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테델 미술관을 가다
오늘은 5.1. 어디로 갈까? 5.1. 은 노동자의 날이므로 공휴일이다. 벌써 머릿속에는 공휴일이면 모든 상점을 비롯하여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모두 문을 닫을 텐데, 그렇게 되면 무엇을 하고 시간으로 보낼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다. 일단 숙소를 나서보기로 했다. 오늘의 주요 공략 장소는 박물관이 많이 있는 동네. 일단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안에 있는 DB(Deuch bahn) Reisezentrum(독일 기차 여행 센터)로 가보기로 했다. 독일은 여행 안내소가 잘 되어 있다. 단순히 길을 알려주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 미술관이 휴무인지, 가려면 어느 버스를 타야 하는지까지 알려준다. 게다가 적합한 티켓까지 발권해 준다. 담당 직원이 독일어로만 이야기하니 알아먹기 어렵고, 영어로 말해도 속도가 너무 빨라 나같이 회화가 익숙치 않은 사람은 소통이 어렵다. 그런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모두 알아먹을 필요는 없다. 된다, 안된다, 맞다, 틀리다 등 핵심 내용만 정확히 알 수가 있다면 큰 애로가 없다. 창구 직원과 상담한 결과 내가 가려던 쉬테델 미술관은 문을 닫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쉬테델 미술관은 국립이 아닌 사립이었고 쉬는 날이 일요일이 아니었다. 가는 길이 문제다.
창구 직원은 18번 트램을 타라고 일러주었는데 중앙역 앞에는 18번 트램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 중앙역 왼쪽 부근 승강장을 살펴보아도 18번 트램이 없다. 결국 18번 트램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기로 했다. 중앙역 부근에는 여러 군데 트램역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한참 벗어난 트램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여기도 18번 트램이 정차한다는 표시가 없다. 여기서 쉬테델미술관 방향으로 가려면 마인강을 건너 좌회전하여 한참 가면 도달할 것 같기도 하다. 정류장에 앉아 있는 중년부인에게 물어보아도 별로 응대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돌아갈까, 젊은 여자에게 물어보아도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16번 트램을 타면 그 방향일 것이라는 이야기 정도 조언해 준다. 마침 16번 트램이 정류장에 도착한다. 기관사에게 눈길을 주니 문을 열고 나온다. 지도를 보여주며 쉬테델 미술관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니 오토 한스역에 내려 조금 걸어가면 된다고 한다. 친절한 기사이다.
오토 한스역에 내려 구글지도를 보면서 찾아간다. 200미터 정도 한적한 이면도로를 지나니 미술관인 듯한 건물이 보인다. 그런데 계단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숨이 탁 막힌다. 이런 경우 휠체어를 탄 나는 난감해진다.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독일을 다니면서 이런 경우 부근을 잘 살펴보면 반드시 휠체어이용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독일에서 이런 경우 리프트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인내를 가지고 부근을 살펴보니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계단의 왼쪽을 살펴보니 무언가 문 같은 것이 보인다. 리프트이다. 리프트를 타고 한 층 올라가니 그제서야 데스크가 나온다. 프랑크푸르트 카드(프랑크푸르트 시내 박물관 카드)를 내미니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중년의 여자가 뭐라고 하는데 알아먹지 못하겠다. 나는 알아먹지 못하니 글씨로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Hearing은 제대로 되지 않지만 독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영어교육은 독해 위주로 해서 그런지 듣지는 못해도 영문을 보면 대충 해석은 된다. 그녀가 써주는 내용을 보니 프랑크푸르트 카드를 이용해도 입장료가 무료가 아니고 할인이 될 뿐이라고 한다. 사설이라서 그렇단다. 프랑크푸르트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국립이 아니고 사립이라니 아쉽다. 입장료는 원래 18유로인데 할인해서 16유로.
독일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관람객이 많지 않아 좋다. 파리의 루브르나 바티칸 박물관처럼 수많은 인파가 몰려다니는 곳에 비하면 여기는 다른 세상이다. 사람이 많지 않으니 피로도도 덜 느끼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어슬렁 거리며 감상할 수 있으니 정말 좋다.
전시실 첫 번 째 방에 들어가니 많이 본 그림이 나를 맞이한다. 괴테의 전신상을 그린 그림. 역시 괴테는 프랑크푸르트가 내세울 만한 인물이니 어디 가나 그를 앞세우는 듯하다. 이 그림은 괴테하우스에서도 보았다. 똑같은 그림인 것 같은데 이곳의 그림 사이즈가 더 크다. 똑같은 사람이 그렸을까, 하나는 다른 사람이 모방한 그림일까. 전시실을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곳의 그림이 진짜이고 낭만주의 박물관의 그림은 모방작이라고 한다. 전문 도슨트가 아닌 그의 말을 신뢰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이를 확인해 보니 여기 그림이 원작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죽은 사람을 슬퍼하는 사람 모습이 그려진 그림도 보인다. 나는 본질적으로 밝은 그림보다는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표현한 그림을 더 좋아한다. 죽은 사람을 슬퍼하는 모습을 피에타라고 하는데 보통 죽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성모마리아를 그린 그림을 지칭한다.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대표적인 피에타. 술에 취한 듯한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도 보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분위기의 그림이다. 뭉크.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항상 흐리멍텅한 눈을 가지고 있거나 무언가 실성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다. 슬픔이나 절망의 나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듯한 느낌의 사람들. 그의 눈은 휑하다. 흐리멍텅한 정신을 가진 나와 비슷하다. 이것이 뭉크 그림의 특색이다.
점심 시간이 되어 무언가로 배를 채워야 했다. 이런 곳의 레스토랑에는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 대부분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있는 카페테리아는 간단한 음식만 판다. 얼콰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데 그런 음식이 이런 곳에 있을 리 없다. 메뉴판을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런 경우 내가 확실히 아는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올리브기름이 들어간 샐러드를 주문하였다. 나는 온갖 성인병이 있는 지라 가급적 칼로리가 낮은 것으로 먹어야 한다. 그런데 나온 음식을 보니 정말 빈약하다. 모양은 참 이쁘게 나왔지만 빵 쪼가리 하나 없다. 오로지 풀 밖에 없다. 실망. 코끝에 스치는 올리브의 은은한 향을 보니 올리브는 좋은 것을 쓴 것 같다. 샐러드를 다 먹어도 속이 허하다. 나는 인상 좋은 남자 종업원에게
"나는 배고프다. 빵 조각이라고 줄 수 있느냐"라고 하니 흔쾌히 응한다. 잠시 후 십자가 모양으로 사등분된 딱딱한 빵 하나를 가져온다. 서비스 정신이 좋구나, 나는 그에게 두 번이나 Danke를 연발했다. 나온 빵은 조각하나 남기지 않고 그릇에 남은 올리브기름에 찍어 먹었다. 그런데 계산서를 받아 살펴보니 빵값이 포함되어 있었다! 공짜를 좋아하다 보니 공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 계산서에 찍힌 빵값은 무려 4.5유로. 이럴 줄 알았다면 두 번이나 'Danke'를 연발하지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