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17분.
"딱 하나만 더 보고 자야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든 채 몇 시간째인지 모르겠다. 처음엔 잠이 안 와서 '잠깐만' 켰는데,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들이 끝이 없다. 쇼츠 하나가 끝나면 다음 쇼츠가, 15초짜리가 끝나면 또 다른 15초가.
3시 42분. 4시 08분. 4시 31분...
내일... 아니 오늘 9시 출근이다. 지하철에서 졸면서 가겠지. 또.
'내일은 일찍 자야지' 다짐한 게 벌써 몇 달째인지 모른다. 매일 밤 똑같은 패턴. 카톡 확인하다가 인스타로, 인스타에서 유튜브로, 유튜브에서 다시 인스타로. 무한 스크롤.
문득 깨달았다. 이게 도박 아닌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의 슬롯머신 앞에 앉은 아저씨들과 내가 뭐가 다르지? 그들은 레버를 당기고, 나는 화면을 스크롤한다. 그들은 돈을 잃고, 나는 잠을 잃는다. 아니, 나는 돈도 잃는다. 쿠팡에서 새벽 할인이라며 충동구매한 물건들이 집 한구석에 쌓여있다.
대체 왜 멈추지 못하는 걸까?
분명 내일 피곤할 걸 아는데, 시간 낭비인 걸 아는데, 왜?
그 답을 찾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가 매일 쓰는 앱들이 사실 '디지털 도박장'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설계 비밀이 정말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당신의 뇌를 해킹하는 73개 기업의 비밀 연구소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스베이거스로 가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마이클 이스터가 『가짜 결핍』에서 방문한 블랙파이어 이노베이션으로 가야 한다.
"라스베이거스 모하비 사막 끝자락에 서 있는 거대한 루빅큐브 모양의 센터." 이스터의 묘사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연구소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인간 행동을 조작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이스터가 만난 로버트 리피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운동선수 같은 몸매가 돋보이는 맞춤 정장 차림에 디자이너 브랜드 안경, 손목의 염주, 깔끔하게 다듬은 수염으로 힘을 준 멋들어진 감각의 소유자." 하지만 그의 진짜 정체는 "인간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방문객 수백만 명의 행동을 바꿀 만한 결정을 내리는" 전문가다.
세계 최대 카지노 회사 시저스는 "총수익을 늘리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최신 기술을 죄다 사들이는 중"이었지만, "문제는 그런 최신 기술이 잘 먹힐지 미리 알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이 센터다.
충격적인 것은 이곳의 파트너들이다. "73곳이 넘는 업체와 제휴를 맺어 자금과 장비를 지원받고 있으며, 시저스뿐만 아니라 어도비, 인텔, LG, 휴렛팩커드, 파나소닉, 줌, 보이드게이밍, 드래프트킹스 같은 거대 기업들이 재정적 지분을 갖고 있다."
테크 기업들이 왜 카지노 연구소에 투자할까? 답은 간단하다. 그들이 연구하는 것은 도박이 아니라 중독의 메커니즘이다.
당신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건 당신 탓이 아니다. 73개 글로벌 기업이 합작해서 만든 '중독 시스템'에 당신의 뇌가 해킹당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중독될까? 대체 뭐가 그렇게 결핍됐기에, 가짜 보상에 목매달까?
현대 한국인은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 역사상 가장 잘 사는 세대면서도 가장 우울하다. 가장 많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외롭다.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불안하다.
시 레드의 혁명
중독 산업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슬롯머신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스터가 만난 대니얼 살은 "수학과 모범생의 전형"이면서도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1970년대까지 슬롯머신은 카지노의 변방이었다. 찰스 허쉬라는 카지노 경영자는 슬롯머신을 "카지노의 진짜 고객, 즉 카드나 주사위를 갖고 노는 도박꾼 대신 그들의 친구와 가족을 끌어들여 즐겁게 해 주는 장난감"이라고 평했다. 당첨 확률은 고작 3퍼센트. "심지어 슬롯머신 앞에 의자마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1980년, 시 레드가 모든 것을 바꿨다. "1911년생인 레드는 미시시피의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 집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 겪은 대공황은 그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끈기와 열정을 심어 준 것이다."
레드는 아타리의 비디오 게임이 "어린아이들의 주의를 몇 시간이고 붙잡아 두는 걸 발견"했다. 실질적 보상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중독되는 이유가 뭘까? 그는 천재적 통찰력으로 슬롯머신을 재창조했다.
다중 베팅 라인으로 당첨 확률을 3퍼센트에서 45퍼센트로 끌어올렸다. '승리의 탈을 쓴 패배'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1달러를 베팅하고 50센트를 따더라도 '따기는 딴 것'"으로 만들었다. 노르웨이 연구진은 "인간의 뇌가 승리의 탈을 쓴 패배를 작은 패배가 아니라 작은 승리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레드는 "슬롯머신을 발작 유발 기계인가 싶을 정도로 요란하게" 만들었다. 빛과 소리의 향연이 뇌를 마비시켰다. 손잡이를 버튼으로 바꿔 "시간당 평균 플레이 횟수는 300에서 900으로 늘어났다." 디지털화로 "당첨금이 수백에서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잭팟"이 가능해졌다.
결과는 혁명적이었다. 슬롯머신은 카지노의 주인공이 되었고, 테이블 게임은 병풍이 되었다.
결핍의 고리
살은 이스터에게 '결핍의 고리'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도박과 과식, 과음, 과소비는 물론 드라마 정주행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짧은 시간 내에 연달아 하는 행동들은 결핍의 고리로부터 동력을 얻는다."
세 가지 요소가 핵심이다. 첫째, 기회의 발견. "도박이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는 보상에 측정 가능한 위험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측 불가능한 보상. "보상을 받을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 받을지가 불확실하면 우리는 행동에 크게 몰입한다." 셋째, 즉각적 반복 가능성. "슬롯머신은 성과를 확인하는 데 단 몇 초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끝나자마자 즉시 게임을 반복할 수 있다."
특히 '유사 성공(near miss)'의 개념이 교묘하다. "유사 성공은 재미, 흥분, 자극을 제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게임을 즉각 반복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과 캐나다 연구진은 "유사 성공이 빈번히 나타날수록 사람들이 도박을 지속하는 시간이 33퍼센트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셜미디어의 '좋아요'가 99개일 때 100개를 기다리는 마음, 다이어트 중 0.1kg 차이로 목표 체중에 못 미쳤을 때의 좌절과 재도전... 우리 삶 곳곳에 유사 성공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기술의 확산이다. 게임 혁신 센터의 졸업생들은 "미국 군수물자 납품업체, 법 집행 기관, 첨단 기술 스타트업 회사, 대형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활용할 행동 교정 기술을 개발하는 중이다."
"만약 돈을 잃을 걸 알면서도 연달아 수백 번을 플레이할 만큼 매혹적인 게임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게임이 아니더라도 다른 특정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제품을 설계하는 법을 알 것이다." 이스터의 경고는 섬뜩하다.
상실의 정신분석
중독의 메커니즘이 밝혀졌다면, 그 근원적 원인은 무엇일까? 대리언 리더는 『우리는 왜 우울할까?』에서 프로이트의 멜랑콜리아 이론을 통해 답을 찾는다.
"프로이트는 애도하는 사람은 무엇을 상실했는지 어느 정도 아는 반면, 멜랑콜리아 환자에게는 무엇을 상실했는지가 늘 분명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더 정확히는 "멜랑콜리아 환자는 자기가 누구를 상실했는지 알 경우에도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상실했는지는 모른다.'"
이 구별이 중요하다. 현대인은 무엇을 상실했는가? 사랑하는 사람? 꿈? 젊음? 아니면 더 근본적인 무언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그저 막연한 공허함만 느낄 뿐이다.
멜랑콜리아의 특징은 자기비난이다. "자책과 자기비난을 말로 쏟아내다가 벌을 받을 것이라는 망상적인 생각으로까지 치닫는 자존감의 저하." 멜랑콜리아 환자는 자신을 "불쌍하고 쓸모없고 비루한 인간"으로 여긴다.
SNS에 넘쳐나는 자조적 밈들, "나는 쓰레기야"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젊은이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도 계속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멜랑콜리아 환자가 된 것은 아닐까?
리더가 소개하는 한 여성의 사례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 생기는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실어증"과 "이 의사 저 의사 전전하게 하는 건강염려증"을 보였다. 끊임없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과 정상이 아니라는" 자기비난으로 자신을 소진시켰다.
리더의 분석이 날카롭다. 이런 자기비난은 실제로는 "유년기와 사춘기 때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받은 비난이 투영된 표현들"이었다. "나는 할 말이 없다"와 "내 안에 뭔가 있다"는 모순적 명제가 사실은 같은 문제의 양면이었다.
"신경증 증상은 질문하는 수단이다... 반대로 멜랑콜리아의 자기비난은 질문하는 수단이라기보다 일종의 해답이다." 멜랑콜리아 환자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최악의 인간이고 사랑받을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고 확신한다.
분노의 무의식
프로이트의 통찰은 더 깊다. "멜랑콜리아 환자의 자기비난은 사실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비난이다." 우리가 자신을 미워할 때, 실제로는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을 수 있다.
리더가 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강렬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애도하던 그는 "복수를 위해 묘석을 산산이 부수는 끔찍한 꿈"을 꾼다. 묘지를 찾아갈 때마다 길을 잃었다.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놓치거나 묘지를 에워싼 미로 같은 길거리에서 길을 잃었다."
나중에 그는 깨닫는다. "이런 불운들이 고인을 비난하는 자기 마음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당신이 내게 한 것을 봐, 내가 길을 잃게 내버려뒀죠.'"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리더의 지적은 현대 심리학의 핵심이다. 수면 중 폭력 연구가 보여주듯, "같이 잔 사람에게 폭력을 행하고도 깨어나서는 전혀 기억을 못할 수도 있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한다. "특정한 사람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사례에서 우리는 애틋한 사랑 뒤에 감춰진 무의식적인 증오를 발견한다."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동시에 미워한다. 부모, 연인, 자녀, 친구...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강한 양가감정을 품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런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분노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면 위축되고 소진될 것이다." 억압된 분노는 우울로 변한다. 번아웃, 무기력, 만성피로... 이 모든 것이 억압된 분노의 결과일 수 있다.
리더는 아기의 행동을 예로 든다. "악을 쓰고 울다가도 갑자기 한순간에 깊은 잠에 빠진다." 때로는 "잠이 고통스런 좌절이나 실망에 대한 방어 수단"일 수 있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화낼 수 없는 상황에서 잠들어버린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하지만 때로는 분노가 생명력이 되기도 한다. 한 여성의 고백: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떠나면 그건 그 사람이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해요. 그 사람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알잖아요." 그녀는 "자살 직전까지 갔지만 증오심 때문에 살게 되었어요"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