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득한 여름 볕이 빛깔을 달리하지 시작하는 시간. 호사스러운 시간을 누리는 기쁨으로 옮기는 걸음걸음 콧노래가 뿌려진다. 평일 저녁 6시부터 7시 사이. 한 시간의 자유수영 시간을 만끽하는 발걸음이 사뿐하다. 저녁 5시 40분, 초등학생들의 수영 수업 시간임을 알리듯 신발을 정리하고 들어선 탈의실 바닥에는 빨강, 파랑, 초록의 옷 바구니들이 줄을 이룬다. 그들의 생기를 차마 다 감싸지 못한 허물들이 바구니마다 가득 담겨있다. 상실할 것이 적은 이들의 자유분방함을 뒤로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옹졸한 열쇠로 자신의 허물을 가둔다. 드물게 조용한 샤워실에 들어서 여유 있는 준비를 마치고 6시를 알리는 사이렌에 맞춰 수영장으로 향한다. 어스름한 하늘이 창마다 걸린 시간. 떠들썩했던 아이들의 소리 뒤로 새로운 장막이 걷히듯 자유수영을 위한 1시간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공간 속에 사람이 두서넛 조용히 움직인다. 한 레인을 기껏해야 하나 아니면 둘 정도의 인원이 오가며 하루의 긴장을 마음껏 흘려보낼 수 있는 한 시간 동안 물 위에 잔잔히 나를 새겨 넣는다. 그러다 숨을 돌리려 가만히 서서 누군가 새겨나가는 물비늘이 잦아들기를 지켜보기도 한다. 삶의 기능적 부분이 망가진 이들이 암막 뒤에서 생의 불완전 연소를 이어가는 세상에서 사람의 자취가 사그라드는 것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일은 드넓은 의식의 땅에 생명의 생래적 자유로움을 침윤시키는 시간이 된다.
한참을 서서 누군가 만들어 낸 물 위의 파장을 보다 이윽고 사그라드는 것을 계속해서 새겨 넣는 인간의 모습들을 떠올린다. 언제나 다음의 무언가를 받아들이듯 부지런히 개비하며 물 위에 반복해서 저마다의 이름을 쓰는 이들을. 그러나 여지없이 사라져 버린 그 이름의 자리에는 잔잔한 수면만이 남아 있다. 그러니 흐르는 물 위에 이름을 새겨 넣는 인간의 일은 언제나 일패도지할 수밖에. 지는 싸움을 피해 가려는 얕은 마음과는 어울리지 않게 쪼그려 앉아 이름을 쓰는 일이 어쩐지 성에 차지 않아 나는 정신을 지배한 가오를 품은 채 물속으로 뛰어든다. 찬찬히 몸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때마침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라는 노래가 귓속을 파고든다. 가만히 있지 못해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 오랜 인류의 역사를 답습하듯 마냥 흘러가는 대로만 있지 못하고 팔과 다리를 저어본다. 때로는 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부드럽게, 때로는 물을 거스르며 세차게. 가만히 앉아 수면 위에 사라질 이름만 쓰고 있기에 삶은 너무나 명확하게 유한하기에, 사라질 이름을 손끝으로 새길 바에 온몸을 적시며 숨이 다 하는 날까지 밤낮 반짝이는 물결을 만들어야지. 그래, 기왕이면 노래를 하자. 속으로 조그맣게 다짐한다.
Schubert: Auf dem Wasser zu singen, D. 774 - YouTube
Schubert Auf dem Wasser zu singen : Camille Thomas and Beatrice Berrut
Schubert : Auf Dem Wasser Zu Singen Op.72 D.774
거울처럼 비추는 물결의 빛 가운데 백조처럼 흔들리며 미끄러지는 작은 배.
아, 기쁨으로 은은히 빛나는 물결 위에 내 마음도 그 배처럼 미끄러져 가네.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저녁 햇살은 배를 에워싸고 물결 위에서 춤추네.
서쪽 숲의 나무들 위에서 붉은 햇살이 정답게 손짓하니.
동쪽 숲에선 나무 가지들 아래 창포가 붉은 빛을 받고 살랑거리네.
내 영혼은 붉은 햇살 속에서 하늘의 기쁨과 숲의 안식을 들이마시네.
아, 시간은 이슬의 날개를 달고 흔들리는 물결위로 사라져 가는구나.
시간은 내일도 빛나는 날개로 어제와 오늘처럼 다시 사라지겠지.
마침내 나도 고귀하고 찬란한 날개 달고 변화하는 시간을 떠나서 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