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수용
서구 정신분석학이 무의식과 억압을 다룬다면, 동양은 다른 접근을 한다. 조용헌의 『담화』는 사주명리학이라는 독특한 렌즈로 인간사를 바라본다.
조용헌은 자신의 "호승지벽"을 솔직히 인정한다. "이론상으로는 져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전에 부딪치면 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의 일화들은 익살스럽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집안 어른의 묘를 이장하는 자리에서 만난 무례한 지관. "안하무인격으로 함부로 말을 하는가 하면... 반말 투로 삽 가지고 와라, 괭이 가지고 와라 하면서 명령을 내렸다." 조용헌은 참았다가 나중에 그의 생년월일시를 물어본다. "병신 월에 병신 일."
"당신 외방 자식 두었지?" 한마디에 지관의 얼굴이 벌게졌다.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하나 숨겨 두고 있었는데, 마누라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여성 단체 강의 후의 일화다. 한 아주머니가 남편 사주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병신 일"이었다. "'병신 일입니다' 하니까 갑자기 그 아주머니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남편이 "10년 전쯤에 외방 자식을 두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살아야겠네요!" 조용헌은 이를 깊이 해석한다. "그 아주머니가 흘린 눈물은 쓰디쓴 현실을 팔자소관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이혼을 해야 한다. 받아들이려면 신앙심이 필요하다... 신앙심이 없는 사람은 팔자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팔자를 믿는 것도 때로는 미덕이 된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수용이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욕망 자체가 고통의 원인일 수 있다.
조용헌의 실패담도 교훈적이다. 독신 선배가 병신 일이기에 "가만히 보니까 형님 여기저기 자식 두고 있구만요!"라고 했다가 완전히 틀렸다. "터무니없는 누명에 대한 대가로 이날 고액의 술값을 지불해야만 하였다."
"사주는 확률이지 100퍼센트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이 겸손함이 중요하다. 운명론과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 우리는 어느 정도 타고난 성향과 한계가 있지만,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다.
정화의 길
문제를 진단했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마이클 이스터는 『편안함의 습격』에서 '미소기(misogi)', 즉 정화수행을 제시한다.
일본의 고대 신화 《고사기》에 나오는 이자나기 이야기. 아내를 잃은 이자나기는 저승으로 내려가 그녀를 구하려 한다. "지옥의 온갖 존재들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이자나기는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마침내 아내를 찾아낸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몸 여기저기가 썩고, 마치 악마와 같은 형상"이 되어 있었다. 이자나기는 목숨을 걸고 지상으로 돌아온 후 "인근의 얼어붙을 듯한 차가운 강물로 뛰어들어, 지옥에서 묻혀 온 타락의 기운을 정화했다."
이 행위는 그를 "정신과 육체의 순수한 청정 상태인 스미키리로 이끌어 모든 불순과 약점과 과거의 한계를 제거했다."
이스터가 만난 마커스 엘리엇 박사는 하버드 의대 출신으로 현대적 정화수행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수십만 년에 걸쳐 진화하는 동안 인간이 힘든 일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생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엘리엇의 비유가 인상적이다. "나의 잠재력이 이 큰 원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이 작은 동그라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내 잠재력이다' 하면서,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울타리를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엘리엇은 25년 동안 매년 극한의 도전을 수행해왔다. 그의 원칙은 단순하다. "과제가 엄청나게 힘든 것이어야 한다"와 "죽지 않는다." 성공 확률은 50퍼센트여야 한다. "모든 과정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전제 아래, 성공할 가능성이 50퍼센트."
극한 도전의 실제
엘리엇과 동료들의 도전은 상상을 초월한다. "40킬로그램 정도 되는 돌덩이를 물속에서 5킬로미터를 옮긴 적이 있습니다." 물속 2-3미터 아래서 돌을 끌어안고 걷는다. 5시간 동안 이를 반복한다.
"서서 타는 서핑보드를 타고 폭이 40킬로미터쯤 되는 산타바바라만을 횡단하기도 했습니다." NBA 선수 카일 코버는 이 경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해협을 끝까지 횡단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애초에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당장 눈앞의 숙제를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바다를 건너왔더군요."
엘리엇도 실패한다. 그랜드캐니언 왕복 도전. "6,700미터나 되는 고도 변화를 이겨내며 47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과제였다. "그랜드캐니언의 사우스 림을 내려갈 때는 정말 무릎이 터져나가기 직전이었습니다."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말한다. "완벽하게 실행하더라도 실패 확률이 높은 도전에 참여하는 것... 그런 상황에 과감히 뛰어드는 행동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다줍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엘리엇은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실패의 결과를 엄청나게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통과의례의 지혜
이스터는 아놀드 반 제넵의 연구를 인용하며 전 세계 문화권의 통과의례를 소개한다. 모든 문화에는 젊은이들을 어른으로 만드는 극한의 시험이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유랑'은 "사람이 살기 거의 불가능한 오지로 들어가 최대 6개월 동안 홀로" 지내는 것이다. 알래스카 이누이트족은 "아이들을 북극 지방으로 데려가" 첫 사냥을 시킨다. 마사이족의 젊은이는 "혼자 사바나로 들어가 사자를 사냥해야 한다. 총도 활도 없다. 손에 들린 것은 창 하나뿐이다."
반 제넵은 모든 통과의례가 세 단계를 거친다고 분석했다. 분리(사회를 벗어나 거친 세계로), 전이(자연과 싸우고 마음과 싸우며), 통합(향상된 존재가 되어 재진입).
현대 사회는 이런 통과의례를 잃어버렸다. 대신 "헬리콥터 양육"과 "제설기 양육"이 등장했다. 부모들은 "자녀가 가는 길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맹렬하게 치워버린다." 그 결과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젊은이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을 넘어 계속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과학적 증거
마크 시어리 박사의 연구는 극한 도전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2,500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 결과가 놀랍다.
"평생을 보호 속에 살아온 사람들에 비해 역경을 겪은 사람들이 정신적 안녕 지수가 높다... 생활 만족도가 더 높았고, 정신적, 육체적 증상을 겪는 일도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진통제를 처방받는 비율도 더 낮았고..."
실험실 연구도 같은 결과를 보였다. "얼음물이 들어 있는 양동이에 손을 집어넣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라"는 실험에서 "일생 동안 어느 정도의 역경을 겪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더 약하게 느꼈습니다."
핵심은 균형이다. "완벽한 보호를 받는 것 또한 최선이 아니"며, "최적의 정신적·육체적 안녕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련이 필요하다."
뉴질랜드와 영국의 합동 연구팀은 약 100개의 연구를 분석한 후 결론지었다. "위기, 두려움, 또는 위험에 맞서는 일은 최적의 스트레스와 불편함을 초래하며, 이는 결과적으로 향상된 자존감, 인격 형성, 그리고 심리적 회복력을 증진시킨다."
더글러스 필즈의 신경과학 연구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을 경험할 때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변환된다." 극한의 경험은 뇌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킨다.
몰입의 경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상태(flow state)' 연구는 도전의 또 다른 가치를 보여준다. 예술가들을 관찰하며 발견한 것: "순간에 완전히 녹아든 상태에서 작품에 몰두하고 있었다."
몰입 상태에 빠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수행자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과제'와 명확한 '목표'. "몰입 상태는 삶을 더 풍요롭고 열정적이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중독과 몰입의 차이가 여기 있다. 슬롯머신 앞에서도 몰입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작게 만드는 몰입이다. 반면 진정한 도전이 주는 몰입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현대적 정화수행
엘리엇은 현대인을 위한 정화수행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50% 원칙: "모든 과정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전제 아래, 성공할 가능성이 50퍼센트." 각자의 수준에 맞게 조정된다. "3킬로미터 이상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10킬로미터가 목표가 될 수 있겠죠."
죽지 않는다: "최후의 안전 보장 수단을 마련해둬야죠." 극한의 도전이지만 무모한 자살 행위가 아니다.
기발하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기발한 과제일수록 다른 것과 비교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도전"이 되는 것.
광고하지 않는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리지 말 것." 엘리엇은 강조한다. "인생의 진짜 도전은 내면을 향해야 합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지켜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을 때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요?"
일상 속의 실천
거창한 도전만이 정화수행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도 작은 정화수행을 실천할 수 있다.
찬물 샤워로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 몇 초의 충격이 지나면, 몸과 마음이 깨어난다. 이자나기가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었듯이.
스마트폰 없이 걷는다. 목적지도 없이, 시간 제한도 없이. 발걸음에 집중하며, 호흡에 집중하며.
간헐적 단식을 한다. 배고픔을 경험한다. 현대인은 진짜 배고픔을 모른다.
주말 하루는 완전히 오프라인으로 산다. 처음엔 불안하겠지만, 곧 자유를 느낄 것이다.
매일 밤, 그날의 감정을 기록한다. 특히 화났던 일, 슬펐던 일을 솔직하게 쓴다. 써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된다.
함께 가는 길
혼자서는 지속하기 어렵다. 엘리엇은 동료들과 함께 도전한다. "우리가 물속에서 돌 나르기를 했을 때 안전 다이빙 팀이 상주해 있었습니다."
전통적 통과의례도 공동체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네 안에 있는 잠재력을 총 발휘해서 시험을 통과해라. 이 시험을 통과하는 모습을 우리가 지켜보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서로의 성장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변화의 가능성
뇌의 가소성은 놀랍다. 더글러스 필즈가 밝혔듯, 극한의 경험은 뇌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킨다. 나이가 들어도, 오랜 습관에 젖어 있어도, 우리는 변할 수 있다.
억압된 감정도 해소될 수 있다. 리더가 보여주듯,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된다.
운명도 절대적이지 않다. 조용헌이 말하듯 "사주는 확률이지 100퍼센트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있다.
시어리의 연구가 증명하듯, "역경을 겪은 사람들이 정신적 안녕 지수가 높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도전을 추구한다면 회복력을 기를 수 있다.
새로운 시작
어제 밤, 나는 스마트폰을 거실에 두고 침실로 갔다. 작은 시작이었다. 잠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오랜만에 자신의 호흡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했다. 8층까지 오르며 숨이 찼지만, 살아있음을 느꼈다.
점심시간, 혼자 걸었다. 스마트폰 없이, 이어폰 없이. 처음엔 불안했지만, 곧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 하늘, 사람들...
작은 시작이다. 아직 그랜드캐니언을 횡단할 준비는 안 됐다. 물속에서 돌을 나를 힘도 없다. 하지만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3킬로미터 이상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10킬로미터가 목표가 될 수 있겠죠." 엘리엇의 말이다.
내 10킬로미터는 무엇일까? 아직 모른다. 하지만 찾아갈 것이다. 한 걸음씩,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마지막 질문
이제 당신의 차례다.
당신은 어떤 '결핍의 고리'에 갇혀 있는가? 무엇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가?
당신은 무엇을 상실했고, 그것을 제대로 애도했는가? 어떤 분노를 억압하고 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팔자소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에 도전해야 하는가?
당신의 '50% 도전'은 무엇인가?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시도할 가치가 있는 그것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해법인지.
"누구나 이런 도전들을 통해서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고,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깨뜨릴 수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일단 뛰어들어보면,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면서 상황이 알아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뛰어들자. 지금, 여기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