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동음이의어 – 시니피앙의 겹침과 뜻이 겹치는 말
동음이의어(homonym)는 동일한 소리를 가지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말한다. 우리는 일상 대화에서 이러한 언어적 겹침을 자주 사용하지만, 정신분석에서는 이 겹침 자체가 무의식의 구조를 드러내는 열쇠가 된다. 특히 라캉의 시니피앙 이론에서는,
동음이의어의 반복이나 선택이 우연이 아니라 무의식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동음이의어는 시니피앙의 뜻이 겹치는 말(double inscription)을 가능하게 한다. 동일한 말소리가 두 개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은, 하나의 시니피앙 안에 다층적인 시니피에가 겹쳐 있는 것이다. 무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겉으로는 분명한 의미를 전달하는 말이, 그 밑바닥에는 전혀 다른 무의식적 의미를 은닉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쥐인간’과 동음이의어의 무의식적 구조
:
쥐인간 사례의 언어적 분석
동음이의어 분석의 대표적인 고전 사례는 프로이트의 '쥐인간(Rattenmann)' 사례다. 내담자는 '쥐 고문'이라는 끔찍한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는 독일어로 'Ratte(쥐)'와 'Rat(조언, 충고)'라는 동음이의어 구조 안에서 억압된 감정과 욕망을 복합적으로 드러냈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것은 단순히 쥐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독일어에서 'Ratte(쥐)'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언어적 연쇄였다. 이 내담자의 경우 다음과 같은 동음이의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Ratte(쥐) - 기본적인 공포의 대상
Raten(분할불, 월부금) - 아버지의 빚과 관련된 불안
Heiraten(결혼하다) - 사랑하는 여성과의 결혼 갈등
Spielratte(도박꾼) - 아버지의 과거 도박 행위
이러한 언어적 연쇄는 우연이 아니었다. 내담자의 무의식은 'Ratte'라는 하나의 시니피앙을 통해 아버지와의 복잡한 관계, 성적 욕망, 경제적 불안, 결혼에 대한 양가감정을 모두 표현하고 있었다.
쥐 고문의 상징적 의미
내담자가 들었던 '쥐 고문' 이야기는 단순한 잔혹한 환상이 아니라, 그의 무의식적 갈등의 상징적 표현이었다. 쥐가 항문으로 들어간다는 상상은 다음과 같은 다층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항문성애적 욕망: 아버지에 대한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태도
출산에 대한 욕망: 쥐가 들어가는 것과 아이가 나오는 것의 연관
자기 처벌의 욕망: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에 대한 죄책감
성적 금기에 대한 불안: 성적 욕구와 그에 대한 억압
프로이트는 이 내담자가 "내가 발가벗은 여자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아버지가 죽고 말 것이다"라는 강박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이는 성적 욕구와 아버지에 대한 죽음 소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오이디푸스적 갈등의 표현이었다.
라캉의 재해석: 시니피앙의 연쇄
라캉은 쥐인간 사례를 시니피앙의 연쇄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Ratte'라는 시니피앙은 다른 시니피앙들과의 연관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무의식의 언어적 구조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라캉이 주목한 것은 내담자가 "get rid of 'fat=dick=Dick=Richard'"라는 연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fat(뚱뚱한)'이 'dick(남근)'과 연결되고, 이것이 다시 'Dick'이라는 이름, 그리고 'Richard'라는 이름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동음이의어적 연쇄는 내담자의 무의식이 언어의 음성적 유사성을 통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캉의 시니피앙 겹침 개념
:
시니피앙의 우선성과 미끄러짐
라캉은 동음이의어 현상을 언어의 본질적 속성으로 보았다. 언어는 결코 단일한 의미로 고정되지 않으며, 오히려 미끄러지고 중첩되며 끊임없이 다른 의미를 가리킨다. 라캉의 시니피앙은 의미(signifié)보다 앞서 있으며, 그 흐름 속에서 주체는 욕망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라캉에 따르면, 시니피앙은 다른 시니피앙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진다. 이는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가져온 개념이지만, 라캉은 이를 무의식의 구조에 적용했다. 동음이의어는 이러한 시니피앙의 미끄러짐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무의식의 언어적 구조
라캉의 유명한 명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동음이의어 현상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다. 무의식은 논리적 사고가 아니라 언어적 연상을 통해 작동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의미의 논리적 연관이 아니라 소리의 유사성이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가 기록한 한 여성 내담자의 사례에서, 그녀는 제방에서 뛰어내렸는데, 이때 사용한 독일어 'niederkommen'은 '뛰어내리다'라는 뜻과 동시에 '아이를 낳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내담자는 아이를 갖기를 원했고, 무의식적으로 이 동음이의어를 선택한 것이었다.
압축과 전치의 메커니즘
라캉은 프로이트의 꿈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압축(condensation)과 전치(displacement)를 언어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압축은 은유(metaphor)에, 전치는 환유(metonymy)에 대응된다고 보았다.
동음이의어는 주로 압축의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하나의 시니피앙 안에 여러 개의 시니피에가 압축되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꿈에서 한 인물이 여러 사람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는 것과 유사하다.
한국어 동음이의어의 무의식적 작용
:
한국어의 특수성과 동음이의어
한국어는 동음이의어가 특히 풍부한 언어다. 이는 한자어의 영향과 음성 체계의 특성 때문이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어 화자들의 무의식은 이러한 언어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배"의 다층적 의미:
배(腹): 몸의 일부, 임신과 출산의 공간
배(船): 이동 수단, 여행과 모험의 상징
배(梨): 과일, 달콤함과 만족의 상징
배(倍): 곱절, 증가와 확장의 의미
한 내담자가 "배가 아파요"라고 말할 때, 이는 단순한 신체적 고통이 아닐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는 "떠나고 싶다(배를 타고)", "달콤한 것을 원한다(배를 먹고 싶다)", "더 많이 갖고 싶다(배로 늘리고 싶다)"는 욕망이 함께 표현될 수 있다.
"눈"의 복합적 상징:
눈(目): 시각 기관, 보는 것과 보이는 것
눈(雪): 겨울의 상징, 순수함과 차가움
눈(눈치): 상황 파악 능력, 사회적 관계
"눈이 아파요"라는 표현에는 "보기 싫은 것이 있다", "차가운 관계가 힘들다", "눈치를 보느라 지쳤다"는 다양한 의미가 겹쳐질 수 있다.
사례 분석 1: “밉네여”
:
'밉다'라는 감정 표현에 '네'라는 대상 지시어가 결합되어 있다. 이는 단지 타인을 미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도 그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자기 투사의 흔적이다.
"밉다"의 감정적 층위:
직접적 적대감
실망과 배신감
사랑의 좌절된 형태
"네"의 애매한 지시:
상대방을 가리키는 2인칭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투사적 표현
일반화된 타자에 대한 지시
"여"의 유아적 어미:
감정의 완화와 애교
직접적 공격의 회피
관계 유지에 대한 욕구
'밉네여'는 직접적인 비난이 아닌, 감정의 에너지를 유아적 형태로 표현한 시니피앙이다. 이는 "당신이 미워요, 하지만 당신을 잃고 싶지는 않아요"라는 복잡한 감정을 하나의 표현에 압축한 것이다.
한국어 동음이의어 상담사례: “배가 아픈 민지”
:
사례 개요
내담자: 김민지 (가명, 28세, 여성)
주 호소: 반복적인 복통과 불안감
상담 기간: 12회기 (3개월)
상담 접근법: 정신분석적 접근, 언어 분석 중심
1회기: 첫 만남과 주 호소
민지는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선생님, 저는 정말 배가 아파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의학적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민지: "3개월 전부터 배가 계속 아파요.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상담자: "배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어떤 배가 아픈 건가요?"
민지: "네?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여기 배요." (자신의 복부를 가리키며)
상담자는 민지가 "배"라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어에서 "배"는 신체 부위, 과일, 배(船), 배(倍)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상담자: "배가 아프다는 것 외에 다른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민지: "사실... 요즘 회사에서 배를 타야 할 일이 생겼어요. 해외 출장 때문에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것도 무서워요."
여기서 민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타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이동 수단으로서의 "배"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신체적 "배"의 고통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었다.
2회기: 가족사와 "배"의 의미 탐색
상담자: "지난번에 배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가족 중에 배와 관련된 특별한 기억이 있으신가요?"
민지: "음...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기억이 나요. 제가 다섯 살 때였는데, 어머니 배가 점점 커지는 걸 보면서 신기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배를 움켜쥐고 아파하시더라고요."
상담자: "그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민지: "무서웠어요. 어머니 배 안에 있던 아기가 죽었다고 했거든요. 그 후로 어머니는 항상 배를 만지시면서 슬퍼하셨어요."
이 대화에서 민지의 "배" 아픔이 어머니의 유산 경험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드러났다. 임신과 출산의 공간인 "배"가 상실과 고통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민지: "그리고 아버지는 그 일 이후로 자주 배를 타고 나가셨어요. 낚시배요. 집에 있기 싫어하시는 것 같았어요."
여기서 아버지의 "배(船) 타기"는 가족으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했다. 민지에게 "배"는 상실, 도피, 고통이 복합적으로 얽힌 시니피앙이었다.
3회기: "말"의 이중성과 소통의 어려움
민지: "요즘 직장에서 말이 안 나와요. 회의 때마다 할 말이 있는데 입이 안 떨어져요."
상담자: "말이 안 나온다고 하셨는데, 어떤 말인가요?"
민지: "제 의견을 말하고 싶은데... 그런데 어릴 때 아버지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라'고 자주 하셨거든요."
여기서 민지는 언어로서의 "말"과 동물로서의 "말"을 무의식적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비난은 그녀의 말(언어)을 동물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이었다.
상담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하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민지: "마치 제가 말(馬)이 된 기분이었어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죠."
민지: "그래서인지 지금도 말을 하려고 하면 목이 막혀요. 마치 말(馬)처럼 히힝거리기만 하는 것 같아요."
이 표현에서 민지의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의 억압을 동물성으로의 퇴행과 연결하고 있었다.
4회기: "밤"의 공포와 시간의 의미
민지: "요즘 밤이 되면 더 배가 아파요.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서워요."
상담자: "밤이 무섭다고 하셨는데, 밤과 관련된 특별한 기억이 있나요?"
민지: "어머니가 유산하신 날이 밤이었어요. 그날 밤에 응급실에 갔었거든요. 그 후로 밤만 되면 불안해져요."
민지: "그리고 어릴 때 할머니가 밤을 까주시면서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항상 무서운 이야기였어요."
여기서 시간으로서의 "밤(夜)"과 견과류로서의 "밤(栗)"이 연결되었다. 할머니의 밤(栗) 까기는 따뜻한 기억이지만, 동시에 무서운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었다.
상담자: "밤을 까는 것과 무서운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나요?"
민지: "할머니가 밤을 까시면서 '이 밤처럼 딱딱한 껍질을 벗겨야 속살을 볼 수 있다'고 하시면서, 사람도 겉모습만 봐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속에 무서운 것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고..."
밤(栗)의 껍질 벗기기는 진실 탐구의 은유였지만, 동시에 그 진실이 무서울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5회기: "눈"의 다층적 의미와 시각의 문제
민지: "요즘 눈이 자꾸 아파요. 컴퓨터를 많이 봐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상담자: "눈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보기 싫은 것이 있나요?"
민지: "사실...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있는 걸 봤어요. 그 후로 눈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민지: "그리고 겨울에 눈이 오면 더 우울해져요. 하얀 눈을 보면 어머니가 유산한 후 하얗게 질린 얼굴이 생각나요."
여기서 시각 기관으로서의 "눈(目)"과 자연 현상으로서의 "눈(雪)"이 연결되었다. 보는 것의 고통과 순수함의 상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상담자: "눈으로 보는 것과 눈(雪)이 내리는 것,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민지: "둘 다 하얗잖아요. 눈(目)의 흰자위와 하얀 눈(雪)... 순수했던 것들이 더러워지는 느낌이에요."
6회기: "사과"의 이중성과 죄책감
민지: "남자친구에게 사과를 해야 할까요? 제가 의심한 게 잘못이었을 수도 있어요."
상담자: "사과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떤 사과인가요?"
민지: "용서를 구하는 사과요. 그런데 이상해요. 사과를 생각하면 어릴 때 먹던 달콤한 사과가 생각나요."
민지: "어머니가 아플 때 제가 사과를 깎아드렸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는 '네가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니다'라고 하셨어요."
여기서 사죄로서의 "사과(謝過)"와 과일로서의 "사과(沙果)"가 연결되었다. 어머니의 말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는 위로와 동시에 과일을 줄 필요 없다는 거절.
상담자: "어머니께 사과(과일)를 드리고 싶었던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요?"
민지: "달콤한 걸 드려서 기분을 좋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동시에 제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아서 사과(사죄)하고 싶기도 했고요."
7회기: "감"의 느낌과 과일
민지: "요즘 이상한 감이 와요.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감이요."
상담자: "어떤 감인가요?"
민지: "예감이요. 불안한 예감... 그런데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감을 따먹던 기억도 나요."
민지: "감나무에서 감을 따다가 떨어져서 다친 적이 있어요. 그때 할머니가 '감이 나빴구나'라고 하셨는데, 저는 제 감(직감)이 나빴다고 생각했어요."
직감으로서의 "감(感)"과 과일로서의 "감(柿)"이 연결되면서,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불신이 드러났다.
상담자: "감나무에서 떨어진 일과 지금의 불안한 감이 어떻게 연결될까요?"
민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게 무서워요.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곧 떨어질까봐 불안해져요."
8회기: "차"의 이동과 음료
민지: "요즘 차를 마시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해요. 그런데 차를 탈 때마다 불안해져요."
상담자: "차를 마시는 것과 차를 타는 것, 어떤 차이가 있나요?"
민지: "차를 마실 때는 편안해요. 따뜻하고 안정적이에요. 그런데 차를 타면 어디로 갈지 모르잖아요."
민지: "어릴 때 아버지 차를 타고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나요. 어머니가 아플 때요. 그때부터 차를 타면 나쁜 곳으로 가는 것 같아요."
음료로서의 "차(茶)"는 안정과 위로를 의미했지만, 탈것으로서의 "차(車)"는 불안과 이별을 의미했다.
9회기: "물"의 생명과 사물
민지: "요즘 물을 많이 마셔요. 뭔가 씻어내고 싶은 기분이에요."
상담자: "무엇을 씻어내고 싶으신가요?"
민지: "더러워진 기분들을 씻어내고 싶어요. 그런데 동시에 물건들도 정리하고 싶어요."
민지: "어머니가 유산한 후에 아기 물건들을 다 치우셨거든요. 그때 제가 '왜 물을 다 버려요?'라고 물어봤어요."
액체로서의 "물(水)"과 사물로서의 "물(物)"이 연결되면서, 정화와 상실이 동시에 나타났다.
상담자: "물로 씻어내는 것과 물건을 치우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나요?"
민지: "둘 다 없애는 거잖아요. 아픈 기억을 없애고 싶어요."
10회기: "꿈"의 수면과 희망
민지: "요즘 이상한 꿈을 꿔요. 배가 침몰하는 꿈이요."
상담자: "그 꿈에서 어떤 기분이었나요?"
민지: "무서웠어요. 그런데 동시에 제 꿈(희망)도 침몰하는 것 같았어요."
민지: "어릴 때는 꿈이 많았어요. 의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어머니를 치료해드리고 싶어서요."
수면 중 경험으로서의 "꿈(夢)"과 희망으로서의 "꿈(夢)"이 연결되면서, 무의식적 불안과 의식적 절망이 드러났다.
11회기: 통합과 이해
상담자: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배', '말', '밤', '눈' 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어떤 느낌이세요?"
민지: "신기해요. 같은 소리인데 이렇게 다른 의미들이 제 마음속에서 연결되어 있었다니..."
민지: "특히 '배'가 그래요. 제 배(몸)가 아픈 것도, 어머니의 배(임신)와 관련된 상처도, 아버지가 배(배)를 타고 도망간 것도 모두 연결되어 있었네요."
상담자: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배 아픔은 어떤 의미일까요?"
민지: "아마도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몸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상실감, 버림받음, 죄책감... 이런 것들이 배에 쌓여있었던 것 같아요."
12회기: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
민지: "이제 배가 덜 아파요. 완전히 안 아픈 건 아니지만, 왜 아픈지 알겠어요."
상담자: "앞으로 어떻게 지내고 싶으세요?"
민지: "말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제대로 된 말을요. 그리고 밤이 와도 덜 무서워하고 싶어요."
민지: "사과도 제대로 하고 싶어요.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사죄)하고, 달콤한 사과(과일)도 나누어 먹고 싶어요."
상담자: "동음이의어들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민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는데, 이제는 제 마음의 여러 층을 보여주는 거울 같아요. 하나의 말 속에 여러 감정이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상담 결과 및 분석
주요 동음이의어 분석
1. 배(腹/船/梨/倍): 신체적 고통, 도피, 달콤함, 확장의 욕구가 복합적으로 연결
2. 말(言/馬): 언어적 억압과 동물성으로의 퇴행
3. 밤(夜/栗): 시간적 불안과 보호막의 필요성
4. 눈(目/雪): 시각적 트라우마와 순수성의 상실
5. 사과(謝過/沙果): 죄책감과 달콤한 위로의 이중성
결론
:
민지의 사례는 한국어 동음이의어가 어떻게 무의식적 갈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나의 소리가 가진 다양한 의미들이 내담자의 심리적 경험과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연결고리를 이해함으로써 치료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동음이의어 분석은 단순한 언어 분석을 넘어서 내담자의 무의식적 구조를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이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증상과 동음이의어
:
신체 증상의 언어적 기반
정신분석에서는 많은 신체 증상이 언어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특히 히스테리 증상의 경우, 신체의 특정 부위에 나타나는 증상이 그 부위와 관련된 언어적 연상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목"의 다층적 의미: 한국어에서 "목"은 신체 부위이면서 동시에 "생명", "목표", "목적"을 의미한다. 목에 증상이 나타나는 내담자들은 종종 삶의 목표나 목적에 대한 갈등을 가지고 있다.
"가슴"의 상징성: "가슴"은 신체 부위이면서 "마음", "감정"을 의미한다. 가슴 답답함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은 감정적 억압이나 갈등을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강박 증상과 언어적 반복
강박증에서는 특정 단어나 구문의 반복이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반복은 단순한 행동의 반복이 아니라 언어적 강박의 표현이다.
숫자 강박과 동음이의어: 특정 숫자에 집착하는 강박증 내담자들의 경우, 그 숫자가 가진 언어적 의미가 중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4"에 대한 강박은 "죽음"과의 음성적 유사성 때문일 수 있다.
청결 강박과 언어: "더러워"라는 표현이 "더 러워(더 사랑해)"와 음성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에서, 청결 강박은 사랑에 대한 양가감정의 표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