브란덴부르크 문 역


저쪽에 대합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승강장으로 내려왔음에도 사람이 내리지 않고 그대로 다시 올라간다.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같은 사람이 타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야 상황을 인식하게 되었다. 어떤 여자가 엘리베이터가 자기 안방인 양 물건을 꺼내 놓고 앉아 뜨개질을 하는 것 같다. 첫눈에 그녀가 마약에 취했거나 미친 여자임을 알 수 있었다. 휠체어에 탄 채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진입을 시도해 보았지만 그녀는 앉은 채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는 좁은 상태, 여차하여 휠체어로 그녀를 건든다면 큰 봉변이라고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대합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한 대 밖에 없다.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에스켈레이터를 타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10분 정도 기다린 것 같은데 그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쯤 되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구글지도를 보니 두 정거장을 지나면 박물관 섬 역이다. 어차피 박물관 섬에도 가봐야 하니 그곳에서 내리기로 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박물관섬역에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니 햇빛이 따사롭다. 내가 머물던 베를린중앙역 부근은 찬바람이 불지만 이곳은 확실히 날씨가 따뜻하고 공기가 시원하다. 불과 두 정거장 거리인에 이렇게 날씨가 다르다니, 이 부근은 박물관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라 하여 박물관 섬이라 부른다. 섬 주위로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강이 흐른다. 강이라고 하지만 얼핏 보면 폭이 좁아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그렇다. 오늘은 어차피 시간이 늦어 박물관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각 박물관의 위치만 확인하기로 했다. 다음날 일찍 와서 봐야지, 지금 들어가면 어정쩡하다. 몇 개 보다 보면 시간이 지나 나와야 할 상황이 된다.


박물관 섬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오른쪽으로 훔볼트 포럼이라는 박물관이 있고 왼쪽으로 베를린 돔이라고 불리는 베를린 대성당이 있다. 베를린 돔 앞은 넓은 잔디가 깔린 광장으로 되어 있다. 광장 가운데는 분수가 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보고 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여인도 보인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장면이다. 거리의 악사도 보인다. 거리의 악사가 클래식 기타를 치는데 많이 들어본 곡이다. 전형적인 클래식 기타곡인 '로망스(영화 금지된 장난의 주제곡)'. 여기서 듣는 기타 소리는 이방인의 객수를 달래준다. 여기서 우두커니 앉아 있어도 좋겠지만 이방인의 마음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각 박물관의 위치만 확실히 확인하기로 하고 어슬렁 거리니 박물관 직원 인 듯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다 말고 나에게 뭐라고 한다. 대충 들어보니 오늘은 월요일이라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이 휴관이라는 이야기. 아, 한국과 비슷하구나 한국에서도 박물관은 월요일에 쉬는 경우가 많다.

베를린 대성당

베를린 돔 정면에서 왼쪽 방향으로 구박물관(Alte museum), 구미술관(Alte nationalgalery), 신박물관(Neue museum), 페르가몬 박물관 등 모두 모여있다. 이렇게 박물관이 모여 있으니 박물관 섬이라고 하는구나. 베를린 대성당 앞에 '베리어 프리'라고 쓰인 팻말이 있어 안내표시 대로 따라가면 리프트가 있을 것이라생각했는데 왼쪽 입구 부분은 한창 공사 중이라 막혀있다.


대충 박물관의 위치를 확인했으니 오늘은 이쯤 해두고 브란덴부르크 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까 브란덴부르크문역에서 이상한 여자를 만나 내리지 못하였으니 여기서 휠체어를 타고 어슬렁어슬렁 브란덴부르크문까지 가보기로 했다. 두 정거장 거리니 그리 멀지 않을 듯, 여기서 브란덴부르크 문쪽 쪽으로 가는 길에 운터 앤 린넨이라는 거리가 있다.


무슨 시위행렬이 보인다. 무슨 구호를 합창하며 움직이는데 무슨 시위행렬일까, 시위대는 모두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게다가 경찰들이 이 시위대 옆으로 따라간다. 평화적인 시위였고 경찰은 이들을 통제하기보다는 조용히 따라가며 보호하는 듯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시위대를 보니 정체가 드러났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많이 보인다. 무슨 일로 데모를 하는 것일까, 장애인들의 권리에 대한 시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궁금하던 차에 어느 휠체어를 탄 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시위에 동참하라고 한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른 볼 일이 있어 동참하지는 못하지만 당신들의 시위를 응원한다고 해주었다. 그가 건네준 paper를 보니 매년 이날은 그들이 시위하는 날로 되어 있었다. 그때그때 이슈가 될 만한 것들을 내걸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였다. 평화적인 시위, 그리고 이들을 호위하는 경찰 등 참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구글지도를 보면서 브란덴부르크문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였다. 넓은 도로가 있고 도로 양쪽으로는 중세에 지은듯한 건물들이 보였다. 훔볼트대학이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 정문 양쪽으로는 벼룩시장이 보인다. 길게 늘어진 가판대에 물건을 놓고 있었는데 왼쪽으로는 잡다한 골동품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중고 LP음반 매장이었다. 음반을 하나 꺼내 집어 들어보니 제법 무게가 나가는 것으로 보아 쓸만한 LP로 보인다.(LP는 약간 무게가 나가는 것이 좋은 제품이다.) 몇 개 사고 싶었으나 귀국할 때 가지고 올 것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베를린 박물관이라는 건물도 보이는데 오늘은 휴관이라고 하여 패스.

베를린 장애인 시위대


박물관 섬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무슨 그리스 신전 같은 건물이 보인다. 입구에 사람들이 보인다. 무슨 건물이지?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 홀에는 아무것도 없고 덩그러니 조각상이 하나 보인다. 입구 오른쪽 벽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한국어판도 있다. 건물 이름은 Die neue wache(‘새로운 경비대’라는 뜻인데 오늘날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전쟁 등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영혼을 추모하는 공간’


조각상을 보니 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여인의 모습. 내부가 약간 어두워 조각상의 형상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그 여인의 눈빛이 보이지는 않지만 분위기 상 어떤 이미지인지는 이미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눈빛일 게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독일 조각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이라고 함. 더 이상 설명이나 해설이 필요 없는 조각상. 이 하나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비극이 어떠니 하는 말은 쓸데없는 수사에 불과할 뿐. 방문객 중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들 눈시울을 붉혀가며 나오는 울음소리를 애써 참는 듯했다. 이런 독일사람들이 어찌하여 한때는 미치광이 히틀러에 동조하여 유대인 600만 명 학살이라는 만행에 동조하였을까? 그때는 그때의 논리가 있었을까? 나의 짧은 식견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노이에 바헤


피에타(죽은 아들을 끌어안고 있는 여인)

계속 브란덴부르크 문 쪽으로 진행하는데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를 채우고 화장실 볼일도 보아야 한다. 이런 곳에는 화장실 볼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처럼 무료 공공화장실을 찾기도 어렵고, 휠체어를 탄 상태라 장애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마땅한 화장실을 찾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마땅한 식당에 들러 화장실 볼 일을 보기로 했다. 화장실이 있어도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식당에 들어가야 했다. 어느 이탈리아 식당에 들어가서 화장실이 Barrier free(장애인용)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여 들어갔다. 그런데 화장실로 접근하기 위하여는 좁은 테이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식사 중인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야 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나왔다. 큰 서점이 보이길래 들어가 체면 불고하고 카운터에서 물으니 여직원이 친절하게 3층 장애인화장실을 알려준다. 볼 일을 다 보고 나오려는데 수도꼭지 물이 멈추지 않는다. 물을 틀 때 자동센서로 나왔는지 무엇을 눌러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어떻게 물을 멈추지? 이렇게 눌러도 저렇게 눌러도 물이 멈추지 않는다. 한국과 다르니 수도꼭지 물을 멈추는 것도 쉽지 않네, 옆에 젊은 친구가 보이길래 물을 잠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젊은 친구도 물을 잠그는 방법을 모르네, 이렇게 물이 콸콸 나오는 것을 내버려주고 그냥 갈 수는 없다. 그도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런데 잠시 후 물이 멈추었네! 자동으로 멈추는 것이었나? 보통 한국에서는 자동 센서의 경우 손을 수도꼭지 밑으로 대면 물이 나오고 손을 떼면 금방 물이 멈추는데 여기는 다른가, 어쨌든 그렇게 해결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들렀던 서점은 베를린의 대표적인 서점인 두스만 서점이었다. 한국으로 말하면 교보문고 정도 되는 서점이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이 서점 지하에는 음반매장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음반매장을 그냥 지나칠 수없다. 욕심나는 LP들이 있었으나 무거운 음반을 가지고 귀국할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화장실을 해결했으니 배를 채워야 한다. 그 건물인지 옆 건물인지 지하에 들어가서 레스토랑에 들렀다. 무엇을 먹을까, 메뉴판의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없으니 아는 글자가 표시된 메뉴를 시켜야 한다. 파스타를 주문했다. 올리브에 볶은 것인데 먹을 만하고 양은 제법 많았다.

베를린에서 먹은 파스타

이제 화장실 볼 일도 보고 배도 채웠으니 슬슬 거리 구경을 시작하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향해서 가다. 박물관 섬 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인데 그리 멀지 않았다. 동독과 서독을 가로지르는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장면을 우리는 TV를 통해 이미 보아왔고 부란덴부르크 문 사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부근에 유대인학살에 관한 기념공원이 있다고 하여 찾아보기로 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왼쪽으로 조금 가니 보인다. 정사각형도 아니고 직사각형도 아닌 약간 비대칭적인 사각형 구조물이 널려져 있었다.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구조물은 어느 것 하나도 같지 않다고 한다. 인간이 각각 모양, 색깔, 생각이 다르듯이 이렇게 다양한 인간군상을 상징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소중한 생명임을 강조하려 하였을 것이다.

브란덴 부르크 문
홀로 코스트 추모비

구경을 마치고 드디어 브란덴부르크문 역 지하철을 타려고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만약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 아까 아침에 만났던 그 미친 여자 아직 뜨개질을 하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골 아픈 일이다.

다행히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는 비어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항상 베를린 중앙역을 마지막으로 거치는데 중앙역 광장에서 한동안 우두커니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하루를 정리하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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