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다이어리
<Day 33> 10월 23일
신랑이 출근을 하고 아이들이 차례로 등교를 했다. Peers에 가서 수업을 하고 오니 벌써 12시가 되어버렸다. 아빠가 만들어 놓으신 만능 양념장에 계란프라이 하나 넣어 비벼먹으니 이곳은 더 이상 캐나다가 아니라 한국이다. 아침시간 내내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외로우셨을까?
후회되셨을까?
조바심이 나셨을까?
행복하셨을까?
편히 쉬셨을까?
그래도 오늘은 마음 가볍게 즐거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다. 드디어 우리를 괴롭히던 엄마의 요로결석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큰 결석이 초음파 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반가운 소식일 수도, 걱정되는 소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의 소견으로는 모두 부서져서 배출되었을 것이라는 검사결과에 오랜만에 온 가족의 마음이 날아갈 것처럼 홀가분하다.
타운에서 막내딸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제스퍼 팀과의 첫 경기였다. 다행히 경기시간이 레슨 전이라 아빠와 함께 경기를 보러 갔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 실력이 이렇게 늘었는지 거뜬하게 제스퍼를 큰 점수차로 이기고 다음경기를 기다렸다. 예전에는 큰딸 축구경기를 따라다니시느라 축구 열성팬이 되셨는데 올해는 막내딸 덕분에 우리 모두 배구팬이 될 것 같다. 아빠의 카메라는 오늘도 연신 영상과 사진으로 순간의 행복을 담아내느라 열일을 하고 있다.
저녁 7시. 레슨이 끝났다. 저녁밥을 준비할 시간이 없는 딸을 위해 아빠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 언제든 밥만 있으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양념장을 새로 만들어 냉장고에 채워 두셨다. 오늘 저녁은 라면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아빠 덕분에 따뜻하게 갓 지은 밥으로 배부른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내일도 아빠는 모두가 자기 일터로 돌아가는 그 시간 동안 오래 혼자 계셔야 한다. 당연히 이런 시간들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계획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아빠를 위해 비워두리라 생각했다. 하루를 마감할 때는 후회 없이 만족스러운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매 순간 진심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벌써 훌쩍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역시나 나는 후회하고 있다.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걸...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밴쿠버에 보내 드릴걸...
아빠와 산책을 더 많이 할걸...
매일매일을 소중히 살아내기를. 내 일상에 아빠의 시간이 묻히지 않게 노력하겠노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생각 많고 번잡하고, 일 많은 나의 삶 속에 아빠의 시간이 묻혀버리는 것 같아서 죄송하고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