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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블 May 22. 2024

잊어버린 나를 찾는
추억의 초코라떼_2

나 자신을 잊어버렸을 때 

“자! 여기 초코라떼 나왔습니다!”

“?!!... 초코라떼요??”     

 ‘아니... 아니... 아니지...! 이 아저씨한테 초코라떼라니... 무슨 소리야..!!’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 이었지만, 여주인의 방실방실 웃는 얼굴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아저씨에게 초코라떼라니.. 그냥 본인이 초코라떼를 먹고 싶었던 거 아닌가.... 냄새만 맡아도 벌써 속이 니글거린다. 카페에 잘 가지 않지만 업무상 외부 미팅이 있을 때 가끔 카페에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만들어 주신 이 초코라떼는 화려하지 않고 단순해 보였다. 내가 초코라떼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자주 사먹었던 것도 아니지만, 포스터 같은 곳에 나와 있는 초코라떼는 휘핑크림이 많이 올라가 있고 초코칩도 박혀있는 것을 본 적 있다. 이 달아 보이는 음료를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앞에 서 있는 여주인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기대 찬 눈을 보니 안 마실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한 모금 마셨다.  

     

 “아...!”     


 생각보다... 맛있다..! 너무 달지 않아서 그런가. 아무래도 나를 생각해서 그렇게 달지 않게 만들어 준 것 같다. 그리고 뭔가 이 향..... 한 모금 목으로 넘기고 그 향이 코에 남는데 어디서 맡아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 향을 어디서 맡았더라..! 친숙한 느낌이 드는 데...’ 

     

 순간 창문을 통해 불어온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데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는 감각이었다. 뭘까 이 친숙함은... 그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감각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아버지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초코우유를 자주 사드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는 무슨 어른이 저렇게 초콜릿 우유를 많이 사드실까 했다. 하루는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다가 직접 여쭈어보았다.


 “아버지는 어른이시면서 왜 초코 우유를 그렇게 자주 드세요? 다른 아저씨들은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커피를 드시잖아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내 얼굴을 쳐다보시더니 쓱 눈웃음을 지으셨다.  

   

 “맛있어서 먹는 거 아니야. 난 단거 안 좋아한다. 맛이 아니라 추억을 마시는 중이지.”  

   

 그러면서 아버지의 눈빛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 같아 보였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그러니까 네게는 할아버지겠지. 어쨌든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초코우유를 자주 사드셨어. 슈퍼에 가실 때면, 그때마다 나도 같이 뒤를 따라갔지. 그러면 아버지께서 그러셨어. 네 엄마가 나한테 자꾸 살찐다고 군것질 그만하라고 잔소리해서 지금 몰래 나온 거야. 이제 너도 공범이니까 비밀은 지켜야 해!라고 말이지. 그리곤 내 손에 초코우유 하나씩 들려주셨어.”     


 아버지는 말을 다하시고 쿡쿡 웃으면서 나에게 남은 초코 우유를 쑤욱 내미셨다. 나는 초코 우유를 받아 들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툭툭 두들기시다가 슬슬 쓰다듬어 주셨다.   

   

 “살다가 보면 문득 그런 시간이 그리워져. 내가 무엇이 될 필요 없이 그냥 그저 나로 존재했던 시간 말이야.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하루하루 그저 정신없이 살고 있을 때가 있거든. 그럴 때 내가 누구였었는지 나는 뭔지 떠올리게 돼. 그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떠오르더라고.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나에게는 나로 존재했던 시간이었나 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면 내 손에 초코 우유가 들려있더라고...”    

 

 아버지는 허공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으셨고 나도 따라 웃으며 남은 초코 우유를 들이켰다.      


 “뭐! 당뇨에 안 걸리려면 초코우유도 적당히 먹어야겠지만 말이야..! 이제부터 나도 네가 말한 다른 아저씨처럼 커피나 마셔볼까? 하하.”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알겠는 건 지금 아버지의 표정이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천진난만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아 바람에 실려 오는 초코우유의 단내를 맡으며 우유를 마셨다.  



   

 서서히 눈의 초점을 맞춰 과거 회상에서 현재로 돌아왔다. 나는 내 밑의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여 있는 초코라떼를 바라보았다. 바라본 초코라떼에는 나 자신이 비쳐있었다. 어렸을 적 느낌이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아저씨 한 명이. 사회생활과 가정생활로 바쁘게 지내면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잊어버린 한 사람이....      


 묵묵히 음료를 지켜보다가 초코라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입 안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것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몸 안으로 따뜻한 액체가 퍼져가는 느낌이었다. 몸은 점점 따뜻해져 가는데 가슴은 시간이 갈수록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께서 마신다는 추억이라는 게 이런 느낌인 걸까...’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어떻게 이제까지 이 추억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일까... 아니..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은 나의 어린 시절 추억뿐만이 아니다. 나 자신 또한 잊어버리며 살아왔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 바빠 다른 것을 볼 생각도 생각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 생각해 볼 마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 바쁘게 살다 보면 나 자신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고 하신 게 이런 뜻이었구나... 지금은 그 말뜻을 알 것 같다. 요즘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만 하고 가정에서도 아버지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다 보니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갈 뿐 나라는 사람에 대해 스스로도 관심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쌔게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이제껏 나는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열심히 산다고 산 것이 나 자신을 뒤로 미뤄두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료는 좀 괜찮으세요? 손님께서 단 것 많이 안 좋아하실 거 같아서 당도를 약하게 하고 카카오의 비율을 높여서 만들어 보았어요.”

 “네? 아..! 네네.. 정말로 맛있어요.. 제 입맛에 잘 맞는 거 같아요.”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나는 당황했지만, 최대한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도록 주의해서 대답했다. 카페 주인이 나의 붉어진 눈시울을 알아차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눈을 피해 테이블을 보면서 대답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여사장은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거 같았다. 표정을 가다듬고 슬쩍 고개를 들어 여주인을 바라보았다.     


 “입에 맞으시다니 기쁘네요. 이 카페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 손님한테서 어깨가 무겁고 쉬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풀리셨으면 해서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초코라떼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마치 인생 같은 맛이지 않나요... 인생은 참 단 것 같으면서 씁쓸하고 씁쓸한 것 같으면서 달죠.”     


 내가 바라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여주인의 얼굴에 잠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라졌다. 내가 무어라 말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던 찰나 그녀는 바로 표정을 바꾸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저의 초코라떼 선택은 어떠셨나요? 괜찮으셨나요?”     


 순간 당황했다. 나는 그 말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이 초코라떼는 그냥 음료가 아닌 나의 현재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음료였다. 이 사람은 알고 나에게 이 음료를 준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딱 지금의 나에게 너무도 필요한 음료였다. 삶을 사느라 바쁜 나머지 제일 중요한 나를 잊어버렸던 것을 알도록 도와주었다. 대답을 하려면 나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까지 꺼내면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나의 마음속 이야기를 전부 드러내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부터 시시콜콜하게 다른 사람에게 나의 마음을 얘기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카페에서 초코라떼 처음 먹어보는데 너무 좋네요. 선택 감사합니다!”     


 나의 대답을 듣고 여주인은 입가에 은은한 웃음을 짓더니 뒤돌아서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마치 내 마음을 다 안다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뒷문으로 통해 밖의 마당으로 나갔다.   

  

 “여러 가지로 신기하신 분이네...”     


 그녀는 아마 내 마음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더 묻지 않고 내가 지금 이 초코라떼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처럼 느껴진다. 그 배려에 너무 감사한다.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겨 옆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햇빛이 반짝이고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게 세상이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심어놓은 꽃들도 너무 아름다웠다.    

  

 처음 이 카페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여기까지 오는 것이 귀찮고 불만이었는데... 아니.. 올라오기 전 이 마을에 오는 것부터가 전부 불만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와야 해! 라면서 말이다. 

    

 지금은 내가 내기에서 진 것도 여길 추천해 준 동료도 모든 상황이 다 고맙게 느껴진다. 카페에 올라올 때는 매미 소리가 귀에 거슬렸는데, 지금은 그 소리가 듣기 좋다. 모든 좋은 것 중 제일 좋은 것은... 점장의 픽으로 만들어진 이 음료에서 나는 초코 냄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옆에 앉아있을 때 나는 냄새와 같은 냄새... 아버지도 예전에 초코우유를 드실 때마다 이런 느낌이셨을까... 이젠 나도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었구나 싶다. 왠지 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은 나의 현재 상황에만 신경을 쓰고 싶은데.. 창밖을 보니 날이 어두워지는 게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내일 출근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조금만 더 내가 이 느낌과 생각을 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조금만 더 이 공간에서 초코라떼와 나 이렇게 존재하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바빠지는 생활에 다른 생각은 못하고 하루하루 보내겠지만, 이젠 그래도 예전처럼 나를 잊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날이 너무 바빠지더라도 바쁜 와중 너무 지치면 나를 쉬게 해 주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초코음료를 사 먹을 것 같다. 그때마다 이제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뿐만 아니라 이 카페도 떠오르겠지...     


 너무 늦기 전에 내려가야지 집에 아내도 너무 늦게 도착하면 걱정할 텐데... 나중에... 나중에 좀 더 여유 있게 또 한 번 이 카페를 찾아와 보고 싶다. 그때는 강요가 아닌 내 선택으로.. 다음에 올 때는 내 아내와 아이도 같이 데리고 와야겠다. 다 같이 오면 나도 내 아이에게 이 카페에서 초코라떼를 사주고 싶다. 내가 내 아버지한테 받은 것처럼, 나도...      


 조금만 더 이 카페에서 분위기를 즐기다가 가야겠다. 너무 해가 많이 지기 전까지 말이다... 지금은 이 초코라떼와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그저 어린 시절 아버지 옆에서 초코우유를 마시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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